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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매거진

사진집
LIFETravel & Place
[제주 카페 기행]
커피 한 잔에 사진집 한 롤, 바다 한 모금
20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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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어부지리로 사진전에 몇 번 참여하다가 호기롭게 개인전까지 한 적이 있습니다. 지독히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전시회였기에 그나마 드문드문 방문하던 방문객들의 대부분은 지인들로 채워졌습니다. 얼마 전에는 우연히 응모한 한 국제 사진전에서 입상하여 영사와 함께 사진까지 남겼건만 상 이름이 어쩐지 폼이 안 나는 것 같아 누군가에게 알리지 않았고 상장은 조용히 책장 구석에 끼워두었습니다.

 

영상 제작을 직업으로 하고 있다지만 이렇게 기웃거리면서 꾸준히 사진을 찍는 이유는 이미지를 담기 시작한 계기가 사진이었기 때문입니다. 영상을 담는 일을 모두 ‘영상’이라고 하나로 규정하는 것은 지극히 무리이며 각기 다른 형태의 다양한 장르가 존재합니다. 어떤 이는 영화를 보며, 어떤 이는 방송을 보며, 어떤 이는 광고를 보며, 어떤 이는 뮤직비디오를 보며, 어떤 이는 중계를 보며, 심지어 최근에는 유튜브를 보고 영상을 시작하기도 하니 모두 활약하는 분야가 다르고 그 시작과 계기도 제각각입니다.  

 



 

 

제 경우는 사진을 시작으로 광고와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며 영상 제작에 발을 들였기에 사진에 관련해서는 여전히 동경을 품고 있기도 합니다. 때문에 평소 영화와 광고, 뮤직비디오 등을 찾아보며 영감을 받는 것 이외에도 사진집을 꾸준히 구매해 보면서 이런저런 이미지에 대한 영감을 받는 것도 좋아합니다.

 

다만 사진집을 꾸준히 구입한다는 것은 금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꽤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 다양한 사진집을 보고 싶을 때면 ‘슬로보트(Slowboat)’로 향합니다. ‘슬로보트’는 애월읍 초입인 하귀리에 위치한 카페로 도시의 끝과 제주의 모습이 시작하는 경계에 위치한 곳입니다.  

 

바다와 1차선 도로만큼의 간격만 두고 단독 건물로 지어진 ‘슬로보트’는 돌을 이용한 벽면과 현대식 외관이 묘한 조화를 이루어 독특한 외관을 하고 있습니다. 창은 바다 쪽으로 큼지막하게 나있는데, 마주 보고 우측으로는 바닷가에 위치한 도시 특유의 건물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화려한 해안선이 펼쳐집니다. 아름다운 바다를 볼 수 있는 카페란 점은 제주에선 특이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풍경과 함께 내부의 분위기는 여타의 바닷가 카페와는 사뭇 다릅니다.

 

 


 


건물은 총 3층으로 되어 있는데 복층 구조의 1층과 2층은 손님이 이용할 수 있고, 3층은 손님이 올라가지 못하는 주인장의 개인적인 공간입니다. 특이하게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야만 한편에 마련된 작은 바에 다다를 수 있고 바의 반대쪽으로는 높은 천장고와 1층보다 더 큰 창이 나 있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1층 천장과 2층의 지붕 곳곳에도 채광을 위한 창이 뚫려있어 내부에는 은은하고 자연스러운 빛들이 가득합니다.

 



 

 

독특한 구조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1층과 2층의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는 사진집과 사진 관련 서적들입니다. 사진집은 일반적으로 책등이 바깥쪽으로 향해 책장에 꽂히는 것과 달리 앞표지가 보이도록 올려져 있는데 특히 큰 판형의 사진집이 놓인 1층 책장은 한 칸, 한 칸이 분리되어 책 한 권, 한 권이 마치 작품처럼 전시된 갤러리와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름만 대면 알만한 어딘가에서는 봤을 법한 저명한 사진가들의 사진을 고급 용지와 프린팅으로 만든 사진집. 그 가운데에서도 대표작이 인쇄된 앞표지가 보이게 주르륵 놓여있으니 여느 갤러리 부럽지 않은 비주얼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모든 사진집을 누구나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사진집을 구입하며 떠올렸던 가격과 책장을 고민할 필요도 없이 커피 한 잔 값만 지불하면 사진집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이 공간을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처음부터 사진집을 생각하고 둔 책장, 바깥 풍경을 어디서든 바라볼 수 있는 구조, 자연스러운 태양광의 활용, 그리고 다른 한편에 걸린 사진들과 액자 등을 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슬로보트’는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주인장의 취향이 한껏 담긴 공간입니다. 한 대학에서 겸임 교수로도 활동하며 상업 사진을 주로 작업해오던 주인장의 성향은 패션계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던 거장들의 사진집 비율이 높다는 것을 보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커피는 브루잉 커피만 가능합니다. 종류도 하우스 블렌드와 다크 블렌드, 싱글 오리진 원두로 내린 커피가 전부입니다. 차 종류 몇 개와 레모네이드, 그리고 간단한 디저트가 전부인데 이는 음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소음 발생이 극도로 억제된 메뉴들입니다. ‘슬로보트’가 특별히 스터디를 위한 곳이라거나 소음의 발생을 규제하는 것도 아니지만 책을 보거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서 크게 떠들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주인장의 배려가 느껴지는 메뉴들을 보며 조용한 메뉴란 표현을 붙여보니 어쩐지 재미있습니다.

 



 

 

신중하게 정성을 들여 내려준 브루잉 커피를 받아 앉은 뒤,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물고 사진집을 펼치며 고개를 드니 눈앞에서 파도가 일렁이며 바위에 부서집니다. 케냐가 블렌딩된 커피인지라 체리가 연상되는 상큼한 첫맛과 함께 잔미는 깔끔하게 사라지고 산뜻한 쓴맛이 혀끝에 스칩니다. 특별할 것 없는 맛이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기본에 입각해 깔끔하게 내려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는 커피입니다.    

 

내부는 넓지만 좌석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이들, 책을 열심히 보고 있는 이, 랩톱을 켜서 연신 타자를 두드리는 이,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이들 등 모두 저마다의 시간을 한가로이 보냅니다.

 

정적이면서도 활기차고, 아름다운 공간입니다.

 



 

 

누군가가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고양이 몇 마리가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합니다. 고양이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 상황에 지극히 적응한 여유 있는 게으름을 떱니다. 난간에 기대어 한껏 잠을 자던 고양이 한 마리는 잠시 한가해진 주인장 곁으로 가서 애교를 피웁니다. 꼬리를 보니 길거리 출신입니다.

 

다소 경직된 것처럼 보이는 주인장이 사실은 얼마나 친절한 사람인지 고양이들의 행동을 보면 짐작이 가능합니다. 동경하던 직업을 가지고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지금은 이름처럼 바다 위 느림보 보트에서 시간을 보내는 듯한 주인장의 일상이 어쩐지 부럽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주위를 구경하고 바다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여유로운 시간이 아쉽게도 자꾸 흐르지만 사진집으로는 영 시선이 가질 않습니다. 뭐, 그래도 좋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사진집을 펼쳐둔 채로 눈앞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그 자체로 황홀한 거니까요.

 

· 슬로보트
-주소 : 제주 제주시 애월읍 하귀2길 46-16
-영업 시간 : 매일 10:00 - 19:00
-연락처 : 0507-1389-1455

 

 



사용 장비 ㅣ 시그마 fp + 자이스 Milvus 35mm f/1.4, Zeiss Otus 55 f/1.4
*이 콘텐츠의 디지털 이미지는 ‘Dehancer’ 필름 플러그인으로 효과를 낸 것이니 촬영 장비의 광학적 특성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본 콘텐츠는 저작권에 의해 보호됩니다. 복제, 배포, 수정 또는 상업적 이용은 소유자의 허가 없이 금지됩니다.

스페샬장 글 · 사진

영상제작자(Baby/lonians film works)

https://www.instagram.com/special_jang

태그 #제주여행 #제주카페 #카페투어 #사진작가의카페 #사진카페 #사진집 #애월카페 #제주바닷가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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