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도라 불리는 교토는 매년 벚꽃이 지고난 4월 중순부터 도시 전체가 사진으로 물든다. 도시 전체에서 사진전이 열리는 게 신기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전시와는 사뭇 다르다. 전시를 보러 다닌다는 느낌보다는 사진과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랄까. 프랑스의 아를국제사진전을 레퍼런스 삼았지만 이제는 어엿하게 전 세계를 대표하는 사진전으로 거듭난 교토그라피 2025와 주목할 만한 작가들을 만나보자.
KYOTOGRAPHIE 2025

매년 교토그라피에는 주제가 있는데 올해에는 'HUMANITY'다. 휴머니티는 인간의 본성과 본질을 뜻하는데 이번 교토그라피를 통해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주제는 다양한 문화적 관점을 바탕으로 복잡한 인간성을 사진으로 마주하게될 때 이해와 포용으로 세상과 연결할 수 있는 좋은 주제라 생각이 든다.
교토그라피는 한 달간 열리며 0번부터 16번까지 메인 갤러리를 운영하며 다양한 가치를 전달하며 동시에 KG+ 라는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신인 작가들의 작품까지 만나볼 수 있다.
00 : INFORMATION




교토그라피에 방문한다면 가장 먼저 들러야 하는 곳이다. 이곳에 들러서 티켓을 구입할 수도 있지만 구입하지 않고 안에 들어와 책과 교토그라피와 관련된 영상물을 보며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단순히 티켓이나 인포메이션의 기능보다는 앞으로 볼 전시들과 이어주는 일종의 브릿지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래서 1층은 교토그라피의 분위기, 영상물 책을 보면서 헤리티지를 엿볼 수도 있고, 2층으로 올라가야 본격적인 전시가 시작된다.
01 : ADAM ROUHANA <The Logic of Truth>

전시가 이루어지는 공간을 살리면서도 작품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준비한 이런 디테일이 세심하다.
빛이 더 드는 채광 덕에 더욱 아름다운, 평화로운 느낌이 든다.
아담 루하나는 현실의 삶 속에서 사진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탐구한다. 그는 팔레스타인계로서 현재 참혹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통제되고 억압된 상황에 무차별하게 노출되어 있는지 공공연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이 사진들이 우리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한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일인가 싶을 정도로 평온하고 침착하며 아름다운 빛으로 물든 풍경이 즐비하다.
평화로운 풍경이 계속 될수록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접하게 되는 전쟁과 더욱 대비가 된다.
하지만 점점 들어가면 갈수록 아름답게 빛이 드리우는 자리가 아닌 그늘진 곳에서 어떤 참상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름다운 빛과 대비되어 더욱 강하게 다가오며 팔레스타인 역사의 두 가지 면을 다 보는 듯한 전시다. 사진은 그런 모든 면을 다 비출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03 : Keijiro Kai <骨の髄 / Down to Born>
Supported by FUJIFILM
이 작품이 이 전시의 핵심인데 실제 프린트 된 작품을 보면 압도당한다.
이곳에서는 전시와 함께 후지필름 GFX Grant Challenge 수상작들도 감상할 수 있었다.
단언컨대 이 작품이 주는 압도감은 작품의 스케일도 아니었고, 공간이 주는 집중도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사진 속에서 느껴지는 그 에너지가 단숨에 사로잡는다. 그만큼 그 순간에 담긴 광기 어린 눈빛들의 무리의 기세가 대단하다.

스포츠 사진을 촬영하는 작가 케이지로 카이는 스포츠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다양한 국가를 방문하는데 그때마다 다양한 축제에 참여하면서 촬영을 했다. <Down to Born>에서는 폭력과 피, 불을 상징하는 5가지의 축제인 영국 애쉬본의 Shrovetide Football, 일본 마사토의 Take-uchi, 불리비아 마하의 Tinku, 조지아의 Lelo, 일본 노자와의 Lighting of flares ar Dosojin Festival을 다니며 그 광기 어린 군중들 속에 들어가 그 현장을 생생하게 담았다.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해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건 꽤나 큰 고통이 수반되는 일이다.
축제와 스포츠는 역사적으로 보면 대부분 남성중심적인 행위다. 사회 구조, 종교, 경제적 맥락을 봤을 때 남성들이 더 많은 역할과 공개적인 의식을 통해 자신이 속한 마을이나 집단의 안녕을 바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날만큼은 사회적인 모습이나 만들어진 모습이 아닌 순수한 인간 그 자체가 된다. 그렇게 순수한 인간으로 돌아가면 정말 작가가 표현한 것처럼 무의식이 지배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그 순수하면서도 광기어린 인간 심연의 모습이 너무도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04 : Mao Ishikawa <Red Flower>
Supported by SIGMA


사회에서 비주류라 평가 받는 사람들이지만, 이시키와 마오는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저 따뜻하게 바라볼 뿐.
오키나와에서 나고 자란 이시카와 마오 작가는 1970년대부터 주둔한 미군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집중 탐구한다. 오키나와는 오랜 시간 미군이 주둔하며 크고 작은 문제들이 계속 발생하지만 묵인되는 현실 속에서 이시카와 마오 작가가 특히 집중한 문제는 술집 여자, 공연가, 군인들이나 사회에서 비주류라고 평가받는 사람들, 다양한 인종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 모습을 담아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 오키나와의 사회적인 문제 제기를 해온 작가다. 하지만 작가는 그들을 탓하지 않는다.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시대와 사회가 그렇게 흘러간 구조만 탓해야지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작가는 그 시대의 사람들과 오키나와 주둔 문제를 별도 공간으로 분리한 것이 아닐까 했다.
추가로 마련된 공간에서는 오키나와에 건설되는 기지마다 시위를 하는 사진과 함께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작가다. 하지만 이시카와 마오는 "미군은 싫지만 미국 군인은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며 여전히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오키나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06 : Lee Shulman & Omar Victor Diop <The Anonymous Project presents Being There>


이 전시장의 첫 이미지를 보는 순간 50~60년대 같은 배경의 장소, 그리고 미국의 오래된 시트콤에서 봤을 법한 색감이 눈길을 끈다. 따뜻한 색감과 행복해 보이는 표정까지 완벽한 느낌이다.


하지만 어딘가 좀 이상한 느낌이 든다. 약간씩 부자연스럽고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묘하게 불쾌한 건 모든 사진에 주인공처럼 등장하는 흑인이 묘하게 부자연스러운 느낌으로 백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었다. <겟 아웃>으로 유명한 조던 필 감독의 영화를 봤을 때의 느낌이랄까.

그 느낌에 대한 해답은 전시장 마지막에 있는 작은 디스플레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50~60년대 이미지 속에 흑인 모델을 합성해서 넣은 것으로 뿌리깊은 차별의 역사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주제의 전시와 사회적인 문제제기는 단골 소재지만 이렇게 유희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니. 그 당시엔 도저히 접근이 불가능했던 커뮤니티 '내부'에 흑인이라는 '외부인'을 넣음으로써 아직도 곳곳에서 벌어지는 차별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세상에 내보인다.
8A, 8B : JR <Printing the chronicles Kyoto>
JR의 <클로니클> 시리즈는 전 세계 도시를 대상으로 한다.
JR의 작품은 시작부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압도되게 만든다. 장소와 무척 잘 맞게 구성이 되어 있어 더욱 집중도가 높아지는데 대형 프린트 된 작품이 유려한 라인으로 연속성 있는 이미지의 특성을 아주 잘 반영하여 걸려 있다. 이 시리즈는 <Chronicles, 연대기>이다. 이 <연대기> 시리즈에서는 한 프레임 안에 정말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이 서 있다. 이 수많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JR의 <연대기>는 등장인물들이 원하는 모습을 정하여 자유롭게 표현한 수많은 사진을 조화롭게 배치했고, 이 시리즈를 통해 도시 속 파편화 된 개인들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서로 연결되어 있고 조화를 이루며 연대 되어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전시가 열리는 장소가 교토신문사 공장인 걸 반영하여 그 지역 신문 위에 프린팅하는 기법으로 교토의 역사를 담았다.
교토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다양한 직종, 계층들이 다 뒤섞여 있다.
이번 교토그라피에서는 그 표현을 아주 극대화 시켰다. 각 도시 별로 연대기 뿐만 아니라 이번 교토그라피를 위해 교토 사람들을 담아내고 교토 지역의 신문 위에 프린팅을 하고, 그들만의 이야기가 담긴 인터뷰를 바탕으로 대형 전시물까지 제작하여 그 의미를 더 했다.
11 : Martin Parr <작은 세계>
마틴 파는 유쾌한 작품 속에 모든 사회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넣었다.
뮤지엄한미 삼청에서 열린 <매그넘 포토스> 전시를 소개하며 마틴 파에 대해 소개 했었는데 이번 교토그라피에서도 매그넘 포토스와의 협업으로 이뤄진 <작은 세계> 전시는 마틴 파만의 시선으로 아주 유쾌하게 우리 시대를 기록한 작품이 주를 이뤘다.



마틴 파의 <작은 세계>에서는 관광지나 랜드마크가 아름답게 보정되거나 하는 꾸며진 모습보다는 단체 사진을 촬영하거나 수천명의 인파 속에서 노는 군중들의 모습을 유쾌하게 담아냈다. 요즘 SNS에서 '여행지의 현실', '관광지의 실체'라면서 SNS에서 관광지의 아름다운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정신없는 모습을 일컫는 일종의 밈 같은 느낌을 준다.

마틴 파는 그런 유쾌한 모습으로 우리가 갖는 일종의 '환상'과 '획일화'에 대한 위트 있는 풍자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시간이 된다면 이런 마틴 파의 시선이 잘 드러난 <마지막 휴양지, <Real Food>를 검색해 보는 걸 추천한다. 그걸 보고나면 <작은 세계>가 담은 멧지를 120%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2 : GRACIELA ITURBIDE <Graciel Iturbide>
Present by DIOR


교토그라피 책자에 아주 강렬한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이구아나 여러 마리를 머리 위에 올려놓은 한 여인의 모습. 그 사진의 주인공은 바로 이번에 소개해 드릴 그라시엘라 이투르비데다. 그녀는 멕시코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고, 그들의 삶을 담은 작품으로 멕시코의 국민적인 작가가 되었다.

멕시코엔 다양한 원주민들이 모여 살고 있는데 이투르비데는 이런 원주민들의 문화, 멕시코의 일상,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들의 삶을 깊이 있는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이지만 때로는 환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삶과 죽음 사이의 의식은 고유한 문화 같지만 엄밀히 따지고 보면 보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삶을 기꺼이 보여주고 기록해 온 그라시엘라 이투르비데는 멕시코가 사랑하는 작가를 넘어 전 세계가 사랑하는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14 : LAETITIA KY <LOVE & JUSTICE>


레티티아 키의 전시에서 가장 독특한 건 '머리카락'이다. 모든 작품은 레티티아 키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어떤 형태를 만들어 메시지를 넣은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직접 모델가지 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레티티아 키는 자신으 구태여 사진작가라는 테두리에 가두지 않는다. '헤어조각가'로 스스로를 정의하며 조각된 머리카락으로 사회적인 메시지와 화두를 다양하게 던지고 있다.

작품도 범상치 않지만 이런 사회적인 메시지와 화두를 던지는 방식도 예사롭지 않다. 레티티아 키는 코트디아부르 출신의 인플루언서/예술가로서 그 영향력을 인스타그램의 릴스, 틱톡 등을 활용하여 자신의 작품과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메시지 속에서는 인간의 보편적인 삶, 결혼, 출산, 인생, 젠더 등 정말 다양한 주제가 담겨있다. 그리고 결국은 자유로워지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아무래도 작가 본인도 외적으로 얽매이던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기 때문 아닐까.
KG+SELECT 2025, 10th Anniversary


교토그라피가 기성 작가, 유명 작가들이 초청되거나 참여하여 만들어 내는 국제사진전의 성격을 띄고 있다면, KG+는 공모 페스티벌을 통해 선정된 작가들이 작품을 전시하며 교토그라피와의 긴밀한 연계성으로 새로운 작가가 국제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내는 전시다. 특히 일반적인 KG+와는 달리 KG+SELECT 어워드는 유망한 작가를 소개하고 그랑프리를 통해 수상한 작가가 다음 해 교토그라피에서 전시할 수 있는 영예를 주고 있다.



이런 신인 작가들의 등단을 담당하는 KG+는 시그마에서 10년 째 메인 스폰서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 문화발전에 그만큼 진심으로 느껴진다. 올해엔 메인 프로그램인 교토그라피까지 메인 스폰서를 담당하고 있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KG+ 사랑은 여전하다. 올해는 KG+가 10주년이 되는 해라 KG+SELECT 부스에서 10주년에 대한 소개와 함께 그간 수상한 작가들의 인터뷰,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여러 이야기를 담은 책이 출판되었다. KG+SELECT에 방문하면 유명한 작가들의 다양한 사진을 볼 수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오브제를 실제로 구현함으로써 몰입도가 올라가는 이런 장치들도 많이 쓰인다.
TIME'S 건물에 들어가면 이렇게 시그마 라운지가 또 있다. 이곳에서도 책을 자유롭게 볼 수 있게 해놨다.
다채롭고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부분도 있어서 정적인 분위기의 갤러리 답지 않게 흥미로운 부분을 많이 느낄 수 있다. 이 밖에도 시그마는 TIME'S 건물에서 별도의 부스를 마련해서 오다가다 편하게 들어간다면 포토북들을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이 포토북들은 시그마 본사에 소장하고 있는 책들이라고 하는데 시그마가 얼마나 사진에 진심인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던 부분이다.
TIME'S 건물은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건축가인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건축물이다.

또한, 이 건물에서 올해 교토그라피 2025의 북페어가 열렸다. 일본 내의 다양한 출판사, 독립 서점, 편집 매장처럼 특정한 출판물만 선보이는 아트북 서점 등 다양하게 나와 자신들이 소개하고 싶은 책들을 출품하며 독자들과 다양하게 대화하며 만나는 자리였는데 올해는 독특하게도 우리나라 서적들이 드물지만 소개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나온 곳이 있어서 더욱 볼 거리가 많은 행사였는데 앞으로 더욱 기대되며 동시에 국제사진전을 넘어 정말 예술의 총 집합체로 거듭나려고 하는 교토그라피를 보고 온 느낌이라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