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 형식이나,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배경을 발굴하는 과정은
마치 잊힌 사진사를 되살리는 여정과도 같았습니다.
1. 자기소개와 사진 책에 참여하는 역할
뮤지엄한미 연구소에서 한국사진사 자료집 편찬을 맡고 있습니다. 연구소는 2009년, 한국사진사의 정립을 목표로 뮤지엄한미(당시 한미사진미술관)가 설립한 전문 연구 기관입니다. 연구소는 한국사진사에 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하여 그 성과를 자료집 형태로 출간하고 있습니다.
연구소는 시간이 흐르며 점차 잊혀 가는 한국사진사의 주요 사안들을 복원하고자 구술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기존 문헌과 기록에서 다루지 못했던 사진사적 사실들을 발굴하고, 우리 사진사의 빈틈을 메우기 위한 시도입니다. 한국 광고사진의 1세대로 광고와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사진사적 행보를 남긴 김한용(1924–2019) 선생을 시작으로 《동아사진콘테스트》의 창설을 주도한 『동아일보』 사진부장 이명동(1920–2019) 선생, 그리고 이 공모전 수상을 계기로 사진가의 길을 걷고 이후 사진교육에 헌신한 홍순태(1934–2016) 선생 등이 구술 프로젝트에 참여해 작가로서 사진 활동과 한국사진사의 주요 궤적을 생생한 육성으로 전해주었습니다. 그들은 여기 없지만, 선생들과 함께한 구술은 우리 사진사의 중요한 자료로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구술 인터뷰와 더불어 《조선사진전람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사진부, 숙명여자대학교 사진부 동아리 숙미회, 현대사진연구회 등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한국 사진의 흐름을 조망한 자료집도 편찬되었습니다. 2024년에는 1990년대 미술관을 중심으로 기획된 주요 사진전들의 기획자들을 대상으로 한 구술 프로젝트, 『1990년대 주요 사진기획전』(자료집 제15호)을 발간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는 구본창, 김승곤, 강승완, 박영택, 박주석 등 당시 사진 전시를 이끌었던 기획자들과 참여 작가이자 평론가인 진동선, 그리고 뮤지엄한미의 최봉림 부관장이 함께해 1990년대 사진 기획전의 의의와 맥락을 다각도로 조명했습니다.
이처럼 구술 자료집은 사진가와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고정된 과거를 생생한 역사로 되살리는 중요한 기록 작업입니다. 더불어 연구소는 자료집의 내용을 보완하고 확장하는 기관지 『사진+문화』를 함께 발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15호에서는 사진 기획전의 확장을 도모한 ‘사진의 전시 공간’을 특집 주제로 다루었습니다. 여기에는 미술관을 1990년대 주요한 공간으로 주목한 필자의 글 「새로운 전시 공간」과 「1990년대 사진 기획전 전시공간」을 통해서 1990년대 한국 사진의 지형 변화를 조망한 바 있습니다.

2. 가장 심도 있게 진행했던 북 프로젝트
2022년, 뮤지엄한미 삼청 미술관의 개관전으로 선보인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1》은 한국사진사의 흐름을 사진제도의 관점에서 조망한 기획전입니다. 이 전시는 1929년, 한국 최초의 사진 개인전인 《정해창의 사진 개인전》부터 1982년 사진이 국립미술관의 소장 및 전시 대상이 된 국립현대미술관의 《임응식 회고전》까지를 아우르며, 총 열세 개의 주제별 섹션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전시는 조사, 연구 기간만 2-3년이 걸렸습니다. 대부분의 참여 작가들이 이미 작고한 상황에서 이들의 활동과 작품을 조명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자료조사와 유족들의 협조가 필수적이었습니다. 많은 유족들이 흔쾌히 도움을 주었고, 그들의 협력을 통해 오랜 시간 방치되고 잊힌 한국사진사의 생생한 순간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시 도록 호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에는 출품작과 일부 아카이브 자료, 그리고 작가 연보 및 한국사진사 연보가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작가들이 직접 프린트한 사진만이 당대의 물적, 사진적 정보를 담고 있다고 보았기에 출품작은 빈티지 프린트를 중점으로 수집했습니다. 그러나 빈티지 프린트를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하는 과정은 예상보다 많은 시간과 정교한 노력을 요했습니다. 적절한 환경에서 보존되지 못한 채 방치된 빈티지 프린트들은 실버 미러링과 변·퇴색 현상이 진행되고 있었고, 이를 디지털로 충실히 재현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세심한 기술과 장기간의 작업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러한 빈티지만의 색감과 질감을 출판물에서 완전히 구현하지는 못했지만 이 도록은 한국사진사를 새롭게 비추는 소중한 사료로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전시가 더욱 뜻깊은 이유는, 그 성과가 2023년 연구소 자료집 『대구사진사와 대구사진교육사』로 이어지며 보다 심도 있는 연구로 확장되었기 때문입니다. 개관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연구소는 1930~1960년대 한국 사진예술의 중심지 중 하나였던 대구의 사진 활동에 새롭게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대구는 최계복, 안월산, 구왕삼 등 주요 사진가들이 활동의 기반을 다졌던 지역으로, 1930년대부터 한국사진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에 따라 연구소는 대구 출신 사진가들의 활동을 보다 깊이 있게 조사하고 조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의 사진적 여정이 곧 한국사진사의 흐름을 형성하는 데 큰 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자료집은 지역 사진사의 맥락을 통해 수도권 중심으로 서술되어 온 기존의 한국사진사 서술에 균형을 더하고, 보다 입체적인 시각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사진사의 지형을 확장하고, 지역 기반의 사진 활동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3. 나의 TOP 5 books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ía Márquez), 『백 년 동안의 고독』, 박수연 옮김, 혜원출판사, 1993.

•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송동준 옮김, 민음사, 1989

• 알레이다 아스만(Aleida Assmann), 『기억의 공간』, 변학수·채연숙 옮김, 그린비, 2011.

•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문명 속의 불만』, 성혜영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4

• 폴 비릴리오(Paul Virilio), 『시각 저 끝 너머의 예술』, 이정하 옮김, 열화당, 2008

4. 가장 소중한 사진책과 그에 얽힌 이야기
하나의 사진책을 손꼽기란 쉽지 않지만, 참여했던 사진책 중에서 가장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책을 고르자면 단연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입니다. 이 책은 단순한 사진집을 넘어, 작고한 사진가들의 삶과 작품 세계를 유족들의 기억과 자료를 통해 다시 조명할 수 있었던 귀중한 기록입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 형식이나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배경을 발굴하는 과정은 마치 잊힌 사진사를 되살리는 여정과도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의미 있었던 것은 유족들의 헌신적인 협조였습니다. 그들은 오랜 세월 소중히 간직해온 선친과 조부의 필름, 인화 사진, 문헌 자료들을 전시를 위해 기꺼이 내어 주셨습니다. 그동안 빛 보지 못해 긴 시간 잠자고 있던 아버지의 사진과 뭉치 필름을 어렵게 찾아 필름첩에 정리해 주셨고, 한 장 한 장 그 이름이 새겨진 신문이며 인쇄물들을 품고 미술관의 기획에 기꺼이 동조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에 한국사진사의 중요한 흐름을 아우르는 작품들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한 세기의 사진사가 유족들의 기억과 함께 되살아난 순간들을 담고 있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5. 그 책 안에서 내가 가장 특별하게 느낀 페이지와 이야기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에서 가장 깊이 다가온 장면은 사진가 김종헌(1928–1988) 선생에 관한 부분입니다. 동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은행원으로 정년까지 근무했던 그는 한편으로 1960년대 최고 권위의 공모전이었던 《국전》에서 수상하며 초대 작가 및 심사위원을 역임했던, 사진 공모전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생전 준비하던 첫 전시회를 끝내 열지 못했지만, 그의 유족들은 언젠가는 세상에 발표할 선생의 작품과 자료들을 소중히 보관해왔습니다. 특히 1966년, 공보부 주최의 《제5회 신인예술상》에서 공보부장관상을 수상한 <패스, 미워>는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작품이 두 장의 사진을 암실에서 몽타주 해 하나로 완성된 사진이라는 점입니다. 작가는 반려견과 소녀의 표정을 각각 따로 촬영한 뒤, 두 이미지를 조합하여 유쾌하고 상상력 넘치는 한 장면을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유족은 선생의 필름과 자료들을 미술관에 기증해 주었습니다. 선생의 필름과 자료를 통해 우리는 이 작품의 형식과 제작 과정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1960년대 공모전 사진의 미학적 가능성과 실험 정신을 다시금 조명할 수 있었습니다. 김종헌 선생의 사진은 단지 한 사진가의 기록을 넘어 그 시대 사진 문화의 깊이와 다층성을 보여주는 특별한 페이지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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