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오래된 오프로드용 자동차를 타고 있습니다.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본격적인 오프로더라기엔 평범한 SUV일 뿐인데, 버튼을 몇 번 누르면 눈길이나 모래, 숲길이 표시된 램프가 깜빡거리며 바뀌기에 어쩐지 어떤 길이라도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샘솟습니다.
사실 램프가 바뀌는 것을 눈으로 보며 직관적으로 확인을 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몸으로는 그다지 체감하기 어렵지만, 기분이나마 오프로드를 달릴 수 있는 자동차라며 험한 길이 나타나면 혼자서 으쓱하곤 합니다. 특히나 눈이 내릴 때면 어쩐지 가만히 있기가 힘들어 차를 타고 산으로 올라가곤 합니다. 단단하게 뭉친 눈 위에 자동차가 햄버거빵 위의 패티마냥 살포시 얹어져 움직이지 못한다거나 산 중턱에서 만난 빙판에 미끄러져 발만 동동 구른다거나 하는 경우를 몇 번이나 만났건만 매일 보는 풍경마저 모조리 바꿔 놓는 눈이 가진 힘은 굉장해서 눈이 내리는 날에 바쁜 일정이 있다거나 출장이라도 있으면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같은 눈이 내린 풍경이라도 눈이 내린 양, 해의 방향, 구름의 유무, 바람의 세기, 기온과 같은 상황에 따라 풍경은 달라집니다. 청명한 햇살을 맞으며, 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하얗게 눈이 내린 풍경은 청량함 그 자체여서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뻥 뚫리는 것만 같은 깨끗하고 시원한 이미지를 담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눈 결정 하나하나가 반짝거리며 빛을 한껏 반사시키는 풍경 속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조심해야 할 것은 노출입니다.

하늘이 구름에 꽉 막혀 빛을 제대로 받지 못한 눈은 날씨가 좋을 때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백색과 회색의 중간의 모습에서 그나마도 빛을 잔뜩 머금고는 뱉어내지 않는 듯한 모습인지라 분명 하얀 눈이 맞건만 다소 칙칙함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겨울의 산은 여러 색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나뭇잎이 떨어져 칙칙한 나무와 흙 등이 풍경에 담기는 전부인지라 그런 상황에서의 눈이 내린 풍경은 컬러로 찍었음에도 마치 흑백 사진이나 수묵화처럼 보이는 마법을 부리기도 합니다.

화각은 광각보다는 표준, 혹은 그 이상의 망원을 추천해 봅니다. 눈이 내리면 하늘과 눈이 내린 땅과 구별이 가지 않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의도를 가지고 광각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프레임 안에 너무 많은 땅과 너무 많은 하늘이 경계마저 모호하게 가득 담기기 마련입니다.
눈이 내리는 상황에서 렌즈를 갈아 끼우는 것은 꽤 강심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수월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피사체에 시선을 집중 시킬 수 있는 화각을 신중하게 선택을 하거나, 표준 화각대 줌 렌즈를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의도를 담아내기 수월할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피사체 자체가 시선을 집중 시키는 색상을 가지고 있다면 그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눈이 조금 녹기 시작해 움직이기 편해지면 전 가족과 함께 산에 오르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트렁크에 눈썰매를 하나 챙기고, 보온병에 뜨거운 커피를 담아서 눈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꽤 즐거운 경험입니다(그러고 몇 번 고립을 시키긴 했지만요).

아내나 아이의 옷은 제가 입는 옷과 달리 눈에 띄는 경우가 대다수이기에 무채색에 가까운 눈이 내린 풍경 속에서도 확연히 구별이 가기에 피사체로서 배치했을 때, 독특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제가 찍는 사진들의 모델들은 새나 말, 소와 같은 동물들이 아니면 영원히 교보재로 고통받는 가족들입니다. 광원과 피사체가 많은 도심에서의 눈이 내리는 풍경이나 아름다운 모델과 함께 감성이 충만한 사진은 제가 이야기 하는 눈이 내리는 풍경과는 다소 다르기에 같은 법칙이 적용된다곤 할 수 없습니다. 최근에는 스트로보를 활용하여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눈에 반사시켜 독특한 이미지를 준다거나 필터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눈이 내린 숲은 실제로는 포슬포슬하게 하늘에서 눈이 살며시 내리는 것이 드문 일인지라 세찬 바람과 함께 눈이 옆으로 흩날리며 하염없이 볼을 세차게 때리고, 셔터를 누르기 고통스러울만큼 손가락이 얼어붙는 일도 다반사인데, 시간이 지나 사진을 열어보면 그 정적이고 고요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계속 눈이 오면 평범한 SUV 자동차를 오프로더라고 다그치며 산으로 오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대처할 수 있는 준비물은 눈이 대물 렌즈 앞에 붙는 것을 막아주고 닦아내기 좋은 필터와 마른 헝겊, 그리고 스프레이 체인입니다. 시기적으로는 이제 곧 봄이 올 텐데, 뉴스에 들리는 날씨 예보에선 아직 겨울이 그 끝자락을 붙들고 놔주지 않는 것같군요. 만약에 눈이 오면, 아니면 다시 다음 겨울이 오면 한 번쯤 시도해보세요.
사용 장비 ㅣ 시그마 fp, 라이카 SL2-S + 자이스 Otus 55mm f/1.4, Otus 100mm f/1.4, 라이카 Vario Elmalit 24-90mm f/2.8-4 AS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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