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도 연락을 자주 하는 촬영 장비 관계자가 있습니다. 그가 근무하는 업체는 훌륭한 가격대와 성능으로 카메라의 리그(rig)를 구성할 수 있는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보통 촬영 장비를 구성하다 보면 빠듯한 예산에 허덕이는 터라 촬영마다 그 브랜드 제품을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주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그와 실제로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지만 저의 귀찮은 상담을 모두 친절히 받아주기에 우리의 메신저 속의 대화는 꽤나 시시콜콜합니다.

“가변 ND 필터를 장착할 수 있는 가볍고 작은 ‘매트 박스(Matte Box)’가 출시되었군요? 하나 마련하고 싶은데, 취급하고 있는 그 매트 박스의 평은 괜찮나요?”라고 저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제품의 품질은 괜찮습니다만 저는 직접 피드백을 많이 받아보진 못했어요.”라는 대답에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라고 대답하자 그는 의외의 대답을 보내왔습니다.
“요샌 카메라 리그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매트 박스가 최후 순위에 있는 것 같아요.”

영상 촬영에 있어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던 매트 박스가 카메라 리그를 구성할 때 가장 후순위에 있다는 현장의 이야기는 꽤 놀라웠습니다. 매트 박스는 과거의 필름 시절에는 특수 효과 기법 가운데 하나였던 ‘매트 촬영(matte shot)’에서 화면을 합성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기법은 온전히 디지털의 영역이 된지라 지금은 빛을 조절하고 필터 사용을 위해서 사용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렌즈는 빛을 받아들여 상을 맺히게 만드는 구조로 이루어졌죠. 때문에 그 빛이 직접적으로 들어오는 것에는 의외로 취약합니다. 풀어보자면 렌즈는 빛이 사물에 부딪혀 반사된 빛의 다양한 정보를 받아들여 그를 기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 순수하고 강한 빛 그 자체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면 본래 받아들이려고 했던 빛의 정보마저 손상되어 버립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굴절형 렌즈는 렌즈가 겹겹이 겹쳐있는 구조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선 오류가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이미지에 불필요한 광선이나 얼룩이 발생하는 ‘플레어(flare)’, 렌즈 내부의 빛이 반사되어 광원의 잔상이 이미지와 겹치는 ‘고스트(ghost)’, 빛 퍼짐 현상이 나타나 이미지가 뿌옇게 되는 ‘글로우(glow)’와 같은 현상입니다.
최근의 렌즈는 과거에 비해 코팅 기술이 발전하며 앞서 언급한 광학적 오류가 현저히 줄었지만, ‘현저히'가 ‘완전히 발생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매트 박스는 렌즈로 직접 들어오는 빛을 차단하기 위한 용도로도 사용합니다. 때문에 각도를 조절이 가능한 ‘프렌치 플래그(french flag)’라는 차단막을 장착하고 있습니다. 프렌치 플래그는 일반적으로는 매트 박스의 상단에 장착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빛이 렌즈로 직접 들어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모자를 쓰는 것과 같죠. 또한 각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렌즈의 화각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조절이 가능합니다.
다만 대규모 촬영 현장에서는 여러 조명을 쓰다 보니 광원이 사방에서 들어오게 됩니다. 촬영자가 광원을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빛이 렌즈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매트 박스의 옆에 추가로 사이드 프렌치 플래그를 장착하여 광원으로 인하여 이미지가 손상되는 것을 막기도 합니다.

매트 박스의 또 다른 역할은 필터의 사용을 위한 홀더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매트 박스는 최소 한 대 이상의 사각 필터를 장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영상 촬영의 경우 셔터스피드(개각도)와 조리개, ISO의 개입이 극히 제한되기 때문에 노출을 조절하기 위해 ‘ND 필터(Neutral Density filter)’를 사용합니다. 게다가 영화 촬영의 경우 이미지에 감정을 불어넣기 위해 ‘디퓨전 필터(Difusion filter)’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매트 박스는 현장에서 빠져서는 안 될 장비입니다.
그럼에도 카메라의 리그를 구성할 때 매트 박스를 후순위에 두는 추세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미디어를 제작할 수 있는 시대에 모든 영상이 영상미를 추구하지 않기도 하고 미러리스 기술의 발달로 인해 장비는 점점 간소화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ND필터가 내장된 카메라도 많아졌습니다. 캠코더에서 유래된 내장 ND 기술은 여전히 고급 시네캠에선 채택하지 않는 기술이지만 간편함과 속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몇몇 시네캠과 미러리스 카메라에서 종종 채택되고 있기도 합니다.
비단 내장 ND가 아니라 편광 효과를 이용해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가변 ND’ 필터의 품질도 무척 좋아졌습니다. 때문에 전통적 형태의 ND 필터 사용이 줄었고 필터 홀더 용으로 매트 박스를 사용하는 경우도 줄었습니다.

디퓨전 필터의 경우는 영상미와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영화와 뮤직비디오, 혹은 일부 드라마 현장에서 주로 쓰이는데, 그를 제외하면 모든 영상 장르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필터는 아닙니다. 게다가 소프트웨어적으로 디퓨전 효과를 내주는 기능이 편집 프로그램에 추가되기 시작하고, 정밀하게 시뮬레이션된 플러그인까지 등장했습니다. 영상의 미학적인 부분을 고려해도 실물 디퓨전 필터의 사용이 필수 요소는 아니게 되었죠.
이를 바탕으로 보면 영상 장르의 다양화, 1인 미디어의 탄생, 미러리스의 시장 확대, 소형 시네캠의 보급, 사진용 렌즈의 영상 진입, 경량/소형의 필요성, 내장 ND 필터의 장착, 가변 ND 필터의 품질 향상, 디퓨전 필터의 한정적 사용, 시뮬레이션의 발달까지 나열하니 매트 박스에게 악재가 되는 요소가 한두 개가 아닙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받아들이고 나면, 매트 박스의 활용 기능은 잡광을 막아내기 위한 활용도만이 남았습니다. 가장 먼저 언급했던 기능이죠. 이러한 측면에서 매트 박스를 대체할 것은 ‘후드(hood)’ 밖에 없습니다. 다만 편의성을 위해 기존 방식의 가변 ND를 사용할 경우 후드가 장착될 대물렌즈 부분의 구경이 커지기 때문에 후드를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해집니다. 편의성을 위해 매트 박스와 후드 모두 제거하고 싶다면 이미지 품질 저하는 감수해야 합니다.

다행히 이러한 추세에 맞춰 매트 박스도 소형화되고 가벼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어댑터 없이 렌즈에 매트 박스를 직접 장착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최근에는 가볍고 튼튼한 카본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제품은 매트 박스 내부에 가변 ND를 장착해 기어를 통해 원격으로 노출을 조절할 수 있도록 제작했습니다. 거대하고 무거워서 대규모 현장이 아니면 막상 사용이 꺼려졌던 과거와 달리 요즘의 매트 박스는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때문에 꼭 영화 촬영이나 뮤직비디오 촬영 같은 현장이 아니더라도 리그 구성에 있어서 매트 박스가 긍정적으로 고려되었으면 합니다. 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빛을 의도한 대로 섬세하게 컨트롤하고, 시뮬레이션으로는 흉내 내기 힘든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이 가능한 실물 디퓨전 필터를 요구하는 촬영이라면 매트 박스를 대체할 것은 없습니다.
카메라가 집이고 렌즈의 대물렌즈가 빛이 들어오는 현관이라면, 매트 박스는 가장 최초로 빛을 맞이하는 대문입니다. 필수이지만, 필수처럼 여겨지지 않는다고 매트 박스의 사용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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