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제조사 렌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APO 라는 이름은 대체 무슨 뜻일까요? APO-Summicron-M 50 f/2 ASPH / ©️LEICA
사진에 오랜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APO 렌즈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보통 APO 렌즈는 독일 제조사에서 볼 수 있고, 일부 일본 제조사의 망원렌즈에 APO라는 이름이 붙어있기도 했습니다. 망원렌즈를 위한 특별한 기술인가 하면 또 그렇게 보기도 어려운 것이 독일 렌즈는 광각에도 이런 이름이 붙어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APO는 무엇일까요?
APO는 apochromatic의 줄임말로 색수차로부터 자유롭다는 뜻입니다. / ©️Wikipedia
APO는 Apochromat 혹은 Apochromatic lens를 줄인 말입니다. 이것은 Chromatic에 ‘~로부터 자유롭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접두어 Apo가 붙은 것인데요. 풀이하면 색수차(Chromatic aberration)로부터 자유롭다는 뜻이 됩니다. 곧 APO 렌즈는 색수차를 최소화한 렌즈라는 것이지요.
최초의 APO 렌즈라 할 수 있는 Goerz Apo-Artar. / ©️catlabs
사실 APO 렌즈라는 개념은 사진용 렌즈의 역사와 흐름을 같이합니다. 그 개념을 에른스트 아베(Ernst Abbe), 오토 쇼트(Otto Schott)가 구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APO 렌즈가 적용된 모델도 상당히 이른 1904년에 등장했습니다. Goerz Apo-Artar 렌즈는 색수차를 최소화한 ‘매크로’ 렌즈였습니다. 사물에 가까이 다가가 촬영할 수 있는 짧은 최단 초점거리를 가진 렌즈였지만 이 렌즈가 무한대에서 클로즈업까지 모두 선명한 이미지를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사실 모든 영역에서 선명한 매크로렌즈는 최근에야 등장한 것으로 과거에는 대체로 렌즈가 최대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초점 영역이 달랐습니다.
Canon FL-F 300mm f/5.6 / ©️canon
실제로 일반 소비자들이 APO 렌즈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훨씬 늦은 시기입니다. 색수차를 제어한 소비자용 ‘개념적인 APO 렌즈’는 1969년 등장한 Canon FL-F 300mm f/5.6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렌즈는 형석(Fluorite)으로 만든 특수렌즈가 포함되어 색수차를 제어했습니다. 즉, 특수렌즈의 시작이자 APO 렌즈의 시작이라 볼 수 있는 셈입니다.
Leitz APO-Telyt-R 180mm f/3.4 / ©️leica classic store
APO라는 이름이 붙은 일반 소비자용 렌즈로 한정하자면 첫 모델은 Leitz APO-Telyt-R 180mm f/3.4로 볼 수 있습니다. 1975년 등장한 이 렌즈는 Leicaflex 시리즈를 위한 제품이었습니다. 4군 7매 구조에 수차를 제어하기 위한 특수렌즈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라이카는 일본 SLR 카메라의 독주에 매우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에 대항하고자 야심 차게 출시한 leicaflex가 되려 회사의 발목을 잡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 와중에 등장한 모델이 최초의 APO 렌즈라는 것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Carl zeiss TELE-APOTESSAR T* 300mm F2.8 / ©️lens-db
자이스의 APO 렌즈는 1982년에 등장한 Carl zeiss TELE-APOTESSAR T* 300mm F2.8입니다. 당시 자이스의 카메라 브랜드 CONTAX는 야시카와 제휴를 맺어 생산되고 있었습니다. 카메라의 마운트 명칭은 콘탁스/야시카의 약자인 C/Y 마운트. 자이스의 대표적인 렌즈 개발자인 에른스트 아베가 고안한 APO 렌즈의 개념이 오랜 시간을 지나 야시카와의 제휴 속에서 탄생했다는 점이 아이러니합니다. 렌즈는 6군 7매 구조로 초점거리와 개방 조리개 수치를 생각하면 의외로 단순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뛰어난 묘사력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대신 최신 렌즈와 비교해 2.73kg에 이르는 높은 무게와 244mm에 이르는 큰 크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Minolta AF APO Tele 200mm f/2.8 G / ©️photozone.de
다음 타자도 독일 회사와 관계가 깊습니다. 1986년 등장한 미놀타의 AF APO Tele 200mm f/2.8 G는 외관에서부터 상당히 현대적인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마운트 어댑터를 사용한다면 최신 소니 알파 시리즈 미러리스 카메라에서도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미놀타는 과거 라이카와 밀접한 협력관계에 있었습니다. 함께 CL이라는 레인지파인더 카메라를 만들기도 하고 라이카의 SLR 카메라인 R 시리즈의 제작을 돕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여타 일본 제조사는 잘 사용하지 않는 APO라는 표기를 자사 고성능 망원렌즈에 넣었습니다.
SIGMA MF 300mm F2.8 APO ZEN / ©️lens-db
의외로 APO를 렌즈명으로 사용한 제조사는 시그마입니다. 1988년에 등장한 SIGMA MF 300mm F2.8 APO ZEN은 대구경 망원렌즈입니다. 렌즈의 사양은 자이스와 비슷했지만 무게와 크게는 좀 더 적었습니다. 1980g으로 2kg이 안 되는 무게에 223mm로 짧은 길이를 갖췄습니다. 렌즈는 9군 12매 구조. SLD 렌즈를 2매 포함해서 수차를 대폭 축소했습니다. 특수렌즈 덕분에 상대적으로 더 가볍고 작은 크기로 높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ZEISS Otus ML 1.4/85과 Otus ML 1.4/50 / ©️ZEISS
가장 최근에 등장한 대표적 APO 렌즈는 ZEISS의 Otus ML 1.4/50과 Otus ML 1.4/85일 것입니다. 이 두 렌즈는 미러리스 시스템에 다시 등장한 전설입니다. 이전 자이스의 오투스 렌즈는 SLR 시스템에서 수차가 거의 없는 완벽에 가까운 묘사력으로 놀라움을 자아냈는데요. 자이스는 이러한 오투스 시리즈의 성능을 미러리스 시스템에서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이 두 렌즈에는 직접적으로 APO라는 이름이 붙어있지도 않고, 제품 설명에서도 APO 구조에 대한 언급은 따로 없습니다. 다만 렌즈의 전면에 Apo Sonnar, Apo Distagon이라는 문구로 수차를 최소화한 설계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두 렌즈는 비구면 렌즈와 이상 부분 분산 특수 유리 등을 넉넉하게 적용해 최상급 성능을 발휘합니다.
SIGMA 50mm F2 DG DN | Contemporary / ©️SIGMA
사실 APO 구조는 대부분 렌즈 제조사의 고급 모델에서 채용하고 있는 것이라 보아도 무방합니다. 특수렌즈를 이용해 수차를 제어하고 묘사력을 높이는 것은 대다수 렌즈 제조사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렌즈 명칭에서 APO라는 것은 어떠한 특별한 기술이라기보다는 여타 렌즈보다 수차를 한 층 더 적극적으로 제어한 고성능 모델을 의미하는 것이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APO 렌즈의 특징이라 하면 수차가 최소화되어 초점면의 샤프니스가 높고 보케가 발생하는 시점이 명확해 구경이 작은 렌즈라도 흐림 효과가 크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한편으로 수차가 제어될수록 렌즈의 설계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버릇 같은 것들이 사라지고 개성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APO 렌즈 혹은 고성능 렌즈는 선택의 기로에 있는 제품이라 볼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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