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GHLIGHT
-알레한드로 레온 칸녹의 작업에 관하여
-그의 서재에 담긴 영감을 준 책들
항상 ‘책’이 제시하는 세계에 매료돼 있었다.
세계에 대해 인간이 축적한 지식을 매개하는 ‘책’에 깊은 열정을 품은 채 살아온 것이다.
그렇기에 사진 예술에 눈 떴을 때도 ‘사진집’은 연구의 핵심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사진집을 모으면서 나는 전세계 예술가들이 해마다 내놓는 시각 예술의 최신 흐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1.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제 이름은 알레한드로 레온 칸녹(Alejandro León Cannock)입니다. 저는 연구자, 큐레이터, 교수, 그리고 시각 예술가입니다. 사진 이미지, 현대미술 창작, 그리고 분석적 사회 비평의 교차 지점에서 작업을 지속해 왔습니다. 페루 출신이지만, 지난 8년 간 프랑스 남부의 아를에 거주하며 작업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저는 엑스-마르세유 대학교 예술학부 교수 겸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아를 국립 사진학교에도 객원 강사로 출강하고 있습니다. 그 외 다양한 전시 프로젝트에도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24년에는 영광스럽게도 베니스 비엔날레 페루관 큐레이터로 선정되어 전시 작가인 로베르토 와르카야의 출품작 '우주적 흔적'의 전시를 지원했습니다. 같은 시기, 스위스-베네수엘라 사진가 바바라 브란들리의 사진 아카이브에 대한 심층 연구도 수행했습니다. 대상 아카이브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CAF 컬렉션에 포함된 것으로 이 연구는 마드리드 포토 에스파냐 사진제에서 열렸던 대규모 회고전 <바바라 브란들리: 제스처의 시학, 기록의 정치>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최근에는 라틴 아메리카 내 광물자원 개발 사업과 사진 간 관계를 조사하는 학예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2. 사진책과의 특별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
인문학과 철학을 전공했기 때문인지 제가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은 언제나 책, 특히 이론서를 통해 형성되어 왔습니다. 항상 ‘책’이 제시하는 세계에 매료돼 있었습니다. 세계에 대해 인간이 축적한 지식을 매개하는 ‘책’에 깊은 열정을 품은 채 살아온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진 예술에 눈 떴을 때도 ‘사진집’은 연구의 핵심 대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노라 하는 사진집 컬렉터까지는 아니어도 페루를 포함한 라틴 아메리카의 사진집들, 나아가 국제적으로 유명한 사진집은 소장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사진집을 모으면서 저는 전세계 예술가들이 해마다 내놓는 시각 예술의 최신 흐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요즘은 사진집이 필요 이상으로 쏟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몇 년 간의 사진집 붐은 유력한 트렌드로 변모했습니다. 많은 사진가들이 성공을 위해 사진집이 필수라고 여기는 듯합니다. 이런 트렌드 때문에 작품의 본질과는 무관하게 사진집이 무분별하게 출판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진집을 가까이 해 온 제 커리어에서 베네수엘라 디자이너이자 연구자인 리카르도 바에즈를 만났던 행운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현대 사진집 문화에 대해 박식할 뿐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를 넘어 전 세계에서 유망한 사진집 디자이너 중 한 명입니다. 프랑스-베네수엘라 작가 마티유 아슬랑의 『몬산토: 탐사 사진』 사진집도 그가 제작했는데 전세계 평론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습니다. 파올로 가스파리니와 같은 전설적 사진작가들과도 협업한 바 있습니다. 저는 스페인의 시각예술 연구 플랫폼 LUR의 초청으로 리카르도와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당시 그는 사진집이 ‘비판적 사고를 촉진하는 도구’라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이때의 만남 이후, 저는 그가 큐레이팅한 네덜란드의 사진집 전통 관련 전시회에 서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전시의 제목은 《리브로포토 & 네덜란드 사진집 책방(Librofoto & la fotolibrería holandesa)》이었고, 카라카스의 카르멘 아라우호 아르테 갤러리에서 두 달 간 열렸습니다. 이 전시를 계기로 그는 '사진의 유물론적 역사에 대한 노트: 사진집'이라는 에세이를 쓰기도 했습니다.
이후 저는 리카르도 바에즈 및 에두아르도 카스트로 협업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카스트로는 바바라 브란들리 사진 아카이브를 소장하던 C&FE 컬렉션의 큐레이터였습니다. 협업한 프로젝트의 제목은 ‘중앙신경계를 해체하다: 랑게, 브란들리, 찰바우 사진’이었습니다. 이 책은 라틴 아메리카 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사진집 중 하나인 『중앙신경계(Nervous System, 1975)』이 어떻게 구상되었는지를 그래픽, 담론, 편집의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해설하고자 한 메타비판 프로젝트였습니다.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로만 찰바우의 텍스트, 바바라 브란들리의 사진으로 구성된 이 다성적 출판 프로젝트는 카라카스 도시 안에서 현대성과 전통, 대중의 감정과 종교, 진보와 빈곤 등 대립되는 요소들을 탐구합니다. 저는 이 책의 서문을 썼습니다.
3.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
이제 사진집에 천착해 온 제 커리어에서 중요했던 두 개 프로젝트를 자세히 언급하고자 합니다. 먼저 출판사 KWY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사진가 겸 편집자 무수크 놀테와 페르난도 후지모토가 이끄는 페루 출판사인 KWY는 뛰어난 편집 디자인으로 라틴 아메리카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안투안 다가타의 『오스큐라나(Oscurana)』와 야엘 마르티네즈의 『피 흘리는 집 (La casa que sangra)』와 같은 작품이 유명합니다. 제게 있어 KWY는 늘 배울 게 많은 대화 상대자들이 모인 곳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