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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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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Travel & Place
[제주 카페 기행] 뜨거운 여름
차가운 커피와 휴식이 필요해 Y.A.H Coffee
2024.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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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로 되어 있다면 인류의 오랜 꿈인 월드 피스가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지극히 합당한 논리의 인류애적인 주장을 펼치며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위스키가 아닌 커피도 세계 평화에 꽤 이바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재미있는 생각을 보태 봅니다.

 

커피 중독자인 저는 카페인이 혈관을 돌아 뇌를 각성시키고, 커피가 담긴 잔을 들고 있는 시간과 대화가 오가는 순간을 즐깁니다. 고작 태운 열매의 씨앗을 우려먹는 것이 뭐가 그리 좋냐고 묻더라도 커피를 손에 들고 코로 냄새를 맡고 입으로 흘려 넣는 오묘한 그 느낌을 자세히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혈중 카페인 농도 과다가 죄는 아니잖아요?”  

 

제주에서 카페를 돌아다니며 커피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처음을 어떤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아름다운 곳으로 갈까?’, ‘로스터리를 갈까?’, ‘에스프레소바를 갈까?’ 등등 여러 곳을 떠올렸지만, 한 군데를 정한다는 것이 쉽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고심하다가 정한 곳은 한 에스프레소바. 동료를 일행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카페로 향했습니다. 햇볕 아래 서있던 차의 계기반에 표시된 실외 온도는 40도. 주차 공간이 없는 카페의 주변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지독한 더위 속을 헤엄치듯 걸어 도착하니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한 임시휴무’였습니다.

 

이마에 머물던 땀 한방울이 도르륵하고 눈으로 흘렀습니다. 땀의 소금기로 인한 따가움과 내리쬐는 햇볕에 잔뜩 찡그린 얼굴로 일행을 보니 마찬가지의 표정이 떠오르며 한 마디 툭 뱉습니다. “작업실 근처에 있는 제 단골 카페로 가시죠?”

 

 

 

 

과거의 제주시는 제주항이 있던 주변을 기점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는데, 그 주변을 원도심, 혹은 구도심이라고 부릅니다. 도시 계획을 거치지 못한 이 지역은 미로와 같지만, 재미있는 형태의 상권이 형성된 곳이기도 합니다. 행선지는 원도심을 가로지르는 ‘산지천’ 주변에 위치한 조그만 카페 ‘Y.A.H Coffee’입니다.

 

일렬로 늘어선 여러 가게들 가운데 짙은 갈색의 나무로 외관을 두르고, 곳곳에 주황색으로 된 차양막과 문구를 잔뜩 적어 둔 팻말들 덕분에 외관이 눈에 띕니다. 미국 카우보이들의 단골집일 것 같은 외관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손잡이를 잡은 손에 어쩐지 지긋이 힘이 들어가게 합니다.

 

 

 

 

내부에 들어서면 여러 락스타들의 플래그, 포스터와 같은 굿즈가 사방에 걸려있습니다. 유독 많이 보이는 ‘롤링스톤즈’, 커다란 포스터로 한 켠에 걸린 ‘프린스’, ‘너바나’와 '건스 앤 로지즈’ 그리고 ‘AC/DC’ 등을 보면 다소 과격한 음악을 좋아할 주인장의 취향이 읽힙니다.(그 사이에 딱 하나가 끼어 있는 ‘비틀즈’가 어쩐지 시선을 강탈합니다만) 아니나 다를까 아담한 체구의 여주인장은 카모플라쥬 패턴의 모자를 썼고, 그녀의 티셔츠에는 메탈리카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앵거스 영이 연주하는 <Back In Black>의 날카로운 기타 리프가 들리는 것만 같은데, 다만 흘러나오는 음악은 R&B에 가깝습니다. ‘뭐, 아무래도 손님들이 있으니까.’라며 문 주위에 자리잡은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보니 다행히도 카페에서 흔히 쓰는 마샬의 제품이 아닙니다. 락 음악 마니아인 주인장은 손님을 위해 부드러운 음악을 틀어 두지만 기타 앰프 제조사인 마샬이 창립자인 짐 마샬의 사후에 예쁜 블루투스 스피커 제조사로서 소비되는 것에 통탄을 금치 못하며, 제네바 스피커를 가게에 둔 락 순혈주의자가 분명합니다.(네. 과장입니다. 그런 이유라면 어쩐지 JBL이 어울렸을 테죠.)

 

 

 

 

카페의 내부는 바가 크며, 바 앞에 앉을 수 있는 몇 개의 자리와 그 주변을 둘러 몇 개의 의자와 작은 테이블이 두른 구조입니다. 갔던 날은 바 내부를 여주인장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본래는 주인장 부부 내외가 운영을 하는 듯 합니다. 메뉴를 주문하려고 바 주변을 슬쩍 보니 브루잉 기구도 몇 개 보입니다. 독특한 구조의 하리오 V60 스이렌 드리퍼를 사용하는 것 같은데, 평소에 궁금했던지라 브루잉(핸드 드립은 무근본 영어인지라) 커피를 먹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더위에 지친 몸으로는 어쩐지 마시고 싶은 커피가 아닙니다.     

           

난 아이스 라떼, 일행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습니다.

 

 

 

 

그렇게 어떤 카페를 갈까 고민을 했건만 선택한 커피는 결국은 더위에 지쳐 가장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커피였습니다. 이탈리아어로 커피를 뜻하는 ‘Caffe’와 우유를 뜻하는 ‘Latte’가 합쳐진 커피인 카페 라테는 실상은 미국에서 유래된 커피입니다. 우유를 잔뜩 부어서 마신다는 것은 프랑스의 카페오레와 비슷한데, 에스프레소가 쓰인다는 점에서 다소 다릅니다.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부어서 마시는 것은 이탈리아의 카푸치노나 호주식 카푸치노인 플랫 화이트가 있는데, 역시나 우유를 ‘잔뜩’ 붓는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거기다 ‘아이스’인지라 차가운 우유에 얼음까지 가득입니다. 차가운 커피를 선호하는 나라는 사실 몇 군데 없어서 에스프레소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이스 커피를 혐오 수준으로 싫어하기도 하죠. 그건 풍습에 의한 것만이 아닌지라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의 미각은 같은 음식이라도 차가울 때와 뜨거울 때 맛을 다르게 느낍니다. 또한 커피 맛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인 ‘향미’는 따뜻할 때 뿜어져 나오죠.

 

 

 

 

하지만 알아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 더위에 어렵서리 카페에 앉으니 본능은 강렬히 차가운 것과 수분을 원합니다. 게다가 점심 식사로 먹은 매운 해장국 때문에 화끈거리는 제 위장은 지금 진정이 필요합니다. ‘카페란 것은 결국 편하게 앉아서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곳 아냐?’란 생각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You’re Always Happy’의 글자를 따서 지어진 것이 이 카페의 이름이어서 줄여서 ‘Y.A.H’라는 문구가 보입니다.

 

 

 

 

’그래, 난 지금 커피 한 잔으로 그냥 행복해지고 싶어.’

 

작은 에스프레소 머신이지만 여주인장은 원두를 바탐리스 포터 필터에 담아 추출 모양을 살펴보며 정성 들여 커피를 내립니다. 화려한 기계들로 바 내부를 둘러 두고는 대충 만들어내는 커피에 실망했던 경험이 적지 않은 터라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의 신중함은 무엇보다 커피에 신뢰가 가도록 하는 요소입니다. 근본 없다는 아이스 라테는 사실 은근히 까다로운 메뉴여서 원두의 분쇄와 추출, 그리고 우유의 선정까지 바리스타가 고심하지 않으면 여간 제대로 맛을 낼 수 없는 커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미국 분위기가 가득한 카페에서 미국 커피를 마시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사방에 걸린 굿즈 속의 락스타들 가운데 절반은 영국인이지만 말입니다.)  

 

이제 보니 카페 안에는 다양한 성별과 연령대의 손님들이 있고, 얼핏 들리는 여주인장과의 대화 내용이 단골들인 것 같습니다. 편도로 표를 끊어 혼자 여행을 왔다는 바 가장자리에 앉은 여성 손님에게 혹시 심심하진 않을까 쿠키를 하나 건네며 대화를 이어가는 여주인장의 모습을 보며 느낍니다.

 

‘카페 이름이 그냥 You’re Always.Happy는 아니었군요?’  

 

 

 


 

사용 제품 ㅣ 시그마 fp + 자이스 Milvus 35mm f/1.4, Otus 55mm f/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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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샬장 글 · 사진

영상제작자(Baby/lonians film works)

https://www.instagram.com/special_jang

태그 #제주여행 #카페투어 #커피투어 #제주카페 #제주가볼만한곳 #Y.A.H 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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