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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매거진

돼지들
LIFETravel & Place
[Liminal Spaces]
그 섬의 돼지들
2024.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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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는 “사람 살리는 건 땅속에는 감자, 땅 위에는 돼지.”란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중요한 식자원인 돼지는 제주에선 더욱 특별한 존재입니다. 제주의 흑돼지는 문헌의 기록으로도 2세기경으로 올라갈 만큼 제주에서 오래 길러왔습니다. 단순히 먹을 것 이상으로 농사를 짓기 어려운 토양에서 흑돼지를 통해 얻는 거름은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해주고, 인분과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함으로써 지하수 오염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제주 흑돼지는 토종 흑돼지가 아닙니다. 제주의 토종 흑돼지는 절종 위기에 처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260여 마리가 보호받고 있습니다. 토종 흑돼지는 맛은 좋지만 생산성이 낮은 소형 품종이었습니다. 때문에 이를 개량하기 위해 일제 강점기에 개량종과 교배되기 시작했고, 아일랜드의 선교사 ‘맥그린치 신부(성이시돌)’는 제주도의 식량 문제와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버크셔 품종과 요크셔 품종을 들여와 제주 흑돼지의 좋은 맛과 외래 품종의 뛰어난 생산성이 접목된 새로운 흑돼지를 퍼트리게 됩니다. 1961년 설립된 ‘성이시돌 양돈 목장’은 제주의 근대 목축업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차갑고 맑은 소주 한 잔이 생각나는 고소한 흑돼지 안에 이런 역사가 들어있다니 참 재미있습니다. 지금도 성이시돌 목장이 있는 지역은 천주교 성지 가운데 하나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주변 한림 금악리 일대는 여전히 흑돼지를 사육하는 농장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최근 흑돼지 사육 시설들은 방역 관리와 위생 관리가 철저하고 첨단 설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제주의 서쪽 들판을 다니다 보면 폐쇄된 과거의 축사들을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 축사 내부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꾸밈’이란 부분을 고려하지 않은 탓에 원형과 곡선을 일절 배제하고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공간이 오히려 독특하게 다가옵니다. 제멋대로 각기 다른 크기로 뚫려 있는 창(이라기엔 그냥 구멍에 가깝지만)과 뚫린 지붕 사이로 빛이 새어들어오는 모습이 어쩐지 멋집니다.

 

이미 폐쇄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인지 축사는 토대를 위주로 남아있는 형태인지라 대부분이 차가운 느낌의 회색 콘크리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폐허를 다니다 알아챈 사실인데, 폐허 대부분 금속 구조물들이 대체로 남아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는 비싼 가격으로 되팔 수 있기에 그런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때문에 콘크리트의 회색 질감이 오히려 두드러지게 공간을 채우고 있습니다.

 

 


 

 

줄지어진 회색 콘크리트는 소실점에 이르려는 듯 정직한 투시의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재미있는 점 가운데 하나는 지붕은 콘크리트의 차가움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따뜻한 질감의 나무, 그것도 통나무로 엮어 두었다는 점입니다. 통나무 곳곳에 이끼가 끼어 연한 녹색마저 띄고 있으니 그 대비가 인상적인데, 지붕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도 자로 잰 것처럼 줄지어 엮여 있지만 군데군데 무너져 생겨난 비대칭이 매력적입니다.

 

 


 

 

차갑고 무거운 색상 톤의 구조물 사이로 밝은 빛이 들어오는 대비가 무척 강렬한데 디퓨전 필터를 활용해 빛의 경계면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 이런 상황에서는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만들 수 있습니다. 디퓨전 필터의 본래 역할은 날카로운 경계와 암부에 명부의 빛을 혼합시켜 다이내믹 레인지를 정돈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지만, 광원을 부드럽게 만드는 부가적인 효과를 얻는 것도 가능합니다.

 

 


 

 

카메라에 장착해둔 렌즈는 Zeiss Otus 55mm f/1.4입니다. ‘하루에 렌즈 하나’란 슬로건을 외치고 다니건만, 어쩐 일인지 가방 안에 렌즈를 하나 더 챙겨가지고 나왔습니다. 여분 렌즈는 Zeiss Milvus 25mm f/1.4. 실내에서 이미지의 원근을 과장되게 표현하기 적합한 렌즈인데 그럼에도 이미지를 이루고 있는 선을 교과서적으로 배치해서 편안한 느낌을 주고 싶어 렌즈는 바꾸지 않습니다.

 

 


 

 

폐허를 들르면 그 공간이 아직 수명을 갖고 그 활용에 맞는 역할을 하고 있던 때를 상상해 보곤 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이 공간 속에서 생활하고 있었을까?’를 떠올리면 어쩐지 눈앞에 그림이 펼쳐지는 것만 같아서 재미있습니다. 이곳은 수많은 가축들로 인해 번잡하기 이를 때가 없었을 텐데 정적과 적막만이 남아 어쩐지 현대미술품의 한 단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폐허를 찾는 알 수 없는 이 취향이 사실 어떤 감성을 쫓고 싶은 건 아닌지, 안개 속 바다 위 부표처럼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이 마냥 신기루만은 아닐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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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샬장 글 · 사진

영상제작자(Baby/lonians film works)

https://www.instagram.com/special_jang

태그 #사진에세이 #풍경사진 #풍경스냅 #폐허 #폐허탐험 #Liminal Spaces #제주흑돼지 #축사 #돼지의역사 #성이시돌 #시그마 #시그마fp #Sigma fp #자이스 #Zeiss #Otus 55mm f/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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