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에 작업실이 누수를 넘어 침수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적이 있습니다. 한껏 취향을 입힌 소품들과 책, 악기들 그리고 장비들을 가득 넣어두곤 ‘맨 케이브’라며 신나 했건만, 폭우로 인한 정전으로 워터 펌프가 멈춘 어느 날 고작 발목까지 차오른 물로 인해 큰 피해를 입고 말았습니다.
몇몇 장비들이 망가진 것이 가장 사무친 피해인데, 피해 목록 가운데는 사용하던 시네마 카메라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폭우가 발생하면 정전이 되는 건물에서 전기로 작동하는 워터펌프가 아니면 제대로 된 배수가 되지 않는 구조라니 지금 생각을 해도 어이가 없지만 제대로 된 보상까지 받지 못해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씁쓸한 기억입니다.
고장 난 시네마 카메라의 수리는 후속 모델의 출시 소식, 감가가 발생한 가격, 그리고 그 금액을 넘어서는 수리비 등을 문제로 결국 포기해 버렸는데, 수리를 하는 대신에 마침 출시된 저렴한 시네마 카메라 하나가 여러모로 마음에 들어 구입을 결정했습니다(역시 전자기기는 신형이 좋은가 봅니다).

다만 전형적인 박스 형태의 시네마 카메라는 바디가 아무리 저렴해도 바디만으로는 아무것도 못 하는지라 부가적으로 갖춰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카메라 리그(camera rig)’를 구성하는 것이 있죠.
카메라 리그를 구성하는 목적은 카메라에 다양한 장비를 부착하여 카메라를 제어하기 위함인데, 일반적으로 카메라는 본체만으로는 다양한 장비를 부착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나마 미러리스의 경우는 간소한 구성으로도 카메라를 조작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박스 형태의 시네마 카메라는 모니터마저 생략되거나 있어도 메뉴 확인 용도쯤인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리그의 구성은 필수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시네마 카메라의 접근 문턱이 높던 시절에는 카메라 리그를 구성하는 파츠 하나하나가 고가의 몸값을 자랑했지만, 미러리스의 탄생과 더불어 접근성이 좋아진 시네마 카메라를 타겟으로 합리적인 가격의 카메라 리그 파츠가 출시되기 시작했는데, 그 중심에는 ‘스몰리그(Smalrig)’가 있습니다. 덕분에 이번에 카메라를 새로 구입하면서 몇몇 파츠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을 스몰리그의 제품들로 구성함으로써 카메라 리그의 예산 비중을 줄이고,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의 비용으로 카메라 리그의 구성을 무사히 마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카메라의 리그는 카메라 본체에 장비를 부착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홀이 뚫린 플레이트 혹은 케이지, 운반과 파지를 위한 핸들, 카메라와 삼각대를 연결하는 베이스 플레이트, 베이스 플레이트와 연결하여 렌즈 관련 장비를 주로 장착하는 로드가 가장 기본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부가적으로는 매트 박스, 포커스 기어, 송수신 장치, 모니터, 배터리, 타임코드 생성기, 레코더, 저장매체, 렌즈 지지대, 솔더 패드 등등과 같은 장비를 부착하는 것도 고려해야 하기에 모든 것을 감안하면 비용적으로 부담이 가해질 수밖에 없죠. 하지만 스몰리그는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제품군과 다양한 카메라들의 전용 파츠들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예산의 상당 부분을 아끼는 것이 가능합니다.

스몰리그가 이런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것은 본사와 생산 베이스를 중국에 두고 있는 것이 큰데, 어떤 분야에서나 그렇지만 대중들에게 중국에서 생산된 공산품이 좋은 인식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국의 생산품들도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무차별적인 카피와 리버스 엔지니어링으로 낮은 품질의 제품들로 대표되는 것들이 있는 반면에 낮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좋은 품질으로 경쟁력을 갖춘 제품들로 나뉩니다.
스몰리그는 후자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기업 가운데 하나인데, 자체적인 디자인과 활용하기에 좋은 기믹들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품질이 좋은 알루미늄과 카본 소재들을 사용하여 내구성에 신뢰도를 갖추고 있으며 정밀 가공이 이루어져 오차와 안정성 면에서도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스몰리그가 합리적인 가격을 갖출 수 있는 것에는 필요 없는 부분에서 제조 단가를 낮추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형태의 정밀 알루미늄 절삭 제품의 경우에는 가공 단계가 늘어날수록 제조 비용이 올라가게 마련입니다. 곡선의 가공이라던가 경면 연마, 산화 피막을 입히는 아노다이징 처리와 같은 미적인 부분을 고려한 가공 단계의 증가는 제조 단가가 상승하는 원인이 되기 마련입니다.
앞서 언급한 가공이 스몰리그의 파츠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가의 제품들에 비해서 최소한의 부분에만 적용하기에 외관이 다소 투박하게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스몰리그는 투박할지언정 마감은 확실히 하고, 활용도와 함께 접근 문턱을 낮춘 것입니다. 제조국의 이점과 합리적인 공정의 조합이 스몰리그의 가장 큰 무기인 것이죠.

다양한 색상, 번쩍거리는 광택, 화려한 곡선과 같은 미학적인 부분을 최소화한 스몰리그의 카메라 리그들은 대신 모듈 형태로 수많은 제품들과 조합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렇게 조합을 끝내고 나면 개별의 파츠로 보았을 때는 알 수 없었던 기계미가 느껴지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최종적으로는 미적인 부분이 무조건 배재 되었다고 평할 수도 없습니다.
스몰리그는 배터리와 삼각대, 매트박스, 필터와 같은 부분으로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데, 다른 무엇보다 카메라 리그와 관련해서는 명품이라 칭하고 싶습니다. 물론 흔히 명품이라 하는 제품들과는 관념을 달리하는 것이 사실이기에 명품이라 소개하기에 적합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명품으로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카메라 리그를 명품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오히려 맞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망가진 카메라를 두고 좌절하여 예산을 고민하며 카메라를 새로 구입하는 입장에서 스몰리그의 파츠들은 안도감, 신뢰와 함께 마음의 평화까지 주었습니다.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어떤 명품보다도 합리적인 명품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 스몰리그의 카메라 리그 파츠들을 명품이라고 칭하고 싶습니다. 스몰리그에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워낙 방대한 파츠를 보유하고 있는 덕분에 파츠를 조합하는데 무수한 검색과 이해도가 필요하다는 점과 파츠의 생산, 교체 주기가 짧은 편이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보이면 길게 고민하지 않고 구입해야 한다는 점뿐입니다.
본 콘텐츠는 저작권에 의해 보호됩니다. 복제, 배포, 수정 또는 상업적 이용은 소유자의 허가 없이 금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