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가 경쟁력의 기본이 된 요즘, 세계 최초 소리 박물관 오디움(Audeum)은 건축물과 오디오, 두 가지 자체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곳입니다.



오디움
일본 유명 건축가 쿠마 켄고와 디자이너 하라 켄야가 참여한 건물은 마치 파이프 오르간 같기도 혹은 윈드차임 같기도 합니다. 2만 개의 알루미늄 파이프가 외벽을 커튼처럼 감싸고 있으며 파이프로 통과된 공기가 금방이라도 커다란 진동과 소리를 일으킬 것만 같아요. 입구로 내려가는 계단 중간중간 세워진 거울 기둥과 투명창으로 된 외벽은 공간이 넓어 보이게 만들어 파이프가 건물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도 답답함이 없습니다.
또 하나의 콘텐츠는 오디오입니다. KCC 정상영 명예회장과 오디오 마니아 정몽진 회장이 사재로 출현한 박물관답게 오디움의 주력 콘텐츠는 바로 오디오입니다. 건물 외관으로 시각적 자극을 받았다면 박물관 내엔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요소들이 가득합니다. 특히 다양한 형태와 사운드를 가진 오디오 수집품을 보고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오디움의 가장 큰 매력이에요. 그렇다 보니 음향이나 스피커에 관심이 높은 사람들이 개관전을 보기 위해 예약 전쟁에 뛰어들고, 이 예약 전쟁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치열합니다.
이곳을 방문해야겠다고 계획을 세웠을 때 초기 목적은 오디오보다는 건물에 집중되어 있었어요. 오디움, 오디오, 음향과 관련된 정보와 자료를 수집하고 되새기면서도 다가가기 어렵다란 느낌을 막연하게 가졌거든요. 그러나 도슨트 설명과 함께 개관전 《정음(正音): 소리의 여정》 을 보고 들으며 느낀 점은 오디오 문외한이란 고민과 걱정은 무용한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개관전 《정음(正音): 소리의 여정》

대기 공간
안내 데스크에서 예약자 이름을 얘기하고 당일 티켓과 리플릿을 받은 뒤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렸습니다. 대기실에선 쿠마 켄고의 인터뷰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시간대 예약자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안내 데스크에서 배부한 티켓 검표가 끝난 후 본격적인 관람이 시작되는데요. 해설이 필수인 전시이기 때문에 모든 예약자가 함께 움직이는 전시 투어 형태로 진행됩니다.


JBL 파라곤

독일 KlangFilm Eurodyn

웨스턴 일렉트릭 757A(라디오 방송국이나 녹음실에서 볼 수 있는 라우드 스피커)
오디움은 개관전 《정음: 소리의 여정》을 통해 좋은 소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탐구하고, 그 하나의 정의로 하이파이(High fidelity, Hi-Fi)를 제시합니다. '원음과 원화에 충실한 재현'이란 의미를 가진 하이파이에서 알 수 있듯이 오디움은 왜곡은 최소화하되 스피커마다 달라지는 생생하면서도 다양한 소리를 전함으로써 새롭고 즐거운 청취 경험을 제공해요.
도슨트는 상징적인 가정용 하이파이 스피커와 앰프 소개로 전시 투어를 시작합니다. 1 전시실에 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스피커 형태에 대한 제 고정관념은 산산이 부서집니다. 공연장에서 볼 수 있는 혹은 유명한 마샬처럼 가정용 또는 인테리어용으로 사용되는 보편적 외관을 가진 스피커만 알고 있던 제 자그마한 지식 창고가 순식간에 확장돼요. 커다란 수레를 연상케 하는 물체도, 가구처럼 보이는 것도, 천장에 매달려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검은색 물체도 모두 스피커로 모양만큼이나 출력하는 소리도 천차만별입니다. 당시 국가 상황에 따라 스피커 모양이 다르게 제작되었다는 점도 흥미로웠어요. 예를 들어 독일은 전쟁 때문에 이동이 용이하고 쉽게 설치할 수 있게 스피커가 제작된 반면 미국은 오락 용도로써 대형 극장에 고정형 스피커가 설치되었다는 점. 평소에 쉽게 볼 수 없는 다양한 외관의 스피커가 신기하고 놀라워 전시실을 이동할 때마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스피커로 끌려갑니다.
3층 마지막 전시실에선 757A 스튜디오 모니터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전곡을 청음 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스피커에서 나온 깨끗하고 맑은 소리가 입자로 변환되어 귀 안쪽 어딘가에 안착한 것처럼 <서른 즈음에> 음 하나하나가 귓가에서 또렷하게 맴돌았어요. 이때부터 사람들이 좋은 스피커로 음악을 듣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는데, 소리와 가까워지는 기분은 생각보다 더 황홀한 경험이었습니다.


에디슨 축음기
다음 전시실로 향하는 복도엔 토머스 알바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를 볼 수 있는 미니 전시 공간이 있는데, 이렇게 에디슨의 발명품을 볼 수 있어요.

16-A, 16-B 사운드 시스템(소형 극장용 스피커 시스템)


11-A 사운드 시스템(공공 방송 시스템에 적합한 스트레이트 혼)

12-A, 13-A 사운드 시스템(최초의 대형 극장용 사운드 시스템)
앞서 757A 스튜디오 모니터로 <서른 즈음에>를 들었던 것처럼 도슨트가 시대별 스피커의 역사와 특징을 소개한 뒤 스피커가 어떤 소리를 출력하는지, 공간 안에서 어떻게 공명하는지를 들려줘요. 예컨대 1 전시실에서는 1930년대 당시 양대 산맥이었던 미국, 독일 스피커의 차이를 들을 수 있었다면 3 전시실에선 라우드 스피커가 얼마나 정확하고 편향되지 않은 소리를 제공하는지 보여주고요. 7 전시실에서는 영화관 영사실에서 바깥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옛날에 사용한 내부 모니터용 스피커와 극장용 스피커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특히 7 전시실에서 스피커에 따라 소리가 다름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어요. 영사실 모니터용 스피커로 듣는 <무시로>는 집에 있는 스피커로도 언제든 들을 수 있는 음향이었다면 극장용 스피커는 공간 곳곳에 소리가 닿아야 하는 만큼 넓게 울리며 퍼져나갑니다. 마치 공연장 안에서 <무시로> 라이브를 듣는 기분. 확연하게 다가오는 그 차이에서 동일한 오디오 소스일지라도 스피커에 따라 다른 울림으로 치환될 수 있음을 몸소 깨닫게 돼요.


사진 전시 《수집과 기록》
이어서 오디움 개관을 기념해 후카오 다이키가 참여한 아카이브 사진 전시 《수집과 기록》를 관람하게 됩니다. 수 백 개의 카메라가 벽에 걸려 장관을 이루지만 카메라와 오디오의 연관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는데 궁금증은 전시 소개에서 풀렸습니다. 《수집과 기록》은 1890~1960년대에 이르는 오디움 소장품을 기록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소장품의 이미지를 기록해 공간과 장치들이 공명하는 순간을 표현했습니다. 다양한 브랜드와 기종의 카메라를 만날 수 있는데 펜탁스처럼 세기피앤씨에서 취급하고 있는 브랜드도 있어 반가웠어요.
카메라뿐만 아니라 직접 촬영한 오디움 건축 사진, 컬렉션 사진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앞서 오디움은 두 가지의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장소라고 말했는데요. 이 두 가지 소재를 피사체로 하여 사진으로 남긴 것입니다. 이쯤에서 또다시 드는 의문. 건축물이 훌륭할지언정 이것이 컬렉션과 연관성이 없다면 전시의 유기성은 사라지고 맙니다. 후카오 다이키는 건축물과 컬렉션의 조우를 담았습니다. 공간 자체가 소리를 가시화한 곳이라 느끼고 소리를 채집하는 듯한 감각으로 건축에 생동감을 부여했다고 하죠. 워낙 카메라에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구조로 조성되어 있지만 공간 한가운데 놓인 쇼케이스 속 사진도 유심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작가가 채집한 소리가 관람객에게 조금씩 흘러들지도 모르니까요.



뮤직박스
마지막은 음악을 재생하는 매체가 없던 시절에 탄생한 기계 악기, 뮤직박스가 모여있는 곳입니다. 요즘엔 테마파크에서 많이 들을 수 있어요. 코인을 넣으면 자동 피아노의 건반이 자동으로 눌리면서 에버랜드나 롯데월드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곡이 흘러나오는가 하면 저게 디스크라고?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엄청 큰 디스크(Disc)도 볼 수 있어 시각, 청각적 정보가 몰려 들어와 한 눈을 팔 새가 없습니다.






전시 투어의 끝이자 하이라이트, 청음 공간입니다. 보기만 해도 압도되는 빈티지 오르골과 커다란 스피커, 10만 5천 장의 바이닐, 그리고 CD가 공간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사진 셔터 소리가 가장 많이 들린 곳이었어요. 들어서는 순간 저절로 휴대폰이나 카메라를 들게 만드는 마법의 공간입니다.
클래식, 연주곡 등을 약 30분간 청음 하게 되며 빈티지 오르골 양옆에 있는 스피커가 공간 가득 소리를 뻗어냅니다. 커다란 스피커에서 나온 소리를 품으려면 이 정도 규모의 공간은 필요하구나란 생각이 들었는데 훨씬 더 큰 공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스피커라는 설명은 이해하기도 전에 납득이 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신성하고도 웅장한 크리스마스 곡에서 가창자들의 합창 부분은 강한 소리와 진동을 동반해 실체가 없음에도 제 몸을 실시간으로 스쳐 지나갔고 그 순간은 아직도 선명해요.
청음이 끝나면 전시 투어도 비로소 진짜 끝입니다. 오디움 관계자는 이곳이 유일무이한 곳이라고 해요. 수많은 오디오 기계를 볼 수 있는 곳은 존재하겠지만 다 함께 소리를 듣는 건 드문 일이죠. 오디움은 ‘잘 세팅된 공간에서 또렷한 소리를 직접 듣는’ 것으로 유일무이한 가치를 창조합니다.

오디움
스피커나 앰프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다면 ‘세상엔 크기도, 형태도 다양한 오디오 기계가 많다’라는 감상을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전시입니다. 저 역시도 그랬고요. 하지만 다양한 제품을 구경하고, 그에 대한 설명을 듣고, 출력되는 사운드를 듣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 건 저의 지식과는 상관없었습니다. 앞서 무용하다 말한 것도 이 때문이었어요. 비록 이 분야에 일가견은 없을지라도 보고 듣는 모든 것을 그 자리에서 내 것으로 보관하면 되는 전시니까요. 또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스피커로 음악을 들어볼 수 있었던 경험도 전시 투어에서 가치 있는 일이었으니 혹시나 ‘난 스피커를 잘 몰라’ 하며 전시 예약을 망설이고 있다면 모든 생각을 비우고 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모든 것을 비우고 갔지만 되돌아올 땐 분명 머릿속에, 가슴속에 채워져 있는 무언가를 발견할 테니까요.
오디움 Audeum 전시 투어 안내
· 관람 일정: 매주 목, 금, 토 10:00/11:00/13:30/14:30/15:30 진행
· 소요 시간: 약 90분 (개별 관람 불가)
· 1일 1인 1매 수량 제한
· 예약 페이지(링크)
*사전 예약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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