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어려운 일이 아주 많지만 그중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압축과 요약이 아닐까, 생각해요. 몇 문단이 훌쩍 넘는 후기보다 한 줄 평이 어렵듯이요. 짧은 문장 안에 그 작품에 대한 인상, 감상, 특징이 모두 녹아있어야 하는 고난도의 작업이죠.
이 고난도의 작업을 사진 한 장으로 풀어낸 사진작가들이 있습니다. 단순히 눈앞의 이미지를 포착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한 장에 그곳의 분위기, 당시의 온도, 작가의 정체성을 담았습니다. 남성, 작업에 있어 빛과 색을 중요시하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서로 다른 세 명의 작가들은 부연 설명은 필요 없다는 듯 오직 작품으로 그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나도 이런 사진을 촬영하고 싶다'라는 욕망과 '어떻게 이런 사진을 촬영할 수 있지'라는 부러움이 공존하게 해요. 그 아름다운 결과물이 그라운드시소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도 있고, 낯선 작가도 있습니다. 2021년 그라운드시소에서 열린 《요시고 사진전 1》을 봤던 사람들이라면 이번 《요시고 사진전 2》를 무척 기다렸을 텐데요. 그도 그럴 것이, 2021년 전시를 무려 60만 명이 관람했거든요.(이후 부산, 제주에서도 전시) 요시고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발이 묶여야 했던 사람들에게 갈 수 없었던, 가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아쉬움과 욕구를 채웠고 사람들에게 '요시고' 이름 석 자를 각인시켰습니다. 그 각인은 4년이 지난 후에도 지워지지 않았고 《요시고 사진전 2》 오픈 당일부터 많은 관람객이 그의 작품을 보러 왔다고 하죠.
반면 조나단 베르탱과 알렉스 키토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전시를 관람하고 나면 작가의 이름이 또렷하게 새겨집니다. 그라운드시소 이스트 개관전에서 볼 수 있는 두 작가의 작품은 촬영 기법부터 상반되며 분위기도 접점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아주 달라요. 때문에 두 작품을 비교하며 나를 더 끌어당기는 작품을 찾는 것도 묘미입니다.
📍그라운드시소 이스트
서울시 광진구 아차산로 402 이스트폴 2층
《조나단 베르탱 사진전》
· 전시 기간: 25.05.23.(금)~09.28.(일)
· 운영 시간: 10:00~21:00 (7월 7일, 8월 4일, 9월 1일 휴관)
· 티켓 금액: 15,000원 (알렉스 키토 사진전 패키지 구매 시 21,000원)

Quest 1. Nature and Landscape

Quest 2. Urban Impressions

Quest 3. Impressionism
작가가 비전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작품 「Impression soleil couchant」(2023)
관람 당일 전시장에서 본 조나단 베르탱
인상주의 사진이란 확고한 작품 세계를 구축한 조나단 베르탱은 21세기 모네라고 불리는 작가입니다. 그 찬사의 이유는 작품을 보는 순간 깨닫고 마는데요. 우리는 종종 극사실주의 그림을 보며 사진 같다고 얘기해요. 그의 작품은 반대로 사진임에도 어쩐지 물감 냄새가 물씬 납니다. 사진이라 인지하고 감상함에도 그만큼 눈앞의 작품이 사진이 맞는가 싶게 수채화나 유채화처럼 느껴집니다.
<Quest 1>과 <Quest 2>의 주제인 자연과 도시의 풍경은 비교적 초점이 뚜렷해요. 하지만 조나단 베르탱만의 회화적 감성은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그 뚜렷한 초점 속, 작가는 익숙한 풍경에서 새로운 감각을 찾아 나섰습니다. 거대한 자연은 고요하면서 압도적이고 도시는 역동적이고 감성적이에요. <Quest 2>에는 서울을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도 있어 외국인의 시선에서 을지로가, 광화문 수문장 교대식이 어떤 모습으로 비치는지 볼 수 있습니다.
<Quest 3>부터 회화적인 느낌을 불어넣은 작가의 실험적 사진이 전시되어 있어요. 정석을 벗어난 작품은 일렁이는 밤거리를 정처 없이 떠도는 이의 시선 같습니다. 다중촬영으로 프레임을 여러 개 겹친 것 같기도, 카메라를 흔든 것 같기도 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은 대부분 어지럽고 흐릿합니다. 특히 모네의 정원 지베르니에서 촬영한 사진들은 정말 모네의 미공개 작품처럼 보이는 데다 공간과 대상에 새롭게 바라보게 해 그의 인상주의 실험이 더욱 돋보여요.
때문에 전시를 다 보고 나면 인상주의 실험을 따라간 그의 시도가, 「Impression soleil couchant」(2023)가 탄생한 순간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알게 됩니다.
《알렉스 키토 사진전》
· 전시 기간: 25.05.23.(금)~09.28.(일)
· 운영 시간: 10:00~21:00 (7월 7일, 8월 4일, 9월 1일 휴관)
· 티켓 금액: 15,000원 (조나단 베르탱 사진전 패키지 구매 시 21,000원)



Chapter 1. 콜로라도의 사계
Chapter 2. 고요한 빛의 축제
Chapter 3. 세상에 없는 곳 - 디지털 콜라주 작품

Chapter 4. 삶의 작은 순간들
여행 에세이를 펼친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요? 알렉스 키토 사진전은 사진을 전시한 방식이 독특해 재미있습니다. 일반 전시처럼 벽에 걸어둔 작품도 많지만 커다란 책장을 넘기도록 구성하거나 공간의 빛은 최소화하고 작품은 대형 사이즈로 인쇄해 마치 사진 속 장소에서 대상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연출로 몰입감을 높이기도 합니다. 군데군데 적힌 작가의 코멘트는 에세이의 한 글귀 같아 작가의 여정을 하나하나 따라가는 것 같아요.
그림 위에 물을 흩뿌린 듯한 조나단 베르탱 작품과 달리 알렉스 키토의 사진은 자로 잰 듯 정교하고 색감 하나에도 오차가 없는 듯 보입니다. 이미지에서 '직선'이 느껴져요. 그래서 그래픽 사진을 감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한 인터뷰에서 포착할 장면을 찾을 때 중요시 생각하는 것이 조명과 색상이라 답한 알렉스 키토의 기조*는 작품에서 잘 드러납니다. 자연광 아래 그가 바라본 세상은 생동감 넘치는 색으로 가득하거든요. 어떨 때는 세상에 존재했나 싶은 색을 그의 작품을 통해 접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색이 다채롭고 '컬러풀하다'라는 말과 잘 어울립니다.
*출처: y35mag(y35mag.com/interviews/interview-alex-kittoe)
알렉스 키토가 끌리는 이미지도 명확합니다. 자연, 풍경이 주를 이루는 작품은 목가적이고 서정적이며 정적입니다. 시야를 넓게 써 대상을 포착했기 때문에 작품 속 이미지는 대체로 광활하고 한 편의 자연 다큐멘터리를 감상하는 기분도 들어요. 무엇보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가 이 이미지들을 추구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평안하고 평화로워요. 게다가 아름답기까지 하고요. "Find beauty in the little things in life." 그의 말은 이 전시를 통해 고스란히 증명됩니다.
하지만 관람객에 따라서 개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전시이기도 합니다. 알렉사 키토가 좇는 이미지, 색감, 시선 모두 명확하지만 자칫 흔한 풍경 사진처럼 느껴질 수도 있거든요. 그럴 때면 작품 속 자연광, 빛에 집중해 보세요. 작가가 이 순간을 고른 이유는 그 빛과 빛이 만들어낸 색에 있을 테니까요.
📍그라운드시소 센트럴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14 그랜드센트럴 3층
《요시고 사진전 2: 끝나지 않은 여행》
· 전시 기간: 25.06.06.(금)~12.07.(일)
· 운영 시간: 10:00~21:00 (7월 7일, 9월 1일 휴관)
· 티켓 금액: 20,000원

Holiday Memories
Close to the water
Of the seas
Through the windows(도쿄)
Into the alley(서울)
With the New York noise(뉴욕)
On the route - 미국 66번 국도
'요시고'라고 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대개 광활한 해변가와 그 안에 흩뿌려진 작은 점처럼 존재하는 사람들의 사진일 텐데요. 이번 요시고 사진전에서 눈에 띄는 점은 섹션을 이동할수록 카메라에 담긴 대상이 점점 우리와 가까워진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섹션은 기대에 부응하듯 하얀 포말이 부서지는 파도와 푸른 물결, 백사장, 그리고 여유롭게 해변을 즐기는 인파가 대부분 광각으로 담겨있습니다. 시원하면서 동시에 작열하는 태양이 느껴지는 이 구간은 요시고를 기다렸을 사람들을 만족시킬 애피타이저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2021년 전시를 관람하지 못해 이번에 작품을 처음 접했는데요. 바다, 해변가라는 동일한 지리적 조건에서도 빛에 따라 물과 모래의 색이 변하는 순간들이 낭만적인 색감으로 표현되어 있어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어요.
하지만 사진전에서 빛이 완연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순간은 물과 만났을 때입니다. 요시고는 부감으로 혹은 수중 카메라로 물속에서 유영하는 사람들을 담았는데요. 일렁이는 물결들이 빛과 만나 다채로운 모양으로 우리 눈에 부서지는 모습이 예술입니다. 물과 함께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이내믹하고요. 그리고 이때부터 조그맣게 표현됐던 사람들이 사진 중앙으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여행 시리즈를 지나면 차례대로 도쿄, 서울, 뉴욕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도쿄는 거대한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조명한 느낌이라면 서울은 낯선 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서울의 색을 담은 듯합니다. 조나단 베르탱의 서울 사진에서도 느낀 바이지만 외국인 눈에는 서울이 이토록 다채로운 색을 지니고 있나 싶어 신기합니다. 반면 어두운 뉴욕 거리에서 발광하는 네온사인은 쓸쓸함과 로망을 동시에 비추고요.
이곳에서도 사람과 사물에 가까이 다가가는 요시고의 작업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요시고는 작업 방식이 달라졌다고 밝혔어요. 추상적이거나 반사 이미지를 통해 또는 카메라의 움직임, 필터, 셔터스피드를 활용해 감각적인 분위기를 주는가 하면 디지털카메라부터 필름, 폴라로이드, 수중 카메라까지 장비도 다양하게 사용했습니다. 멀리서 작게 찍던 구도도 피사체를 가까이에서 집중적으로 촬영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줬고요. 특히 필름 사진과 폴라로이드 사진이 눈에 띄었는데요. "그 색을 진짜로 재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필름"이라는 대답이나 "70~80년대 미국의 컬러 사진에서 영향을 받았다"라는 말에서 그가 필름과 폴라로이드를 선택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통일성 있는 전시라 느껴지진 않았지만 요시고의 작업 스타일 변천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선 충분히 흥미로웠습니다. 작가가 가진 다양한 색을 엿볼 수 있기도 했고요. 하지만 '요시고'를 대변하는 대중적인 작품을 기대한다면 도쿄 파트부터 조금 당황스러울 수 있겠지만 그 변화를 음미해 보는 것도 하나의 감상 방법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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