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고 무거운 dslr 은 절대 가지고 다닐 수 없는데 아이폰은 만족스럽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엔 너무 고가의 미러리스 카메라를 구입하긴 부담스럽지만 또 스타일리시한 카메라가 갖고 싶다면
망설이지 않고 추천하고 싶은 카메라다. "
by 정멜멜 @meltingframe.in.seoul
사진을 찍으며 일하고 있다. 일할 때는 큰 카메라, 렌즈 여러 개, 때로는 삼각대와 조명까지 장비들을 거의 이고 지고 다니기 때문에 일이 아닐 때까지 어깨와 허리를 혹사시키고 싶지 않았다. 여행을 가거나 일상생활을 할 땐 자동카메라인 yashica t4 와 필름 두어 개를 챙겨 다니거나, 그것도 좀 무겁게 느껴지는 날이면 아이폰으로 촬영을 하는데 만족하곤 했다. 문제는 아이폰의 점점 더 과해지는 선예도였다. 업그레이드되는 화질에만 집착하다 보니 사진에서 날것의 무언가를 너무 강조한다는 느낌이 강해졌고 기변을 거듭할수록 찍히는 사진들이 내 기준에선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일상을 최대한 뚜렷하게 남기는 것보다는 좀 덜 선명하더라도 부드럽고 따뜻하게 기억하고 싶어 기록을 해온 나로선 별로 반갑지 않은 사실이었다. 아이폰만큼 자주 들고 다닐 수 있고, 부담 없는 카메라를 찾아 나설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gr3x는 20대 초반 이후 아주 오랜만에 써보는 콤팩트 카메라인데 리코 시리즈의 작고 매끈하고 군더더기 없는 생김새, 코트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적당한 크기, 성능 대비 부담 없는 가격대, 무엇보다 분위기 있는 색감에 대한 이야기는 늘 들어왔기 때문에 언젠가 한 번 정도는 사서 써보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던 카메라다.

지난 해 늦가을 출시된 gr3x 를 구입했다. 기존 시리즈와 가장 큰 차이점은 화각이고, 구매를 하기로 결정한 이유도 화각이다. 전작인 gr3 와 약간의 AF 개선을 제외하면 사양은 비슷하다. 그러나 28mm 와 40mm 라는 화각 차이가 있다. 특히 포토그래퍼이자 유튜버인 Sean Tucker 의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DhNqHDsWipU&t=2s) 가 구매에 큰 결정을 미쳤다.
평소에도 광각 렌즈보다는 단렌즈나 줌렌즈를 즐겨 쓰기 때문에 오히려 40mm 를 쉽게 고를 수 있었다. 넓은 화각으로 찍은 시원 시원한 풍경 사진 촬영을 좋아한다면 28mm 쪽이 더 만족스러울 수 있겠다. 물론 40mm 로도 풍경 사진 촬영은 충분히 가능하다.
ISO 400, 1/160, f/16

ISO 640, 1/200, f/16 ISO 500, 1/80, f/5.6

다만 나의 경우, 주변을 스치는 일상의 풍경들 - 예를 들면 반려동물들이 평온하게 늘어져 있는 모습이나 주말에 시간 내어 만든 요리, 친구와 갖는 커피 타임, 키우고 있는 화분의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장면, 잠시 근처 산책을 하다가 만난 빛과 그림자 같은 아주 사소하고 가까운 순간순간들을 담는 데일리 카메라가 필요했기 때문에 40mm 화각이 무척 적합하다고 생각했고 망설임 없이 gr3x를 선택했다. 줌 기능은 없지만 크롭 기능이 있기 때문에 50mm, 71mm 화각으로도 촬영이 가능하다.
ISO 400, 1/25, f/6.3

ISO 400, 1/25, f/6.3

ISO 500, 1/160, f/4.5

ISO 640, 1/125, f/3.5

ISO 400, 1/250, f/7.1

ISO 400, 1/200, f/11

ISO 1250, 1/320, f/2.8

ISO 500, 1/320, f/7.1

리코의 심플한 외관과 그립감은 유명하다. 어떤 케이스를 사용할지 이것저것 검색해 봤지만, 본체가 착 감기는 가죽 케이스가 역시 제격이라 생각해 구입해 사용하고 있고 만족하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아이폰 12 pro 보다 살짝 짧고 두껍다. 손이 많이 크다면 조금 작게 느껴질 수 있을 정도의 사이즈. 가벼워야 많이 들고 다니고, 손에서 가까워야 뭐든 찍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볍고 작은 카메라를 선호한다. 이 정도로 작은 카메라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굉장히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이기 때문에 카메라를 한두 개 거쳐본 사람이라면 잠시만 만져봐도 “그렇구나” 하고 구조를 알 수 있다.
ISO 400, 1/100, f/5.0 ISO 400, 1/1250, f/5.0

초근접 촬영이 가능한 매크로 모드.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좋아하는 나로선 꽤 반가운 기능이다.
작은 공간에서 작은 물체를 가깝게 찍을 때, 질감을 강조하고 싶을 때 빛을 발한다.
ISO 400, 1/25, f/6.3 ISO 1000, 1/250, f/3.2


평범하기 그지없는 물체를 아주 가까이, 면밀히 들여다 보는것.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하고 푹 잠길 수 있는 것.
사진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ISO 1000, 1/250, f/5.6 ISO 1000, 1/250, f/5.6

어느 정도까지 접사가 되는지 궁금해 읽던 책의 한 문장을 찍어보았다. 무리 없이 가능하다.
ISO 400, 1/60, f/16

지금 살고 있는 집 거실은 푸른 빛이 유난히 많이 반사되어 들어오는데다가 바닥재는 살짝 온기가 도는 초록색이다보니 아이폰으로는 색 잡기가 상당히 어려운 편이다. 색감 테스트 겸 촬영을 해보았다. 아이폰과 비교했을 때 색감을 확실하게 잘 잡아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침 빛이 잘 들어오는 시간이었다.
ISO 400, 1/450, f/3.5

ISO 500, 1/30, f/13 : 이 사진은 좀 더 보정을 해보았다.

리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한 포지티브 필름 모드는 보정을 따로 배우거나 시간을 내서 조정하지 않아도 제법 분위기 있는 사진을 만들어 준다. 보통은 모드 변경을 하지 않고 원본 촬영을 선호하지만, 이 포지티브 필름 모드는 이상하게 필터를 과하게 덧씌운 느낌이 나거나 하지 않고 아주 적당하게 어떤 선을 지키며 변화를 주는 정도라 계속 사용해 보고 있다. 이 포스트의 사진들은 모드 포지티브 모드로 찍었다. ISO를 높인 후, 라이트룸에서 그레인을 좀 거칠게 추가하면 제법 필름 사진 같은 느낌이 난다.
SO 400, 1/250, f/7.1 ISO 1000, 1/25, f/4.1

개인적으로는 따뜻한 기운에 약간 잠긴듯한 톤을 선호하기 때문에 가끔은 색온도를 일부러 조금씩 바꿔서 촬영하는 편이다. 늦은 오후, 태양의 냄새가 어디선가 조금씩 묻어 나오는 것 같은 사진들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시간대에는 일부러 화이트 밸런스를 조정해 바로 잡지 않을 때도 많다. 음식 사진을 찍을 때,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푸른색은 의도적으로 제거하기도 한다.
ISO 1000, 1/80, f/2.8 ISO 1000, 1/250, f/5.6

ISO 640, 1/80, f/10 ISO 400, 1/100, f/6.3

작고 가벼운 카메라를 쓸 때 가장 걱정되는 것은 어두운 곳에서 사진이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것인데, gr3x 는 특히 300g 도 채 되지 않는 무게이기 때문에 우려스러웠다. 몇개월 사용해본 결과 생각보다 손떨림을 잘 잡아준다. 공연장과 전시장을 찾아가 촬영해 보니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ISO를 1000 이상 끌어올려야 안정적으로 찍을 수 있지만, 노이즈가 좀 생기더라도 보정 프로그램으로 잡아줄 수 있으니 괜찮다. 노이즈와 색수차를 제거하는 과정을 간단하게 거치고 웹이나 SNS 에 업로드할 목적으로 리사이즈를 하면 특별한 문제는 없어 보였다. 이 포스트에 올라온 공연장, 전시장의 사진들은 모두 공식적으로 초대와 촬영 허가를 받고 찍은 것이다.
ISO 1250, 1/30, f/4.0

ISO 1600, 1/100, f/3.2 ISO 1600, 1/1600, f/2.

완벽한 카메라는 없다. 완벽한 사람이나 완벽한 인생이 없듯이. 리코 역시 누군가에겐 어딘가 아쉽고 부족한 카메라일 수 있으나 지금 당장 나에겐 여러모로 필요하고 적절한 카메라였다. 크고 무거운 dslr 은 절대 가지고 다닐 수 없는데 아이폰은 만족스럽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엔 너무 고가의 미러리스 카메라를 구입하긴 부담스럽지만 또 스타일리시한 카메라가 갖고 싶다면 망설이지 않고 추천하고 싶은 카메라다. 무엇보다 매일 매일 가지고 다닐 수 있는지, 가 카메라를 고르는 중요한 기준이라면 더욱 추천하고 싶다. 28mm 화각도 리코의 큰 장점이자 특징이기 때문에 다음 시리즈가 이전처럼 28mm로 나온다고 해도 충분히 구입 의향이 있으며 어떤 면이 더 업그레이드가 될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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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들은 원본에서 수직, 수평, 약간의 밝기와 대비 조절, 그레인 추가 등 색감을 크게 해치지 않는 선의 일부 보정을 거쳤습니다.
mar,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