조선의 밤을 밝히다.
9월 경복궁 야간관람(야간개장)
SIGMA 35mm F2 DG DN|Contemporary, 리코 GR3x
수백 년 전, 은은한 달빛과 화촉의 불빛만이 널따란 궁궐을 조용히 비췄다면
수백 년 후, 어둠을 걷어내는 무수한 빛이 경복궁의 아름다움과 유산의 흔적을 조명합니다.
지난 13일(수),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 없이 밤중에 빛나는 궁궐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복작복작했던 가을 경복궁 야간 관람에 다녀왔습니다. 현재 광화문 앞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국립고궁박물관이나 경복궁 주차장을 통해 출입이 가능해요. 경복궁역을 이용하신다면 4번 출구로 나오거나 국립고궁박물관과 연결되는 5번 출구로 나오면 돼요. 발권은 매표소에 있는 키오스크에서 예매번호 또는 예매 시 사용했던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면 됩니다. 안내원분들께서 도와주셔서 어렵지 않아요.
원래는 문화재청 홈페이지를 참고하여 40분 추천 관람 코스*인 흥례문-영제교-근정전-사정전-경회루-수정전을 둘러보려고 했었는데요. 비가 많이 내린 탓에 발길 가는 데로 갔더니 흥례문-영제교-근정문-근정전-수정전-경회루-함원전-교태전-강녕전-사정전 순으로 관람했고 약 1시간가량 소요되었습니다. 사실 비가 오는 날에 하는 야간 관람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리는 비가 운치를 더하고, 톡톡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ASMR이라 생각하며 걷다 보니 시곗바늘은 이미 한 바퀴 돌아 있었습니다.
*추천 관람 코스: https://www.royalpalace.go.kr/content/guide/guide4_02.asp
|흥례문(興禮門)&영제교(永濟橋)


흥례문 / 리코 GR3x
광화문을 지나 근정전에 당도하기 전 흥례문과 영제교가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는 전소되고, 일제강점기 때는 훼손되는 수난의 역사를 넘어 재건된 흥례문 뒤로 궁궐을 수호하듯 높은 봉우리를 자랑하는 북악산과 산꼭대기에 걸린 구름과 안개가 함께 장관을 이루며 야간 관람을 온 이들의 기대를 한껏 높입니다.
|근정전(勤政殿)

근정전 / 리코 GR3x



SONY a7m3+SIGMA 35mm F2 DG DN|Contemporary
근정전으로 향하는 흥례문, 근정문도 크다고 생각했는데 근정전(국보 제223호)은 거대했습니다. 어좌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정말 작아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날카로운 직선, 유려한 곡선을 따라 스스로 빛을 내는 것 같았던 근정전엔 위엄이 서려 있어 가만히 보고 있어도 압도되는 기분이었습니다. 18세기 정조 때 처음 세워진 품계석도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근정전으로 향하는 길을 빛내고 있었습니다.
외관만 봐서는 2층으로 되어 있을 것 같지만 단층 구조이며 임금이 앉았던 어좌를 볼 수 있는 내부는 광활하고 높아 임금의 권위와 위상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좌를 보고 난 후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가면 개방된 문이 하나 더 있는데요. 그곳에서 천장 정중앙에 있는 용을 볼 수 있습니다. 어좌를 촬영할 수 있는 문에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바로 경회루나 다른 장소로 넘어가지 마시고 근정전 옆문에서 용을 찾아보세요. 층고가 높아 천장에 있는 용이 꼭 승천해있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 경회루(慶會樓)


경회루 / SONY a7m3+SIGMA 35mm F2 DG DN|Contemporary

리코 GR3x
연못에 반영된 누각은 누구나 반하고 마는 아름다움을 지닌 채 잔잔한 물살에 일렁입니다. 비가 내린 탓에 물에 비친 경회루(국보 제224호)의 모습은 다소 흐릿했지만 물 위에 유유히 떠있는 것처럼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일품이었습니다. 왜 이곳이 연회를 위해 사용된 곳인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는데요. 멀리서든 가까이든, 정면이든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어느 곳에서 봐도 장관입니다. 이곳에 앉아 초록빛 나무와 푸른빛 연못을 보고 있으면 풍류가 흐를 것 같았습니다.
손꼽히는 야간 관람 장소 답게 많은 사람들이 우산을 든 채 경회루 주변에 모여 있었습니다. 경회루를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함홍문에선 경회루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많은 분들이 포토스팟으로 이용하고 있었는데요. 측면에서 바라보는 경회루도 새롭습니다.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던 탓에 더욱 인상 깊었던 순간이었습니다.
현재 문화재청에서 10월 30일(월)까지 경회루 특별관람도 진행하고 있으니 경회루 특별관람을 이용하는 것도 경복궁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일 것 같아요.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경회루 특별관람 예약 : https://www.royalpalace.go.kr/content/guide/guide26.asp?l_year=2023&l_month=9&l_day=1

함원전, 교태전, 강녕전, 사정전 가는 길. 비가 주룩주룩
|교태전(交泰殿), 강녕전(康寧殿), 사정전(思政殿)

교태전 / 리코 GR3x

교태전 내부

(왼) 강녕전 / (오) 사정전 내부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 임금의 침전인 강녕전, 왕이 정무를 수행하는 편전인 사정전(보물 제1759호)은 일렬로 위치해 있어 경회루에서 함원전을 통해 교태전으로 이동했다면 교태전, 강녕전, 사정전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흥례문을 시작으로 근정문,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이 남북 방향으로 나란히 위치해 있습니다.) 건축물의 크기는 서로 다르지만 대칭을 이루고 있고, 나란히 서 있는 모습에서 오는 통일성이 안정감 있다고 느껴졌어요.
강녕전은 겉보기에도 큰 규모가 느껴지는데 실제로도 정면 11칸, 측면 5칸 규모로 경복궁 내 단일 건물로는 가장 큰 평면을 가진 곳입니다. 기단이 눈에 띄는 건물이기도 했는데, 근정전과는 다른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교태전 뒤에 있는 아미산 굴뚝을 보고 오지 못했어요. 교태전 뒤편에 있는 작은 동산으로 보물 제811호입니다. 특히 아미산 굴뚝에 새겨진 장식이 정교하고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어 야간 관람이 아니더라도 경복궁 방문 시에 꼭 들러볼 만한 곳이에요.


처마 끝 잡상 / 리코 GR3x


SONY a7m3+SIGMA 35mm F2 DG DN|Contemporary
관람을 끝내고 광화문 방향으로 걸어 나오면 필연적으로 광화문 너머 높은 빌딩들이 보입니다. 평소에도 오고가며 광화문을 볼 수 있었던지라 친숙하게만 느껴졌던 외관이 그날따라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아무래도 정교한 직선과 곡선의 옛 건물들을 보고 온 영향이겠죠. 후기를 쓰기 위해 사진을 고르며 한 장, 한 장 다시 보는데 건물에서 나오는 형광등 불빛 사이에서 새벽 빛처럼 그윽하게 빛나는 경복궁 내 건물들이 이따금 더 밝다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해는 더 짧아질 텐데요. 사위는 어둡지만 그래서 더욱 눈에 한가득 담을 수 있는 야간 관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야간 관람을 찾는 이유를 몸소 체험했던 시간이었어요.
경복궁 야간 관람은 오는 10월 29일(일)까지 이어지며 10월 예약은 오는 9월 25일(월)에 오픈되니 1차 신청을 놓치셨다면 잊지 말고 예매에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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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람기간: 2023.09.01.(금)~10.29.(일) 19:00~21:30 (입장 마감 20:30)
-1차(9.1.~9.30. 기간) 온라인 예매 개시일: 8.25.(금) 10:00~
-2차(10.1.~10.29. 기간) 온라인 예매 개시일: 9.25.(월) 10:00~
· 야간관람 없는 날: 매주 월, 화요일
-단, 10월 4일(수)은 경복궁 대체휴궁일로 야간관람 없음
· 예매처: 11번가 티켓
· 관람인원: 1일 2,900매
-인터넷 예매: 내외국인 2,700매(1인당 최대 4매 이내 가능)
-현장예매: 외국인 한정 200명(당일 선착순, 1인당 2매 이내 가능) *신분증 필참
· 관람요금: 3,000원
· 무료 관람 대상자
-국가유공자(보훈보상대상자 포함) 본인 및 배우자
-국가유족증 본인
-중증장애인 본인 및 동반 1인
-경증장애인 본인
-보호자와 동행한 만 6세 이하 영유아(단, 보호자는 사전 예매 필수)
-만 65세 이상 어르신
-한복 착용자 *한복 무료관람 가이드라인에 적합해야 함
*사진은 SONY a7m3+SIGMA 35mm F2 DG DN|Contemporary, 리코 GR3x(Positive mode)로 촬영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