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을 앞둔 어느 평일의 평화로운 오후, 정적을 깬 에디터 C의 한 마디. "5월 30일부터 츠타야 팝업이 한남동에서 열린답니다. 여기 촬영 나가면 좋을 것 같은데, 가고 싶은 분 계세요?". 나와 에디터 K는 물었다. "츠타야씨가 누구죠?". 그러자 돌아온 에디터 C의 대답, "두 분이서 가시면 되겠네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와 에디터 K는 한남동에 위치한 츠타야 팝업에 (끌려) 가게 되었다. 본격적인 촬영에 앞서, 도대체 츠타야씨가 누군지 알아보았다. 아 서점이었구나, 그것도 일본에서 굉장히 유명한.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서점은 책을 보러 오거나 책이나 문구류를 사러 오는 곳이었다. 사실 그것밖에 할 게 없었다. 근데 요즘은 집 근처 대형 서점만 가도 핸드폰 케이스, 키링, 탁상용 시계, 차량 용품 등 단순히 '책'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잡화점의 형태를 띠고 있다. 우리의 라이프스타일과 밀접한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서점은 문화의 흐름을 읽고,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으로 확대되었다. 그 철학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게 바로 일본의 츠타야 서점이다.
이번 팝업의 공식 명칭은 [TSUTAYA‑CCC ART LAB Seoul 1st Pop‑up]. 서점을 라이프스타일을 소비하고 경험하는 공간으로 진화시킨 츠타야 서점은 책뿐만 아니라 문구류, 생활용품, 의류 심지어 미술품까지도 판다. 한마디로 문화를 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에서 관광 명소로 자리 잡은 츠타야 서점은 이미 국내에서도 입소문이 퍼진 만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Three Spaces, One Philpsophy. 세 개의 구분된 공간을 따라가다 보면 츠타야 서점이 말하는 하나의 철학에 다다를 수 있다.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되는 자리인 만큼 디테일 하나하나 놓치지 않는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이번 츠타야 팝업을 바로 만나보자.
| 아트의 정원(Garden As Art)

Hiroshi Nagai의 작품
Kohei Nawa의 작품
먼저 소개할 곳은 <아트의 정원>이다. 들어서면 흰색 벽면에 예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일본 현대 아티스트들의 핵심 작품들을 큐레이션하여 긴자 츠타야 서점의 시그니처 구성을 바탕으로 예술을 차분히 사유할 수 있는 실내 정원 컨셉으로 구현했다. 각 작품마다 작가들의 개성이 넘쳐난다. 시티팝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나가이 히로시의 원화를 비롯해, 다양한 첨단 재료를 활용해 시각적 몰입을 극해화하는 '텍스처 아트'를 선보인 모리 히로시 등 쟁쟁한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각각의 작품이 가지는 존재감이 엄청났다.
평일이라 그런지 더욱 고요했던 이곳은 작품을 사유하기에 충분했다. 중간중간에 위치한 '젠 가든(Zen Garden)'* 스타일의 모래 정원과 자연석을 활용한 오브제는 작품의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린다. 이 공간에선 '그냥'은 없었다. 별생각 없이 지나칠 수 있는 오브제 하나하나에도 의미를 담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
*젠 가든(Zen Garden): 돌과 모래, 이끼, 간결한 식물 구성만으로 자연과 우주의 본질을 표현하는 일본 정원의 한 형태. '자연을 최소화된 형식으로 추상화한 정원'이며, 내면을 관조하고 마음을 비우기 위한 정신적 공간이다.
Sablo Mikawa / Hiroshi Mori의 작품
Takumi Ueda의 작품
Zen Garden 스타일의 오브제
| 취향의 조각(Pieces of Taste)



다음으로 향한 곳은 <취향의 조각>이다. 이름 그대로 다양한 사람들의 취향의 조각을 큐레이션한 공간이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소장할 수 있는 일상용품(모자, 티셔츠, 필통, 연필, 파우치 등)과 굿즈부터 쉽게 접하기 어려운 값비싼 아트피스까지 다양한 범주의 취향의 조각들이 한 데 모여있다. 팝업을 명분 삼아 터무니없는 가격에 판매하는 굿즈를 여태껏 수차례 목격해온 나에게 이곳은 나름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큐레이터가 될 수 있다. 이 공간은 우리가 취향을 발견하고 또 소유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실용적이면서 디자인 감각이 깃든 상품들이 합리적인 가격에 진열되어 있으니 몇 번이고 솟구치는 구매 욕구 억누르느라 힘들었다.
야외 중정에 위치한 커피 브랜드 'Little Nap Coffee Stand'
야외 중정엔 도쿄를 대표하는 커피 브랜드 'Little Nap Coffee Stand'의 핸드드립 커피와 함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Little Nap Coffee Stand는 도쿄 시부야 요요기공원 인근에 위치한 카페이며, 현지에서도 매일 대기가 있을 정도로 인기가 굉장하다. 현지 직원이 직접 내려주는 커피는 타임별(11시, 15시)로 45잔씩만 판매한다고 한다. 메뉴는 단일 메뉴로 드립 커피가 준비되어 있고 가격은 7,000원이다. 츠타야팝업보다 'Little Nap Coffee Stand'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온 사람들도 많다고 하니 꼭 미리 가서 줄 설 것을 추천한다.
| 작은 책방(A Little Book Shop)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작은 책방>이다. 이곳에선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과 아트북 등 다양한 아트 서적이 진열되어 있으며, 계단으로 이어지는 중정과 출입구 앞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와 함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라이프스타일 중심의 서적들이 주류를 이루다 보니 우리가 평소에 생각한 서점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책을 펴고 몇 장 넘겨보지만 평소 잡지나 매거진을 즐겨 읽지 않는 나에겐 사실 흥미롭진 않았다. 그럼에도 나른한 평일 오후, 친구와 함께 한 손엔 커피 한 잔을, 다른 한 손엔 책 한 권을 들고 테라스에 앉아 그들이 선택한 취향을 공유하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공간의 매력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아트의 정원], [취향의 조각], [작은 책방] 순으로 여러분께 소개해 드린 데는 이유가 있다. 안내 책자를 보면 공간마다 순서가 부여되어 있다. 안내 책자에 적혀있는 문구 하나가 눈에 띄었다.
“예술을 거닐고, 취향을 모으고, 책과 커피로 사유하는 세 가지 테마가 감각적인 경험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철학 아래 조화를 이룹니다”
세 개의 테마를 모두 둘러보고 나니 이 말의 의미를 대충 알 수 있었다. [아트의 정원]에서 일본 대표적인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내면 깊숙이 사유하고, [취향의 조각]에선 우리의 라이프스타일과 밀접한 취향의 조각들을 직접 경험하고 소유한다. 마지막으로 [작은 책방]에선 중정과 테라스에서 책과 커피와 함께 휴식을 취하며 우리가 소유하게 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끝으로 이번 팝업은 마무리된다.
그렇다면 '하나의 철학'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마도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공간' 정도가 아닐까 싶다. 서점은 일상의 공간이다.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분명한 목적이 있지 않아도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츠타야 서점은 이러한 일상의 공간을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장으로 확장시키고,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라이프 스타일을 판매함으로써 모두의 평범한 일상이 예술로 승화되는 그 과정에 집중했다. 이번 팝업은 츠타야 서점의 철학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안내 책자
서점의 기본적 기능에 충실한 일본 츠타야 서점에 비해 이번 츠타야팝업은 그 기능을 최소화하였기에 아쉬움을 느낀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점의 새로운 형태, 일상을 새롭게 채우는 경험만으로 발걸음이 아쉽지 않았던 그런 팝업이었다. 고요함과 여유를 찾기 위해 우리는 시간과 돈을 투자해 왔다. 어느 한적한 곳의 카페에 가기도 하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한 곳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만큼은 특별한 소비를 하지 않고도 차분히 예술 작품에 몰입하고, 취향을 발견하고 그리고 커피 한 잔과 함께 고요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츠타야팝업은 여러분에게 특별한 하루를 선물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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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UTAYA‑CCC ART LAB Seoul 1st Pop‑up]
위치: 나인원 한남 리테일존(한남대로 91)
기간: 2025년 5월 30일 ~ 7월 13일
시간: 매일 오전 11시 ~ 오후 7시(월요일 휴관)
주차: 나인원 한남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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