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렌즈를 친구 삼아 떠나는 동네 여행 ‘나의 반려 렌즈’. 오늘은 SIGMA 24-70mm F2.8 DG DN II | ART와 함께 떠나는 수원 행궁동 여행입니다. 이번 촬영은 SIGMA 24-70mm F2.8 DG DN II | ART 렌즈와 파나소닉 S5 II로 진행했습니다.
혹시 그거 아나요? 시그마 렌즈의 마운트 근처에는 빈티지 넘버가 있습니다. 그 렌즈가 처음 출시된 해를 적어 둔 숫자죠. SIGMA 24-70mm F2.8 DG DN | ART의 빈티지 넘버는 019. 약 5년 전에 출시된 렌즈인 셈인데 생각보다 빠르게 리뉴얼되어 두 번째 모델이 출시됐습니다. SIGMA 24-70mm F2.8 DG DN II | ART(이하 24-70 DG DN II)는 이전 모델보다 좀 더 작고 가벼워졌지만 성능은 대폭 향상되어 AF 속도가 향상되고 더 선명해졌습니다.

저는 사진을 찍기 위해 나갈 때 카메라 하나에 렌즈 하나만 들고 나가는 것을 선호합니다. 설령 렌즈의 화각이 아쉬운 상황이 생기더라도 들고 나간 렌즈에 맞춰 사진을 찍습니다. 물론 ‘이럴 때는 초광각이 있으면 좋을 텐데’ 혹은 ‘딱 100mm만 더 망원이면 좋겠다’ 싶은 상황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때는 아쉽지만 깔끔하게 포기합니다. 오늘은 그 사진을 찍은 날이 아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면서요.

이렇게 하면 우선 가방이 가볍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한 바퀴 돌며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됩니다. 가방이 가벼우면 더 멀리 더 오래 걸을 수 있죠. 새로운 장면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고요. 성실하게 걷고 또 걸으며 사진을 찍으면 더 많은 렌즈를 가지고 있을 때 보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한 가지 장점은 어떤 화각에 익숙해집니다. 렌즈에는 특정 화각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독자적인 개성이 있는데 그것을 발견할 수 있죠. 광각에서부터 망원까지 그렇게 각각의 화각에 대한 이해가 늘어가면 그만큼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어떤 화각의 렌즈를 사용하면 효율적인 연출이 가능한지 경험적인 이해가 쌓이는 거죠.

솔직하게 말하자면 제가 즐거움을 느끼는 영역은 ‘사진’보다는 ‘촬영’에 가깝습니다. 어떤 렌즈를 들고 나가서 그 렌즈가 보여주는 개성적인 표현을 맛보는 것을 재미있게 느낍니다. 그래서 장면과 표현에 더 깊게 연구하며 작품을 만들어가는 예술가와는 거리가 있죠. 직업으로 사진을 찍고 영상을 만들지만 그때는 그야말로 카메라와 렌즈는 망치나 스패너같은 공구가 되고 이렇게 카메라 하나와 함께 데이트를 나서면 그때 비로소 사진을 찍는 취미의 영역에서 즐거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하나의 렌즈로만 떠나는 여행이 중요하죠.

오랜만에 표준 화각 줌렌즈를 가지고 길을 나섰습니다. 표준 화각 줌렌즈는 제법 넓은 광각에서 망원이 시작되는 구간까지 다양한 연출이 가능한 전천후 렌즈입니다. 광각의 왜곡과 망원의 압축 효과를 모두 맛볼 수 있지만 100mm 이상에서 시작되는 일부 대상에 시선을 고정하는 집중력은 조금 떨어집니다. 그 점을 생각하면 좋습니다.

또 한 가지. 최대 개방 조리개는 F2.8 정도지만 40~70mm 초점거리 구간에서는 이 정도 조리개로도 충분한 배경 흐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피사체에 한 발 정도 다가가면 극적인 입체감을 연출하는 것도 가능하죠. 3배 정도 되는 줌렌즈지만 적극적인 이동이 요구되는 렌즈기도 합니다.

새로운 24-70 DG DN II의 첫인상은 ‘미친 샤프니스’였습니다. 고성능 단초점렌즈의 조리개를 조였을 때 기대되는 선명함을 가지고 있었죠. 더 작아졌고 더 가벼워졌는데? 풀잎의 잎맥이 너무 진하고 선명하게 담겨서 깜짝 놀랐습니다. “와 이게 뭐야?” 결과물을 모니터로 보고 나온 솔직한 첫 감상. 광각으로 풍경을 촬영했는데요. 수원 화성은 골목의 아기자기한 장면을 찍을 수도 있고 공원 느낌을 담는 것도 가능합니다. 혹은 오랜 수원성의 전통 건물도 볼 수 있으니 정말 다양한 대상을 만날 수 있는 셈이죠.

먼 곳의 나무, 수풀이 샤프하게 표현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통 광각으로 먼 곳의 나무, 수풀을 촬영하면 적당히 뭉쳐 덩어리처럼 담기기 마련인데 이 렌즈는 너무나 선명하게 각각의 질감을 표현했습니다. 먼 건물의 창문도 명확했죠. 중앙에서 외곽까지 샤프니스는 쉽게 저하되지 않았습니다. 조리개를 개방하면 어느정도 수차도 비네팅도 보이지만 35mm 이상 망원단으로 이동하면 금방 사라집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각 화각의 단초점렌즈를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조리개링은 영상 영역에서 더욱 유용한 기능, 클릭 기능을 적용할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렌즈는 AF에 많은 심혈을 기울인 것이 느껴졌습니다. 속도가 빠른 것은 물론 동영상 촬영에서도 자연스러웠죠. 포커스 브리딩을 줄이려고 한 점도 영상 촬영을 고려한 부분. 조리개링을 적용하고 클릭감을 사용자가 정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도 영상 촬영자를 배려한 부분이라 볼 수 있습니다. 최근 렌즈는 영상 사용자의 비중이 높으니 이 점은 어쩌면 고급 렌즈로써 추구해야 할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충분한 자연스러움에 렌즈를 사용하는 동안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거의 없었습니다.
카페그루비 입구. 음악감상실 느낌의 작고 아늑한 카페입니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가기 전 이전부터 눈여겨 뒀던 카페에 들렀습니다. 카페그루비는 입구가 매우 조그마하고 밖에서는 나무로 꾸민 외관 덕에 안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아늑한 분위기에 항상 저음 풍성한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홀로 조용하게 앉아 음악을 듣는 분위기라 일행이 있을 때는 들르지 못했습니다. 홀로 나온 김에 용기를 내서 들어갔죠.
시그마 대구경 단초점 렌즈와 닮은 보케
예상대로 안쪽도 내장재를 모두 짙은 색의 나무로 꾸며 아늑한 분위기였습니다. 밝을 때 오면 좀 더 아늑한 기분이 들 듯 했습니다. 차갑게 나온 커피를 촬영했는데요. 최단 촬영 거리 0.17m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이는 원하는 거리는 언제든 얼마든지 들어가서 촬영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저 멀리 아련하게 흩어진 창과 화초가 어떤 느낌으로 보케가 흩어지는지 보여줍니다. 이 렌즈는 수차가 극도로 제어된 렌즈에서 볼 수 있는 빛망울 테두리가 부드러운 타입으로 올드렌즈의 개성은 기대하기 어렵더라도 어지러운 보케 때문에 묘사가 지저분해 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따스한 음악을 들으며 여유롭게 쉬다가 카페를 나섰습니다. 24-70 DG DN II과 떠난 수원 행궁동 데이트는 성공적. 외모에서부터 성격까지 모난 부분 없는 모범생적인 렌즈라 오히려 촬영 대상 자체에 좀 더 집중하게 됐습니다. 이런 렌즈라면 촬영 상황에서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의지하게 될 그런 파트너의 느낌. 믿을 만한 파트너가 소중하듯, 이런 렌즈 만나기 절대 쉽지 않습니다.
본 콘텐츠는 저작권에 의해 보호됩니다. 복제, 배포, 수정 또는 상업적 이용은 소유자의 허가 없이 금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