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봤던 TV 속에는 지구를 지키는 히어로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지구 용사 벡터맨이 떠오르고요. 전설의 용사 다간도 있었고, 달의 요정 세일러문도 빠질 수 없어요. 이들은 초인적인 힘과 뛰어난 지략, 특별한 능력과 스킬을 구사하며 악당으로부터 지구를 구했습니다. 그 시절 우리는 엄마, 아빠 말을 잘 듣겠다는 약속과 문구점에 파는 변신 도구를 교환했고, 놀이터에서는 늘 변신 주문이 오갔어요.
히어로들 덕에 20세기 2D 세계 속 지구는 이제 평화롭지만 2025년 현실 세계 속 지구는 여전히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악당이 아니라 인간이 초래한 기후 위기에 지구가 끓고 있기 때문인데요. 지구 온난화(Warming)를 넘어 지구 가열화(Boiling) 시대가 결국 도래했고, 뜨거워지는 지구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시선엔 더욱 짙어진 걱정이 깃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저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지구를 수호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덕분에 '제로웨이스트', '비건', '업사이클링'이란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고, 지난해 저희도 제로웨이스트 가게를 소개했었어요.
▷비우기, 줄이기, 조금 불편해지기: 제로웨이스트
이번에도 찾아봤습니다. 사진, 자원 재활용,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운영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지구를 수호하는 사람들을요.
카페 야트막





카페 야트막
언제 쌀쌀했냐는 듯 햇살이 강하게 내려앉은 5월 중순, 독립문 방향으로 난 야트막한 언덕길에서 문을 활짝 열어둔 제로웨이스트 카페 야트막을 만났습니다. 2인용 테이블 2개, 4인용 테이블 2개가 전부인 아담한 카페이지만 한쪽 벽면, 천장에 닿을 만큼 높이 짠 선반에는 업사이클링 제품과 비건 식료품, 다회용기가 모여 있습니다. 카운터에는 플라스틱 빨대 대신 유리, 스테인리스 빨대가 있고 코스터는 굵은 실을 엮어 만들었고요. 작지만 지구를 수호하는 곳답게 갖출 건 다 갖춘, 기본에 충실한 카페입니다.
사장님은 더 많은 사람들이 제로웨이스트를 알고, 경험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야트막을 열었습니다. 모든 음료와 음식은 테이크아웃 시 개인 용기를 지참해야 하고, 용기 지참이 익숙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매장 텀블러를 대여해 음료를 포장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습니다. 텀블러를 세척할 수 있는 곳도 따로 만들어져 있고요. 사장님이 카페 자체를 제로웨이스트 문턱을 낮추는 공간으로 설계한 느낌이었습니다. 손님들은 익숙하게 유리 빨대를 사용했고, 저 역시 머무는 동안 유리 빨대를 사용했는데요. 유리 빨대는 플라스틱 빨대에 비해 딱딱하다는 것 외에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차가운 온도가 유지돼 아이스 음료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매장에 진열된 제품을 구매하면 사장님이 그 제품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세요. 사장님이 써보고 좋았던 물건들을 판매하기 때문에 그만큼 1차 검증(?)이 끝난 것들이기도 합니다. 제로웨이스트에 얼마나 진심인지 느껴지죠? 그 진심을 믿고 미루고 미뤘던 튜브 짜개를 구매했는데, 한 톨의 치약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 쓸 생각을 하니 어쩐지 기대가 되네요.
야트막
· 영업 시간: 월~금 10:00~18:30, 일 11:00~18:00
· 위치: 서울시 서대문구 독립문로 29
*테이크아웃을 할 경우 텀블러 지참
모레상점






우리의 소비가 지구를 지킬 수 있을까요?
모레상점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봤는데요. 하지 않는 것보다 뭐라도 해보는 것이 조금 더 나은 결과를 불러올 때가 있고, 당장 모든 것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점진적으로 소비 습관을 바꾸는 것이 이 상황에 해당되지 않을까요?
모레상점은 책임 있는 소비가 일상이 되는 세상을 바라며 환경 기부형 브랜드 모어포모레에서 운영하는 책임 소비 플랫폼입니다. 성수동 헤이그라운드 1층 로우키 커피 카운터, 그 옆에 자리한 4평 남짓의 오프라인 상점엔 변화를 불러올 물건들이 간소하고 소박하게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로우키 커피 안에 있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고, 자칫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으로 착각하기 쉬울 듯 보였으나 입간판이나 배너로 모레상점의 존재를 친절히 알리고 있기도 해요. 모레상점은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열린 문입니다.
공간이 협소하고 무인으로 운영되다 보니 업사이클링, 제로 웨이스트, 비건 등 지속 가능한 제품을 키오스크로 구매할 수 있었어요. 제로 웨이스트 제품이라고 하면 흔히 연상되는 천연 수세미와 대나무 칫솔을 비롯해 병뚜껑으로 만든 키링과 재생펠트 트레이(업사이클링), 비건 치실(비건) 등 종류도 꽤 다양합니다. 결제 방법이 상세히 안내되어 있기는 하나 키오스크 사용이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기회가 되면 모어포모레 에브리 립밤을 사용해 보고 싶었는데요. 플라스틱의 매끈함과 단단함이 느껴졌던 일반 립밤과 달리 조금은 까슬하고 플라스틱에 비해 무른 종이 패키지 감촉이 재미있었어요. (립밤은 식물성 보습 성분으로 제작)
야트막을 거쳐 모레상점을 떠나면서 든 생각. 플라스틱 빨대를 유리 빨대로, 플라스틱 수세미를 천연 수세미로 바꾸는 등 천천히, 조금씩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킨다면 우리도 충분히 지구 수호대 일원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요.
모레상점
· 영업 시간: 월~토 09:00~19:00
· 위치: 서울시 성동구 뚝섬로1나길 5 헤이그라운드
전시 《더 글로리어스 월드》
참여 작가: 라그나르 악셀손, 마르코 가이오티, 닉 하네스, 크리스 조던
라그나르 악셀손 전시 파트
「Nenet's Camp Side(Siberia, 2016)」
마르코 가이오티 전시 파트
닉 하네스 전시 파트. 차례대로 「Chillout Ice Lounge(Dubai, 2016)」, 「Green Planet Indoor Tropical Rainforest(Dubai, 2017)」
크리스 조던 전시 파트. 차례대로 「Gyre(2009)」 , 「Whale(2011)」, 「Blue(2015)」
「Gyre(2009)」. 240만 개의 해양 플라스틱 조각으로 만든 작품
「Comorants Nesting on an Abandoned Pier #9(Dawn)(Strait of Magellan, Chile, 2024)」
우리가 종종 잊고 지내는 사실이 하나 있어요. 인간만이 지구를 터전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구는 모든 동식물이 공생하는 커다란 장(場)이고, 인간을 포함한 수만 가지의 종(種)은 오랜 시간 지구에서 겪고 터득한 생존 방식을 DNA에 새겨넣었습니다. 하지만 그 메커니즘은 기후 위기란 오류를 만나면서 전에 없이 삐걱거리고 있죠.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 곳곳을 촬영한 네 명의 작가가 있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자연과 인간, 동물들을 담아 현재 진행 중인 기후 위기가 어떤 상흔을 남기고 있는지 포착합니다. 라그나르 악셀손은 북극에 사는 사람들과 급변하는 극한의 환경을, 마르코 가이오티는 서식지가 사라진 수많은 생물종의 삶을, 닉 하네스는 문명의 발전이 가져온 아이러니를, 크리스 조던은 인간의 대량 소비 현상이 자연에 초래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가장 시선을 끄는 건 크리스 조던의 작품이었습니다. 은유적인 작품이지만 메시지는 직접적이기 때문인데요. 평범한 명화 모작처럼 보였던 사진이 알고 보면 수만 톤에서 수십, 수백만 톤에 달하는 버려진 플라스틱, 비닐봉지, 라이터, 해양 쓰레기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한동안 작품 앞을 떠날 수가 없게 됩니다. 자연 품에서 살아가는 동물의 표정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담긴 마르코 가이오티 작품도 매우 인상 깊고요.
이 전시를 통해 CCPP와 사진작가들이 지구의 비극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후 위기 속에서도 자연, 인간, 동식물은 여전히 연결된 존재들이며, 기후 위기를 인식한 우리가 앞으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생각하도록 여지를 남깁니다. 이 전시의 제목이 '더 글로리어스 월드'인 이유입니다.
CCPP* 전시 《더 글로리어스 월드》
· 전시 기간: 25.04.22.(화)~08.24.(일) (매주 월 휴관)
· 관람 시간: 10:00~19:00 (입장마감 18시)
· 장소: 충무아트센터 갤러리 (서울시 중구 퇴계로 387)
· 입장료: 16,000원
*CCPP(Climate Change Photo Project): (재)중구문화재단에서 기후 위기 심각성에 공감하여 사진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프로젝트로 2023년에 시작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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