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이면 30도를 훌쩍 넘는 기온, 비 소식이 들려오면 어김없이 눅눅해지는 공기, 미룬 끝에 개시한 에어컨이 가리키는 것. 여름입니다. 선선한 날씨가 조금 더 머무르다 가길 바랐지만 짧아진 옷소매처럼 봄이 스쳐 지나가고 여름이 자리를 턱하니 잡았습니다.
여름만큼 두 얼굴이 확실한 계절도 드물어요. 온몸이 녹아내릴 듯한 더위가 찾아오기 전, 여름은 푸릇하고 싱그러우며 만물이 맥동하는 계절이기도 하니까요. 이런 날엔 카메라 하나 들고 혹은 가방에 차곡차곡 소지품을 쌓아 자연으로 들어가기에 딱입니다. 어딜 찍어도 잘 나오고 자연의 품에 안긴 느낌을 받을 수 있거든요.
본격적인 여름을 앞두고 백패킹과 트레킹 장소로도 좋고 출사지로도 손색이 없는 곳에 다녀왔습니다. 강원도 정선 민둥산, 경북 영양 자작나무 숲입니다.
📍강원 정선 민둥산
-강원 정선군 남면 무릉리
-휴무일, 입장료, 시설 사용료 없음






돌리네 연못
돌리네 연못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파노라마처럼 360도로 탁 트인 시야,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넓은 억새 능선은 이곳을 '한국의 스위스'라 부르기에 손색없습니다. 이곳은 바로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입니다. 산에 풀과 너무가 거의 없어 벌거숭이처럼 드러내고 있는 민둥산은 가성비가 좋아 등산 초보자에게 가장 많이 추천되는 명산 중 한 곳이기도 합니다. 능전마을에서 출발해 발구덕 쉼터를 지나 정상에 오르는 제2코스는, 정상에서 1km 지점까지 차로 이동 가능한 짧은 코스입니다. 30분 만에 정상까지 갈 수 있어 초보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반면, 흘린 땀이 무색할 정도로 정상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을 옮겨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오늘은 등산로 공사 중이라 발구덕 쉼터가 아닌 제2주차장에 주차 후 약 2.5km를 걸어 올라가야 했어요. 차량 출입구 관리소에 있던 관계자분이 걸어서 20분이면 정상까지 갈 수 있다고 했지만, 막상 정상에 다다르니 5~60분 정도 소요됐어요. 등산 난이도는 비교적 쉽다는 후기가 많았는데 평소에 등산을 안 했던 저는 생각보다 경사가 가파르고, 자갈길이 많아 등산하는 데에 애 좀 먹었지만 완등하는 데에 큰 무리는 없었어요. 그렇게 하염없이 걷다 보니 20분이 60분이 되는 마법 같은 시간을 지나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가파른 숨을 고르고 고개를 들었을 때 해발 1,119m에서 본 경이로운 광경은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 더욱 푸른빛을 뽐내는 녹음, 탁 트인 시야, 하늘과 맞닿은 풍경은 해방감을 선사함과 동시에 풍경 사진의 성지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겹겹이 보이는 산들은 사진에 깊이감과 입체감을 더하고, 지평선과 맞닿은 하늘은 청량감을 불어넣습니다. 능선 사이사이 웅덩이처럼 움푹 꺼진 돌리네는 자연의 신비로움을 더하며 민둥산의 대표적인 포토 스팟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몇 없는 그늘엔 벌써 자리 잡은 사람들이 새소리를 안주 삼아 반주를 즐기고 있습니다. 빠르게 흘러가는 도심의 풍경과는 다르게 이곳은 차분하고, 고요하고 또 여유롭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몇 그루, 돌리네 연못의 작은 조각배 하나, 끝없이 펼쳐진 능선은 우리의 피사체가 되어주고, 조금의 여유를 느끼게 해줘요.
등산 초보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고, 무얼 찍어도 그림이 되는 이곳은 여름의 시작을 담기에 최적의 장소이지 않을까요.
✅ [코스 정보]
제1코스 : 증산초교 ~ 쉼터 ~ 정상, 총 1시간 30분 소요
제2코스 : 능전마을 ~ 발구덕 ~ 정상, 총 1시간 20분 소요
제3코스 : 삼내약수 ~ 갈림길 ~ 정상, 총 2시간 소요
제4코스 : 암약수 ~ 구슬동 ~ 갈림길 ~ 정상, 총 3시간 5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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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양 자작나무 숲
-경북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 산39-1
-입장료, 전기차 이용료 무료 (전기차 이용료 추후 유료 전환 / 사전 예약 X)
자작나무 숲 입구
자작나무 숲 입구 개천
자작나무 숲 등산로




30년간 꼭꼭 숨어 있었던 경북 영양의 미지의 숲. 긴 시간 동안 이 숲에선 하얀색 수피를 입은 자작나무 12만여 그루가 하늘 높이 뻗어 올랐습니다.
자작나무 숲이라고 하면 대부분 강원도 인제를 떠올리겠지만 영양에도 30.6ha(약 9만 평)에 달하는 자작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어요. 원래는 금강송(금강소나무)이 군락을 이루던 곳이었지만 병해충 피해를 입으면서 금강송이 베어진 자리에 자작나무가 들어섰고, 2019년 자작나무 숲이 우리에게 존재를 알렸습니다. 해설사 말씀으로는 금강송과 자작나무의 생태 환경이 비슷하다고 해요.
말티재와 견줄만한 꼬불꼬불한 산길을 오르고, 양옆으로 논밭이 펼쳐진 좁은 길을 한참 달린 끝에야 자작나무 숲 안내소에 도착했지만 자작나무를 보기 위해선 이곳부터 약 5km 가량을 더 올라가야 합니다. 전기차를 타고 10여 분을 더 달린 끝에 마침내 보게 된 자작나무 숲은 마치 두 계절을 품은 것처럼 보였어요. 공기도, 햇빛도, 푸른 잎도 모두 여름을 가리키는데 자작나무의 수피만은 꼭 겨울 같았거든요. 시원하게 쭉쭉 뻗은 하얀 줄기와 녹색 잎사귀의 조화, 빽빽한 나뭇잎과 가지 사이를 관통한 햇빛이 자작나무 숲을 더욱 신비롭고 아름답게 만들었고 카메라 렌즈가 어디를 향하든 그곳이 곧 그림이었습니다. 자작나무 숲까지 가는 길이 녹록지 않지만 그 험난함을 견디고 갈만하다 느껴질 만큼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아름답고 평화로워요.
등산로는 1코스(노란색 1.49km), 2코스(파란색 1.52km)로 나누어져 있고 중간중간 설치된 안내판에서 현 위치와 가야 할 길을 알 수 있습니다. 오르막이 계속되고 돌과 자갈이 많지만 1년에 등산을 한 번 할까 말까 한 저 같은 초보자에게도 어렵지 않은 길이었고 포토존과 벤치가 숲 사이에 숨어 있어 쉬었다 가기에도 좋았습니다. 그래서인지 평일임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등산을 하러 온 관광객들이 많았어요.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전망 덱을 만나게 되는데요. 자작나무 숲이 해발 800m 고지대에 있는 만큼 산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여 산길을 오르느라 거칠어진 숨을 토닥이기에 딱 좋은 뷰입니다.
30년간 이곳은 미지의 숲이었지만 이제는 치유의 숲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 [전기차 이용방법]
안내소
자작나무 숲 전기차
자작나무 숲 전기차 탑승 대기실
1) 탑승 전, 안내소에서 탑승 번호표를 받아야 하며 탑승 정원이 다 찼을 경우 다음 타임을 기다려야 하고 이때 텀은 평일 기준 1시간입니다. 카페 자작 옆에 있는 대기실에서 탑승 전까지 기다리면 되고 탑승은 출발 약 5~10분 전부터 시작됩니다.(탑승 후 안내소 관리자가 번호표 확인 및 수거)
2) 평일에는 자작나무 숲 입구까지 전기차로 이동할 수 있지만 주말에는 입구까지 가지 않아 하차 후 약 30분가량(2km)을 걸어가야 합니다.
3) 하행 전기차는 하차했던 장소에서 탈 수 있습니다. 선착순이기 때문에 사람이 많은 날엔 미리 줄을 서지 않으면 다음 차를 기다려야 하니 타이밍 계산은 필수.
(평일) 상행 09:30~15:30, 하행 10:00~16:00&16:30(막차) / 1시간 간격 운행
(주말) 상행 09:30~16:30, 하행 09:45~15:45&16:30(막차) / 30분 간격 운행
*주말은 전기차 하차 후 자작나무 숲까지 도보 30분 이동
*월요일 미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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