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에게 영상 제작을 가르치기 위해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는 해발 고도가 340m에 이르는 꽤 높은 곳에 있고, 주위에 큰 건축물이 없이 나무에 둘러싸여 자연환경과 함께 내려다보는 풍광이 꽤 멋집니다. 학생들은 교통편이나 벌레와 새들이 날아드는 것에 대해 꽤 불만을 표시하곤 하는데, ‘시간이 지나고 지금을 떠올리면 분명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겠지.’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시기니까요.
언젠가부터 수업을 하다 보면 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한 건축물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모습이 나무에 가려진 그 건물은 지붕 한 귀퉁이만 보이는데, 지붕이 기와로 되어 있어 어쩐지 일반적인 가정집으로 보이진 않았습니다. 게다가 기와가 낡고 곳곳이 부서져 있어 그 사연이 무척 궁금했는데, 우연히 그곳으로 통하는 길을 발견하기 전에는 길마저 끊겼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막상 엄두를 내보진 않았습니다.

막상 앞을 가보니 딱히 접근하기 어려운 수준은 아니었는데, 멀리서 보던 것과는 달리 한 채의 건축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여러 채의 건축물들이 집합해 폐가가 아닌 꽤 큰 규모의 폐허와 같은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예닐곱 개는 되는 건축물들은 하나씩 시간을 두고 필요에 의해 증축을 한 것인지 크기와 모양이 전혀 통일성을 갖추지 못하고 미로처럼 얽혀 있는데, 각 건축물과 건축물 사이는 비를 맞지 않고 이동할 수 있도록 지붕이 덮인 통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슬레이트 지붕과 각진 회백색 벽으로 이루어져 미적 요소는 철저히 배제하고 실용성만을 고려한 것으로 보이는 건축물들의 모습은 삭막하게 느껴집니다.


부서진 의자, 덩굴에 덮인 자전거, 낡은 개집 등이 바깥에 방치되어 있고 눈앞에 보이는 건축물부터 들어가 보니 내부는 대부분이 살던 모습 그대로 세간살이들이 남아있습니다. 폐허를 돌아다니다 보면 남겨진 그 흔적들을 통해 그 속에 살던 사람들을 상상해 보곤 합니다. 근데 이 폐허는 다른 곳보다 이상하리만큼 많은 것들이 제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음에도 그 속에서 살던 사람들의 형태가 그려지질 않습니다. 유행이 지난 굽이 높은 구두, 아이의 전자피아노, 방 한가운데 고이 걸린 예비군복, 고가구, 휠체어, 부엌의 식기들을 봐서도 가족인지 집단인지도 연령대와 몇 명이 거주하고 있었는지를 떠올려보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폐허를 좋아하는 취향이라는 것이 ‘겁이 없다’는 것과는 완전히 별개로 구분되어야 하는 성향인지라 인간이 사라진 건축물이 자연과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며 왜인지 모를 향수에 젖는 기분을 무척 좋아하는데, 이때 공포는 절대 사절입니다. 근데 멀리서 창밖으로 바라보며 상상했을 때는 숲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폐허로써 상상하며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실제로 와서 둘러보니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코끝에는 땀이 맺히고 등줄기는 서늘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변하는 구조와 모양, 그리고 다른 건물로 통하는 통로와 계단들. 현대식 부엌과 아궁이가 공존하고 있기도 하고, 방금 전에는 책장에서 입시 서적과 최신의 컴퓨터 부품 박스를 봤는데 바깥에는 재래식 농기구들이 가득하기도 합니다. 일가친척들이 모여 살았다기에도 너무 밀집되어 있고 그럼에도 분리는 되어 있으며, 사실상 도심과의 접근성을 생각하면 이렇게 많은 인원이 미로처럼 증축을 거듭하며 거주하고 있을 필요성이 뭐가 있을까? 같은 점점 공포심만 쌓여가는 의문이 더해집니다.

카메라에 장착해 둔 렌즈는 Zeiss Otus 55mm f/1.4입니다. 이 렌즈로 폐허 전체의 모습을 담을 수 있을 만큼 거리를 확보하는 것은 키보다 높게 자란 잡초들과 나무들만큼 불가능합니다. 글로 설명하기 힘든 이 폐허의 구조는 광각 렌즈를 하나 가지고 높은 곳에 올라 담는다면 해결이 될 것 같지만, 이 폐허의 구조보다는 면면에 담긴 분위기를 이미지로 새기기엔 지금의 렌즈가 오히려 적합합니다.
폐허의 건물들은 산의 경사를 따라 고저차를 두고 펼쳐져 있는데, 창가를 통해서 항상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던 그 건축물은 제일 위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와지붕을 보며 한옥과 같은 모습을 기대했던 것과 달리 반듯한 단일 사각형의 형태로 시멘트를 사용해 지어낸 건축물입니다.

가운데 문 앞으로 한 대만 주차가 가능한 주차 라인을 정렬시키고, 양옆 창문은 대칭을 이루고 있는 것이 사각형에 대한 집착마저 느껴집니다. 내부 구조도 집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독특해서 부엌이나 방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고, 칸막이와 같은 벽을 이용해 두 공간으로 나뉘어져 안쪽으로 커다란 마루가 집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창문은 내부와 외부를 확인하는 용도가 아니라 빛만 들어오도록 파란색 비닐을 붙여 놓았는데 오염되어 빛이 혼탁합니다.
뒷문으로 나가보니 여태는 보이지 않았던 건축물 하나가 더 있고 그곳으로 통하는 길과 계단이 나 있습니다. 수풀로 대부분 덮인 길을 수풀을 치우며 조심스레 올라가야 하는데, 그 끝에는 작은 정사각형의 건물 하나가 다른 건축물들과 나무들에 둘러싸여 그 모습을 조심스레 감추고 있습니다.
가운데는 미닫이문 하나가 있고 창문도 보이지도 않는데, 조심스레 미닫이문을 밀어 보니 커다란 소리로 삐걱거리며 문이 열립니다. 그 소리에 놀란 탓인지 까마귀가 날갯짓을 푸드덕거리며 울부짖는 소리가 메아리로 울려 퍼집니다.

나도 모르게 “실례하겠습니다.”라는 인사를 하며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저릿한 느낌이 몸을 훑고 지나가고 다리에 힘이 빠집니다.
신당입니다. 공포와 당혹스러움에 다시 밖으로 나와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보자 여태 지나온 거미줄처럼 얽힌 건축물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아, 그래서 여기가 이런 형태였구나.”라고 혼자 되뇝니다. 어서 돌아가고 싶지만 여태 품었던 의문의 해결과 함께 더한 궁금증이 일어 다시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 봅니다.
신당 안은 향로와 종, 그리고 북을 비롯해 불상까지 제단을 비롯해 책상과 의자까지 그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단 뒤의 벽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습니다. 여기까지 이르는 길과 내부의 공기 속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먼지와 곰팡이의 냄새는 오랫동안 누가 드나들지 않은 것 같지만, 가운데 놓인 빨간색 방석 위에선 누군가가 방금 전까지도 절을 하고 있었던 것만 같습니다. 궁금증을 해결하고 사진을 한 장 찍고는 허겁지겁 올라갔던 길을 돌아 내려와 어서 그곳을 벗어났습니다.

학교에서 제 옆자리에는 나이가 지긋하고 점잖은 선생님이 한 분 앉아 계시는데,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인지라 지리와 역사를 비롯해 토속과 관련하여 책이나 검색으로는 알 수 없는 풍부한 이야기를 그의 입을 통해 종종 들을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관련 질문을 자주 하고, 대답을 들으며 작업에 대한 영감을 받곤 하기에 폐허에서 찍어온 사진들을 보여주며 “혹시 근처에 신당이 있던 것을 알고 계셨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알고 있었다는 표정으로 의자를 돌려 앉으며 “그럼요, 여기가 신들의 땅이잖아.”라고 합니다. “신들의 땅이요? 제주에 토속신이 많다고는 아는데, 그게 연관이 있나요?”라고 되묻자, “원래 제주에는 18,000개의 신이 있다고 하잖아. 그래서 신들을 모시는 곳이 곳곳에 있는데, 한라산 중턱 북쪽과 북동쪽으로 이르는 라인이 특히나 기가 세다고 그래서 많은 신당들이 몰려 있었어요. 그래서 옛날에는 신들의 땅이라고도 불렀었지.”라고 해주는데, 책에서 볼 때의 무미건조함과 달리 입으로 들으니 무척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구도심 쪽에도 그런 곳이 많다고 들었는데요.”라고 물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가자, “그쪽은 예전부터 피난을 온 사람들이나 배를 타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팍팍하던 사람들이 마찬가지로 피난을 와 자리 잡은 무속인들에게 의지하면서 많아진 거지.”라고 이야기를 해줍니다.
바람, 돌, 여자가 많다는 삼다도, 제주.
바람은 섬에서 배를 타야만 했던 남자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돌이 많다는 것은 농사를 지을 만한 땅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자가 없으니 여자는 많을 수밖에 없고, 땅이 험하니 그들은 억척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세계적인 휴양지가 되었지만, 여전히 전쟁과 차별, 오해의 역사 속에서 똘똘 뭉쳤던 사람들의 습성은 ‘괸당 문화’라는 형태로 남았고, 남자가 부족했던 탓에 가졌던 남아선호사상도 여전히 남았으며, 과한 교육열은 자식을 통해 현실을 벗어남을 기대했던 심리가 남았기 때문입니다.
힘겨운 일상에서 그들이 의지할 만한 대상은 18,000개나 되었고 그 존재들은 신이 되었습니다. 이걸 단순하게 미신이라고 치부하고,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으로 단정을 짓기에는 그 안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궁금해하는 것도 어쩌면 유익합니다. 어쩐지 그렇게 생각하니 겁쟁이처럼 버려진 신당 앞에서 바들거리며 떨었던 기억이 무섭지 않게 희석되는데, 그래도 다시 가라면 거절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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