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성큼 다가왔다는 것은 벚꽃의 분홍빛보다 초록의 기운에서 먼저 느낄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청보리’는 봄의 절정을 가장 조용히, 그러나 가장 인상 깊게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충청남도 보령시 천북면 장은리. 이름만으로는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지만, 4월 중순부터 이 작은 마을은 바람결 따라 물결치는 초록빛 바다로 변신합니다. 이곳이 바로 천북 청보리밭입니다. 보령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우면서 지도를 보며 어떤 곳을 들릴지 많이 고민했는데요. 새삼 눈에 들어온 이곳에서 봄의 싱그러운 느낌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아 카메라를 챙기고 목적지로 설정한 후 출발했습니다.

서울에서 고속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면 점점 도시의 윤곽이 흐려지면서 논과 밭, 바닷바람이 함께하는 풍경이 차창 밖으로 스며들곤 합니다. 천북면 장은리에 다다를 즈음에는 내비게이션보다 바람과 햇살이 방향을 가르쳐주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아주 맑은 날씨는 아니지만, 적당한 구름과 서늘한 바람이 청보리밭의 초록빛을 더욱 짙게 느끼게 합니다.

넓지 않은 주차장이지만, 평일에는 그만큼 한산한 분위기 속에서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습니다.

넓은 들판 위를 뒤덮은 청보리 이삭들. 발끝에 닿을 듯 말 듯한 연둣빛 보리들이 살살 부는 봄바람을 타고 물결치는 것 같습니다. 맑은 파란 하늘이라면 녹색의 청보리와 붉은 산책로가 대비를 이룰 것 같지만 흐린 날이라 부드러운 느낌을 줍니다.
바람 따라 물결치는 청보리의 계절
이곳의 청보리는 보통 3월 중순부터 자라기 시작해, 4월이면 키가 성인 무릎을 넘긴다고 합니다. 어린 보리의 줄기들은 햇살을 머금어 눈이 부시도록 초록인데, 바람이 불면 들판 전체가 잔잔한 파도처럼 일렁이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그 모습은 마치 대지 위에 펼쳐진 초록빛 파도 같아 조용하지만 강렬해서 시선을 빼앗기고 마음도 빼앗길 정도입니다.

산책로는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지만, 방문객들을 위한 작은 길을 따라 오르면 양옆 가득 펼쳐진 초록빛에 자꾸 발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작은 언덕을 조심스럽게 따라 걷다 보면 한 걸음마다 스치는 보리 이삭의 감촉, 사각사각 바람에 스치는 소리, 눈을 감으면 들려오는 자연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도시에서 잊고 살았던 감각들이 이곳에서 되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청보리밭 자체가 크진 않아서인지 언덕에 올라가면 보리밭 외에도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청보리밭을 배경으로 함께 여행 온 친구나 연인, 가족들과의 추억을 담는 분들도 많이 보이는데, 의외로 다양한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인스타그램 : stayground.official

SNS 속 풍경을 실제로 만난다는 것은 자꾸 카메라를 꺼내게 만드는 이유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스마트폰이나 미러리스 카메라 등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높지 않은 언덕에 오르면 그 끝에는 조용한 카페가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청보리창고입니다. 멀리서 봐도 청보리밭 사이에 살짝 운치 있게 자리 잡은 카페인데, 가까이 다가가면 작은 오두막처럼 보이며 통창이 있어 모던한 느낌을 줍니다.


카페 내부에 들어서면 겉에서 보기보다 더 넓은 공간이 펼쳐집니다. 대부분의 벽이 큰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어느 자리에서도 청보리밭을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내부의 테이블도 다양하게 배치돼 개인 손님은 물론 단체 손님들도 불편함 없이 앉을 수 있습니다.



모던하면서도 앉아 있으면 편안한 공간이며, 태양을 피하거나 갑작스러운 비바람을 피하기에도 딱 좋습니다. 이전에는 무료로 개방되었으나 방문객이 많아지면서 관리를 위해 입장권을 사진 이용권이나 음료 이용권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곳은 사유지이기도 하고, 방문한다면 사진 한 장은 남기고 싶을 테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진 이용권은 6,000원, 음료까지 이용할 수 있는 이용권은 8,000원입니다. 음료 이용권으로 카페도 여유롭게 이용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전의 폐창고를 개조하여 만든 카페인데 이렇게 감성이 물씬 풍기는 공간으로 변신했네요. 또한, ‘그해 우리는’ 촬영지로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합니다.

커피부터 라테, 에이드, 스무디, 차 등 다양한 음료가 있으며, 디저트로는 보리빵과 찹쌀 케이크 등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청보리창고의 특산품인 찰보리쌀과 보리 로스팅, 커피 원두 등도 구입할 수 있습니다.

마치 프레임 속 한 폭의 청보리 풍경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천북 청보리밭은 상업적인 조형물이나 인위적인 연출 없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장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특별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조용한 이곳에서는 누구나 자연의 일부가 될 수 있는데, 사진에 담을 때 주인공이 아닌 풍경 속 하나의 점처럼 조용히 녹아든다면 그것이 바로 더없는 인생샷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천북 청보리밭
-주소 : 충청남도 보령시 천북면 장은리
-입장료 : 사진권 6,000원, 사진+음료권 8,000원
-최적 방문 시기 : 4월 중순 ~ 5월 초(청보리가 초록일 때)
-주차 : 청보리밭 아래 공터
-주의 사항 : 보리밭 안쪽 무단 진입 금지 / 촬영 시 다른 방문객 배려 필요
-인근 명소 : 천북 굴단지, 신두리 해안사구, 대천해수욕장
본 콘텐츠는 저작권에 의해 보호됩니다. 복제, 배포, 수정 또는 상업적 이용은 소유자의 허가 없이 금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