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와의 대화에서 문득 느낄 수 있는 그들의 천재성은 우리를 감탄케 합니다. 그들의 인간적 매력은 우리를 미소 짓게 하지만, 창의적 과정의 치열함과 거기서 겪는 현실적 어려움은 화려함 이면에 가려진 고뇌 또한 오롯이 전달합니다. 세상을 조금 더 세밀하게 밀착하여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요. 이 연재가 평소 궁금했던 그들의 이성과 감성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술은 좀 더 사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담하고 아름다운 동시에 본질에 대한 추구, 시적인 리듬과 선율을 가진 Bosa Nova의 멜로디처럼 성숙하고 신비롭게 시간의 흐름을 따릅니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없는 본연의 아름다움이 가미된 것을 지향하고 어떻게 하면 자신만의 클래식을 보여줄 수 있을지 현실화하는 것입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몰랐던 세계에 대한 훌륭한 대본이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친숙한 세계였다.
불변하고 견고한, 고정적인 무언가를 담았을 때의 신념과 확신을 좋아한다.
그것은 순간적인 감정이 아닌, 오랜 시간이 걸려 도달한 목표와 가치에 기반한 결정일 테니까.
그런 맥락에서 기념비적인 대형 작업은 일종의 서약이나 맹세와도 같다.
현실을 수용하고, 이 모든 것을 수평적이고 공감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을 ‘접촉을 통한 시각’이라고 부르며 모든 계기와 기회를 시각화하려고 시도한다.
1. 이 계절에 무엇이 가장 하고 싶나요?
가족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전시와 작업으로 출장이 많아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다소 부족하지만,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저에게 가장 풍요롭고 보람찬 순간입니다. 물론 그동안에도 작업에 대한 고민은 끊임없이 지속되지만 그 시간 중 어느 부분이 어디서, 어떻게 작품과 연결될지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 작업은 어떻게 시작되나요?
제 작업에는 특별한 자극을 주는 몇 가지 순간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 여행, 모험의 순간들이고, 그다음으로는 화학적인 과정을 거치는 순간인데 이때는 제 실험적인 시도에서의 중요한 창문이 열리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마지막엔 작품의 전시 방향을 고민합니다. 공간과 작품 사이의 유기성을 고려하여 전시 공간을 새로운 경험의 장으로 전환하고자 고민합니다. 대형 작품의 배치와 흐름을 통해 공간이 더욱 풍부하게 확장될 수 있도록 말이죠.
2019. YAWAR FIESTA. FOTOGRAMA DE 2.45 METROS X 2.20 METROS. / Copyright ©️ Roberto Huarcaya
AMAZOGRAMA 5. / Copyright ©️ Roberto Huarcaya
Blue Jungle Triptych / Copyright ©️ Roberto Huarcaya
3.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내 삶과 사진의 관계성이 있다면요?
사실 저는 심리학을 전공했습니다. 제 첫 직업은 진료실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 심리학 업무였죠. 그런데 어느 순간 스페인에 사진을 공부하게 되면서 제 사진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시 리마로 돌아와서야 제 첫 사진 작업을 완성했는데, 그 순간이 한 직업에서 다른 직업으로 ‘전환’되는 순간이 되었죠. 그때 했던 작업은 24개의 이미지 안에 정신 분석 치료 과정의 중요한 지점들을 시각적으로 담아내는 작업이었습니다. 그 작업은 제가 새로운 삶으로 이동하면서 남긴 일종의 상징적인 작별 인사였습니다.
4. 사진가로서의 삶은 어떤가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심리학자였던 시절을 지나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현재까지 계속 이어오고 있습니다. ‘엠파냐(Empaña)’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돌아온 후, 리마 대학교(University of Lima)에 사진 교수로 채용되면서 다시는 심리학계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공고히 했습니다. 그 이후 35년 동안 사진에 완전히 몰두하면서 사진 전문 교육을 위한 학술 프로젝트를 개발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994년, 리마에서 함께 공부한 동료들과 페루 교육부가 공식 인정한 최초의 사진 학교를 설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학교는 초기엔 ‘가우디 연구소(Gaudi Institute)’라고 불렸으나 추후 명칭을 ‘The Center of Photography’로 변경하였으며, 나중에는 ‘Center of Image’라고 불렸습니다. 2019년까지는 제가 이 학교의 책임자였습니다. 이 학문적 소명과 더불어 제 개인 작품 제작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마치 어제 처음 사진을 시작한 것처럼 여전히 사진이 흥미롭습니다. 사진을 향한 제 관심과 열정, 동기는 사라지지 않고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Pinhole tent / Copyright ©️ Roberto Huarcaya
5. 지금까지 사용한 카메라와 가장 애착이 가는 모델이 있다면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카메라를 소유했지만, 그중 상징적인 역할을 했던 것들이 있습니다. 처음 사용했던 카메라는 어머니와 함께 사용했던 ‘미놀타 X300’입니다. 이후에는 저와 오래 함께한 ‘니콘 F3’를 사용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 ‘Hasselblad 500 CM’인데 이 기종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카메라 중 하나입니다. 또 다른 하나로는 ‘Noblex 150x’ 중형 포맷 파노라마 카메라입니다. 정말 훌륭한 장비입니다. 아날로그 작업에 쓰는 것으로는 ‘Zone IV’ 브랜드의 대형 카메라 두 대가 있습니다. 각각 4x5(inch)와 8x10(inch)의 포맷을 사용하는 장비들입니다. 또한 같은 포맷의 ‘HARMAN TiTAN’ 핀홀 카메라 두 대도 소장 중입니다. 둘 다 굉장히 애착하는 카메라입니다.
디지털 장비의 경우 많은 장비를 소유했었지만, 지금은 두 대로 줄였습니다. 하나는 성능이 좋은 ‘Hasselblad Stella’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 제가 주로 사용하는 중형 포맷 ‘Fuji GFX’입니다. 다만 근 10년 동안 카메라를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드물게 사용하고 있긴 합니다. 카메라보다는 ‘Foma’, ‘Ilford’, ‘Fuji’ 같은 롤 페이퍼로 포토그램 작업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6. 카메라가 없이 사진 작업을 하고 있으시군요. 작업에 대해 설명 부탁드려요.
저에게 카메라는 아이디어나 감각을 촉진하고 가시화하는 도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게 카메라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도구를 선택하는 배관공의 도구와 같습니다. 페루 아마존에서 흥미로운 경험을 한 적 있습니다. 그 작업은 지난 10년간 이어온 작업의 물꼬를 터 준 최초의 포토그램이었습니다. 저희는 페루 아마존 강 옆의 작은 해변에서 30m 길이의 감광지를 펼쳐 놓았고, 그 위에 같은 길이의 야자수를 나무 한 그루를 올렸습니다. 이 작업은 이론적으로는 작은 플래시를 이용해 20번 이상의 노광을 주어야 했지만,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갑자기 열대성 폭풍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어쩔 줄 모르는 사이에 하늘에서 번개가 4번 쳤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플래시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는 아마존에게 받은 선물이 되었습니다. 자연이 제공한 노출은 완벽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2024 베니스 비엔날레 페루관에 전시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우리나라, 페루를 대표하는 작가로 작품을 전시할 수 있었습니다.
7. 기념비적인 대형 사이즈 포토그램이 갖는 의미는 어떤 것이 있나요?
지난 10년 동안 저는 페루의 여러 지역에서 시각 예술 프로젝트를 연구하고 실험해 왔습니다. 특히 기념비적인 대형 포토그램 작업에 집중하였고, 수초에서 수시간에 이르는 다채로운 전시 작품을 광범위하게 작업해 오고 있습니다.
Eucalipto-3a+web / Copyright ©️ Roberto Huarcaya
Eucaliptp-4+a+web / Copyright ©️ Roberto Huarcaya
Eucaliptus Forest 1 / Copyright ©️ Roberto Huarcaya
Eucaliptus Forest 3 / Copyright ©️ Roberto Huarcaya
Eucaliptus Forest 4 / Copyright ©️ Roberto Huarcaya
8. 작가님의 작업과 페루와 연결 지점이 있다면요?
약 10년 전, 저는 페루 아마존의 힘과 생명력, 기념비적인 풍경을 온전히 포착할 수 있는 시각적 표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기존의 광학(비주얼) 장치로 작업하던 것을 그만두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사진의 역사를 쫓아가는 과정에서 ‘포토그램’이라는 기법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후 이 기법을 점차 기념비적인 형식으로 발전시키면서 저만의 가상 언어를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마존 지역에 집중해 작업했지만, 점차 페루 안데스산맥과 우리 해안 전체를 덮고 있는 태평양까지 범위를 넓혀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제 작업에 있어 페루 생태계의 균형과 관련된 주제가 다양한 프로젝트 구성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이러한 기념비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이 거대한 지지대를 다양한 현실과 마찰시키며 탐험하는 것은 제 나름의 현실 접근법입니다. 현실을 수용하고 이 모든 것을 수평적이고 공감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접촉을 통한 시각’이라고 부르며 모든 계기와 기회를 시각화하려고 시도합니다.
9. 현재 ‘KF Gallery’에서 전시를 하고 계신데, 페루에서의 전시와 이번 전시의 차이점이 있나요?
오는 5월 16일(금)까지 진행되는 이번 KF 전시는 아주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김희정 큐레이터가 가능성을 제안한 순간부터, 그녀의 기획과 서울에 있는 페루 대사관의 대사인 ‘폴 뒤클루스 씨’와 ‘KF Foundation’의 지원까지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설치물을 시도하는 구성에서도 형언할 수 없는 친절과 예의를 갖춘 지원과 기획 덕에 더할 나위 없이 보람찬 경험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선보일 이 전시는 페루 영토에서 수행된 지난 10년간의 진정한 리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년 리마에서 개최된 ‘ICPNA(국립자연사연구소)’ 전시와 동일 선상에 있다고 보일 수 있겠습니다만, 이 전시는 단순 재현이 아닌 새로운 공간에서의 재현을 통해 새로운 담론을 형성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특히 대형 갤러리라는 공간적인 특성에 맞춰 새롭게 구성한 만큼 작품에 대해 완전히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전시 공간, ‘서울’이라는 지역만의 공감대 형성을 공략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0. 요즘 가장 큰 관심사가 있다면요?
실험은 제 작업을 발전시키는 가장 자극적이고 보람찬 활동입니다. 나의 의도와 아이디어에 다양한 우연과 직관을 추가하고, 한계를 기회로 바꾸고, 마치 파티에 초대받은 듯 자연을 참여시키고, 다양한 화학적 과정이 일정한 자율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변수와 다양한 상호작용을 통해 통제라는 개념을 버리고 이 전체 교향곡과 함께 이미지를 구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11. 모바일 월페이퍼 공유 가능하신가요?

12. 영감의 원천이 무엇인가요?
영감이라기보다는 동기부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일상과 내 삶의 원동력인 가족과의 관계에서 동기를 얻습니다. 때로는 부패하고 형편없는 정치인들이 이끄는 조국의 비참한 역사적 순간에서도 동기를 얻습니다. 점점 더 양극화되고 복잡해지는 세계정세에서 시스템의 다중 균형 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작업은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변화 속에서 우리가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속해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13. 인간-자연-동물은 작업에 많은 부분으로 공존합니다. 이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저는 분명한 생각을 작업에 담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를 동등하게 존중하고 그들과 공감하고 존중하는 유대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면 (사람/동물/식물) 가까운 미래에 지구는 더 이상 삶의 터전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류에 대한 봉사’라 불리던 문화적 관성을 깨는 것은 매우 어렵고, 긴 싸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진다면 지구상의 생명력 또한 잃게 될 것입니다.
Green Jungle n 3 / Copyright ©️ Roberto Huarcaya
Oceangrama Ocean Garbage 2 / Copyright ©️ Roberto Huarcaya
Oceangrama Ocean Garbage 3 / Copyright ©️ Roberto Huarcaya
Oceangrama, Pacific waves n 1 / Copyright ©️ Roberto Huarcaya
14. 전시와 작업으로 전 세계를 여행하실 텐데요. 가장 눈여겨본 전시 혹은 작품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 작품에 영향을 미치는 두 예술가가 있습니다. 둘 다 기념비적이면서도 근본적으로 다른 작품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연약하고 다른 하나는 상대적으로 무게감을 가지고 있죠. 첫 번째는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 원형실에 있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수련(Water Lilies)>입니다. 섬세함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두 번째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in Bilbao)에 있는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시간의 문제(Matter of Time)>가 있습니다. 저에겐 각기 다른 성격의 이 두 작품이 제 감수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하다고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15. 만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마법을 가질 수 있다면, 원하는 마법이 있나요?
마법? 저는 사는 것 자체가 마법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삶과 살아있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제가 접촉하는 과정들이 마법과 직접적으로 마주하고 대화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16. 향후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앞으로의 작업에 대한 뚜렷한 계획은 없습니다. 그러나 움직이는 설치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초기 단계의 아이디어일 뿐이지만요.
Peces 2 / Copyright ©️ Roberto Huarcaya
Scissor Dancers / Copyright ©️ Roberto Huarcaya
본 콘텐츠는 저작권에 의해 보호됩니다. 복제, 배포, 수정 또는 상업적 이용은 소유자의 허가 없이 금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