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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매거진

도재홍
PEOPLE인터뷰
[15minute Pairing artists]
도재홍 작가, 김경선 교수
2025.08.13
137 1

· 인터뷰이 : 도재홍 작가 (이하 Do), 김경선 교수 (이하 Sun) 
· 인터뷰어 : 김희정 (이하 Kim)
· 장소 : 두성갤러리 
· 시간 : 38도, 7월의 태양 아래  
· 드링크 : 아이스 아메리카노, 핫 아메리카노, 레몬 에이드

 


 

KIM 날이 상당히 더워졌어요. 그렇지만 이 계절이 저희가 함께 만든 전시와 무척 잘 어울리는 듯합니다. 오늘은 사흘이 잘 어울릴 것 같은 날이네요. 이번 전시는 여러 가지로 특별한 기획이었어요. ‘소백 청연 사흘 초평’이란 작품이 종이를 다루는 두성 갤러리와 만나 일궈낸 시너지가 참 아름다웠습니다. 작품의 미니멀한 느낌과 다양한 텍스처가 잘 어울렸어요. 전시를 위해 많은 분이 도움을 주셨지만, 개인적으로 두 분의 에너지가 특히 기억에 남아요. 그래서 두 분과 함께 지난 인생 여정을 듣고 싶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서로 소개 부탁드려요.


SUN 제 옆에 계신 분은 도재홍 실장님이십니다. 공간과 제품, 건축 사진을 주로 촬영하는 사진가입니다. 첫 만남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제가 ‘홍디자인’이라는 스튜디오에서 기업 관련한 디자인 제작물을 만들 때니까 대략 2003년 전후가 아닐까 합니다. 당시 실장님께서는 다양한 매체(기업 및 디자인 스튜디오, 잡지 등)와 수많은 작업을 진행 중이셨고 저 또한 그 과정에서 뵙게 되었어요. ‘어떤 걸 잘 찍으신다’라기보다 제품과 공간에 관련하여 자신만의 묵직한 신뢰가 있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실장님 작품에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DO 제가 광고 사진 작업을 할 때 일했던 곳 중 하나가 홍디자인이에요. 교수님은 그 회사의 이사였는데, 꽤 특이한 느낌의 디자이너였어요. 그 당시 제가 작업했던 여타 다른 기관과 비교했을 때 색다른 인상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방식이나 스케줄 관리 방법 등이 세련된 디자이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 학부 교수이자 어피스오브서울의 대표입니다.
 

 

KIM 서로를 소개해 주시니 두 분의 케미가 더욱 궁금해지네요. 함께 했던 작업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눠볼 수 있을까요?

 

DO 순서는 헷갈리는데 삼성전자, 한화 그룹, 한솔, KT 등 아주 많아요. 그중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동물 병원 광고인데요. 집에서 키우던 비글을 모델로 작업했는데 뒤태가 상당히 예쁘게 나와서 재미있게 촬영한 기억이 나네요.


SUN 동물 병원 광고용 강아지 촬영은 NY 아트 디렉터스 클럽 수상 기념 촬영이었는데 저 역시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그 외에도 한솔40 사사, 호주 Perth와 뉴질랜드 Gisbourne 기스번 촬영, 삼성전자 애뉴얼 리포트, 까사미아 브로슈어, 한화그룹 브로슈어, 상하이 촬영, KT 브로슈어 베트남 촬영, 도쿄 롯폰기 촬영 등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KIM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셨네요. 혹시 촬영 중 흥미로웠던 에피소드들이 있을까요? 촬영 에피소드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어요. 


SUN 2002년에 삼성전자 일본지사 촬영 때 일이에요. 삼성전자 애뉴얼 리포트 작업을 마칠 때쯤 삼성전자가 롯폰기에 있는 일본지사 건물을 매입해 해당 건물 이미지를 추가하고자 했어요. 다소 촉박한 일정이라 얼른 촬영하고 보정해서 내지에 삽입해야 하는데, 확보된 이미지가 전혀 없으니 도재홍 실장님께 SOS 요청을 했죠. 그렇게 둘이 무작정 도쿄로 향했고, 도착하자마자 위치 파악하고 바로 촬영에 돌입했어요. 우연히 당시 탑승했던 아시아나 항공 승무원으로부터 사무실 맞은편이 해당 건물이라는 정보를 입수해서 위치 파악은 수월했어요. 다만, 일본 현지 코디네이터도 없었고 사전 협의도 제대로 되지 않은 터라 멀리서 건물 전경을 촬영하던 중에 경비원들과 소통하고 허가를 받는 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죠. 카메라 박스 열쇠까지 분실한 해프닝도 있었고요. 


DO 김 교수님이랑 일할 때는 디지털카메라보다는 필름 카메라가 대세일 때입니다. 주로 Sinar4x5 view camera, Contax 6x4.5를 사용했습니다. 이 촬영은 지나(Sinar) 카메라로 결정하고 케이스에 잘 준비해서 갔어요. 건축물 촬영인 데다 상황은 여의치 않긴 했지만 욕심에 우겨서 가지고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촬영을 하려고 보니 케이스가 안 열리는 거예요. 제가 케이스를 잠그지 않는 편인데 이동 중 흔들려서 잠겨버린 것 같았어요. 당연히 키는 서울에 있었고요. 촬영 준비하다가 알게 된 거라 앞이 까마득했어요. 갖은 노력을 해 봐도 도통 열릴 생각을 않더라고요. 결국 동경 시내 모든 열쇠방을 다 뒤져서 찾아간 뒤 열었어요. 당시 돈으로 한 30만 원 넘게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덕분에 무사히 촬영은 마무리했습니다. 



 

KIM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네요. 당일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에요. 그나저나 듣고 있자니 그 케이스가 궁금한데요?


DO 아직 소장하고 있어요. 예전에 쓰던 장비들은 함께 일했던 친구들에게 다 나눠 줬는데 지나 케이스는 정말 못 주겠더라고요. 제가 사진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구매했던 것이 지나 카메라였고, 그다음부터 렌즈랑 소품 등을 하나하나 모았었는데 이 케이스도 그중의 하나다 보니 아무래도 애착이 가네요.

 


 

KIM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SUN KT 브로슈어 촬영 때요. 하노이 KT 지사 촬영차 베트남에 방문했을 때 일인데, 이때도 아무런 사전 협조 없이 갔었어요. 당시 촬영해야 할 컷은 KT 지사와 베트남에서 활약하는 KT 망 사업과 관련한 글로벌 이미지 컷 3-4개였고, 머릿속에 이미지만 담고 하노이에 도착했어요. 지사에 찾아갔더니 춘절이라고 지사장은 점심 접대하러 가서 못 오신다고 하고, 저희는 텅 빈 회의실 테이블에 양국 국기만 찍고 나와 거리를 배회했더랬죠. 현지 가이드 한 명이 영문도 모른 채 우리를 안내하다가 결국 유스호스텔 근처로 가자고 해서 시내 중심가 유스호스텔로 갔어요. 외국인 모델이 필요했는데 당장 구할 사람이 없어 김 교수님이 외국인이 많이 모이는(이태원 같은) 곳에서 서양인 남녀를 100불에 섭외하고, 의상으로 갈아입힌 뒤 번화가로 데리고 나와 (즉흥적으로) 사진을 찍었어요. 하노이 시내에서 통화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해서 메인 컷을 찍고, 하노이 번화가 교차로 촬영 등 보조 컷 촬영까지 마치고 할롱베이 선상에서 신라면 끓여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DO 솔직히 그때 KT 하노이는 찍을 게 없어도 너무 없는 거예요. 하노이 사무실은 막상 가보니 정말 너무나 특징이 없는 최첨단과는 거리가 먼 그냥 사무 공간이었어요. 촬영 최대의 위기가 왔죠. 90년대 한국과 다를 게 없는 사무실. 그래서 쥐어  짠 게 한국 태극기와 베트남 국기를 클로즈업으로 연출하고 공간은 아웃포커스 해서 컷을 만들어 내고 나니 이후부터는 이제 우리들만의 시간이었던 거죠. 그때 가이드라고 온 사람은 베트남 초기 이주자 같았는데, 그 사람이랑 할롱베이 가서 큰 배를 빌려다가 같이 신나게 놀았던 기억도 있고 그래요. 하루에 30달러였던가 그랬을 거예요. 


SUN 아, 제주도에서 촬영했던 한화그룹 애뉴얼 리포트 촬영 때도 있어요.


DO 그때가 최고 성수기였었는데 장소는 정해졌지만, 모델 수급이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그때 김경선 교수가 능력을 발휘했죠. 급히 섭외한 모델 2명이 바로 비행기 타고 제주로 넘어와 숙박 없이 촬영하고 당일 퇴근하게끔 조정해서 기적적으로 촬영을 끝낼 수 있었어요.


SUN 그리고 이번 전시에 함께하는 김현경 대표와 얽힌 일화도 있어요. 프로젝트 사전 답사 차 홍디자인 김현경 대표와 제주에 왔다가 배탈이 난 적이 있는데요. 현지 가이드랑 촬영 장소 헌팅까지 마치고 마지막 날 다금바리회를 먹었는데, 그때 먹은 내장 때문에 장염에 걸린 거예요. 복통이 꽤 심했는데도 불구하고 아픈 배를 부여잡고 끝까지 촬영을 완수하는 김현경 대표의 근성에 도 작가님과 함께 큰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본 촬영이 끝난 뒤엔 촬영에 참여한 외국인 노부부 모델 포함 서른 명 남짓한 스태프들과 함께 제주 동쪽 인근 자연에서 제주 흑돼지도 구워 먹었어요. 함께 나눈 추억이 있다 보니 이번 전시에 김현경 대표가 함께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Do 김경선 교수와 했던 프로젝트 중에는 까사미아 촬영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SUN 컨셉추얼한 가구/인테리어 카탈로그 작업이었는데 시중에 흔한 형식이 아닌 콘셉트를 강조된 색다른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주변의 지인들께 부탁해 시도하기도 어려운 소마미술관 내부에서 촬영하게 된 거였죠. 그때 홍디자인의 홍성태 대표님이 연결해 주셔서 가능했던 일인데, 지금도 그 촬영의 기억은 특별해요. 


DO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 하다 보니 여행도 많이 다녔는데, 그중 방콕에서의 일화는 아직도 웃음이 나요. 당시 '최고의 친절함'으로 유명했던 오리엔탈 호텔에 묵었는데, 성인 남자 둘이 방 하나를 예약한 걸 본 총지배인이 '센스 있게' 트윈 침대를 굳이 하나로 합쳐주시고, 분위기 잡으라며 CD까지 두 장을 준비해 놓으셨더라고요. 하나는 Kenny G, 또 하나는 Air Supply였어요. 다시 떠올려도 웃기네요. 그날 밤은 음악만큼이나 상황도 아주 드라마틱 했어요. 촬영 외에도 이런 에피소드들도 있네요. 


KIM 두 분의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진한 케미스트리가 느껴집니다. 결국 일이란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함께 일궈나가는 여정이라 이런 소소한 서사들이 팀워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거겠죠. 서로의 취향은 물론 함께한 시간만큼 신뢰도 많이 두터워지셨겠어요.

 

DO 김경선 교수는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는 편은 아니에요. 고집적으로 전달하지는 않는데 자기만의 독특한 표현법이 있어요. 처음에는 '좋다' 하시고는 나중에 지나가면서 흘리듯 디렉션을 얘기하시거든요. 소위 ‘노룩’이라고 하나요? 쓱 지나가면서 상대방을 보지 않고 다른 이에게 말하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또는 천연덕스럽게 '저건 저렇게 해야겠지?' 하며 지나가시는데, 그게 묘한 효과가 있어요. 그 한 마디에 반응하는 스스로가 신기하면서도 '이 사람이 나를 생각하게 만든다'라는 느낌이 드는 거죠. 그러면서 저도 가끔은 '저게 맞는 건가?' 하고 혼자서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SUN 제 입장에서는 결국 기업이 원하는 이미지를 완성해야 하는데, 그 이미지를 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사진가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도 실장님의 이미지에 정말 많이 의지하게 되죠. 촬영 중에는 디렉션 받을 수 있는 이미지를 미리 보여주고, 다른 곳을 오가며 아이디어를 조율하는 과정이 있어요. 그때마다 스태프들에게 '이게 다 찍은 거냐?'라고 확인하면서도,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 계속해서 푸시를 하는 거죠. 최선의 결과물을 도출해 내야 하는 게 제 임무니까요. 


DO 그리고 작업과 관련해서 페이를 크게 따지지 않았어요. '이런 촬영이 있다, 시간 괜찮으면 할래?' 하고 제안했을 때 본인 시간이 맞으면 그냥 하는 거죠. 협상에 관한 이야기는 딱히 하지 않았어요. 물론 다른 곳에서는 촬영이 얼마나 치열하게 돌아가는지 잘 알죠. 가령 일부 기업의 경우 몇 컷 찍는데 일주일에서 열흘 씩 굳이 기간을 길게 설정해서 억지로 맞추려는 반면, 김 교수 같은 경우 그냥 '촬영하러 올게' 하면 '언제부터 언제까지 괜찮냐'라고 물어보고, '알겠다'라는 식으로 바로 성사가 되죠. 물론 그렇다고 쉽게 임하는 건 아니고 누구보다 표현이나 결과에 더 신경을 쓰는 사람이지만요. 

 


 

KIM 두 분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막강 크리에이터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세상을 바꾸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모델이든, 풍경이든, 정물이든, 건축이든... 소재를 막론하고 늘 새로운 시선을 만들어 내는 게 정말 인상적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케미를 자랑하시다가 불쑥 떠나신 적이 있다고요?


DO 한창 일을 많이 할 때였고, 당연히 많은 일들이 기대되는 상황이었죠. 당시 클라이언트도 많았어요. 시모스, 한샘, LG 화학 등 여기저기 걸친 업무가 많이 있었는데 훌쩍 떠났어요. 

 

SUN 그때가 2006년 9월, 제가 결혼했을 쯤인데 저희 커플과는 오래 잘 알고 교류하던 사이임에도 결혼식조차 오지 않고 떠났어요. 연락도 되지 않고, 갑자기 떠났다는 소문만 들었으니 많이 궁금했었죠.

 

DO 당시 몽골에 있었어요. 좋은 경험만큼이나 지옥 같았던 순간도 많았는데, 작업을 위해서 떠난 길이었기에 예술적 방향을 찾아 많은 경험을 했어요. 베이스캠프 까지 5~8,000m를 가보기도 했고. 그때는 카메라 없이 계속 무언가를 찾았던 것 같아요. 제 호흡대로 긴 지평선을 따라가면서요. 몽골에 이어 네팔까지. 그러다 보니 예상치 않게 긴 시간이 흘렀죠. 그 당시 제일 중요했던 건 ‘왜 찍어야 되는지’에 대한 의미를 찾는 일이었던 거 같아요. 


SUN 실장님을 찾아서 몽골에 갔었어요. 이전부터 실장님은 호시탐탐 저희를 몽골에 데려가려고 시도하셨었는데 이렇게 가게 됐네요. 몽골에서 만난 실장님은 몽골 사람들과 지역의 술과 음식, 별을 비롯한 몽골의 자연 등에 대한 이야기를 연거푸 쏟아 내셨어요. 듣고 있자니 정말 몽골과 사랑에 빠진 사람 같더라고요. 마치 몽골이 애인인 듯 소개해 주셨거든요. 그렇게 몽골을 속속들이 구경했는데, 특히 별이 아름다운 나라였어요. 아직도 기억에 남는 풍경이에요. 또, 몽골에는 러시아 영향을 받은 건축물들이 많아서 신기했어요. 말이 나와서 말인데, 도 실장님 작품의 특징적인 점이 있다면 대상을 건축적인 면에서 바라본다는 점이에요. 


DO 몽골은 정말 ‘선’으로 가득한 곳이었어요. 산의 윤곽, 길게 뻗은 지평선, 말의 실루엣까지 모든 게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선으로 펼쳐져 있었어요. 제 스타일상 ‘선’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사람에게 몽골의 환경은 정말 매혹적이었죠. 주로 이런 풍경을 두고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의 사막 작품을 떠올리곤 하지만, 저한텐 오직 ‘라인’만이 보였어요. 정지되어 고정된 듯한 선들. 그 선들이 주는 고요함과 긴장감이 너무 좋았어요. 처음에는 사람들이 가보지 않은 곳을 찍는 게 목표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죠. 뭔가 특별하고 새로운 걸 찍겠다는 욕심보다는 그냥 제 시선대로, 제 감각에 따라 담아내는 방식으로 가게 되었어요. 어떤 의미에선 초광각적인 접근 대신 오히려 절제된 구도를 택하게 된 셈이죠.

 

그때 사용했던 장비도 기억에 남아요. 페이지 원 디지털 팩을 썼는데, 꽤 고가의 장비였죠. 그런데 실수로 그걸 망가뜨리는 바람에 콘탁스(Contax) 보디에 그 디지털 팩을 장착해서 사용했는데, 오히려 그 조합이 제 방식에 더 잘 맞더라고요. 그걸로 찍은 사진에서는 정말 ‘선’만 보였어요. 뭐랄까, 형식적이거나 예술사적인 접근이 아닌 오로지 그 선들을 담아내는 맛이 있었달까요. 그래서 인도에서도 같은 방식을 이어갔어요. 가능하면 사람을 피해서 찍었죠. 특히 기차역 같은 곳에선 인파보다 지붕 구조나 철제 라인, 그런 요소들에 더 이끌렸어요. 인도 기차역 특유의 지붕 구조가 유독 아름답게 느껴졌거든요. 프레임 안에 인간의 흔적은 지우고 공간 자체가 가진 구조적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KIM 그렇다면 이번 전시는 그렇게 채워온 지난 세월이 마침내 세상을 만나는 듯한 느낌이시겠어요.


SUN 희정 큐레이터가 전시를 맡기 전까지 도 실장님은 늘 고민하셨어요. ‘뭘 보여주고 싶은가’보다 ‘정말 내가 보고 싶은 건 뭘까’에 깊이 골몰하셨죠. 사람들이 흔히 감탄하는 노을, 새벽, 자연 같은 장면들—그런 걸 다 비워버리고 싶다고 계속 반복하셨어요. 그냥 깨끗하게, 맑게, 좀 텅 빈 상태. 혹은 달리 꾸며지지 않은, 본질만 남은 어떤 것. 그런 걸 바라봤던 것 같아요. 어쩌면 속으로는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이 사회, 끊임없이 목적을 가지고 예쁘게 포장되어 드러내기 급급한 그런 흐름 자체에 조금 지친 상태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예쁜 것’보다 ‘비워진 것’, ‘가공된 장면’보다는 ‘남겨진 잔상’ 같은 데 더 집중하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KIM 저도 작가님의 작업을 처음 마주했을 때 어떤 ‘비워진 세계’를 보는 기분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 비움이 단절이나 공허함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끝나지 않는 연결의 시작처럼 단단한 힘이 느껴졌습니다. 가득 채워 설명하는 것보다 한껏 덜어내고 남긴 여백 속에서 더 많은 감각과 시선이 흐르더군요. 결국 저희의 출발 지점은 다르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느꼈어요. 말로 하기 어려운 그 지점, 비워진 세계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연결하고자 했던 그 감각으로부터 ‘느낌’이 통했달까요. 그럼, 몽골 외에 작업하러 가고 싶은 또 다른 나라도 있으신가요?


DO  한 번쯤 또 가보고 싶은 곳은 시베리아예요.


SUN 쾌적한 환경에서 활동하셔도 좋을 텐데 늘 열악한 환경을 고르시네요. 


DO 많은 이들이 풍경 사진에서 기대하는 건 사실상 일종의 천지창조적 장면이에요. 황금빛 노을,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 드라마틱한 대비 등 마치 절정을 향해 치닫는 교향곡처럼 연출된 클라이맥스를 원하죠. 그렇지만 저는 오히려 그런 ‘극적 순간’을 버리고 말 그대로 ‘자연’을 담고 싶었어요. 모두가 기다리는 순간을 함께 기다리는 대신 다들 피하는 시간대, 사진이 '못 나온다'라고 하는 빛에서 시작해 보고 싶었어요. 가령 정오에 햇살이 가장 강하게 내려 꽂히는 그런 때 말이에요.

 


 

KIM  벌써부터 작가님만의 가득하지만 비워진 풍경이 궁금해지네요. 현재 두 분이 함께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는지요?

 

SUN 남산 책이 이제 곧 발간될 거예요. 2000년 초반 일과 우정을 다층적으로 쌓아오다 실장님은 대자연으로, 저는 학교라는 직장에 집중하여 각자의 길로 떠나 오랜 세월을 보내고 다시 만났어요. 제가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인 어퍼하우스 남산의 『남산책』에 이미지를 만들어줄 사진가가 필요했고 바로 실장님을 떠올렸습니다. 사진가이기 이전에 학생으로, 아들로, 동네 사람으로 동네를 어슬렁거리기도 했고, 늦은 밤을 배회하기도 했으며, 이른 아침에 나서기도 했고, 새로 생긴 건물, 식당, 거리를 몸으로 겪어 그 공간과 한 몸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산책』은 남산순환도로변에 생긴 고급 주거 공간을 매개로 만들어졌지만, 남산의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에 대한 다각적인 해석과 예술들이 어우러진 문화 무크지입니다. 현재 디자인 작업을 마치고 최종 검수 중이며, 올 하반기 출간될 예정이에요. 책이 출간될 즈음 남산을 소재로 전시도 이루어지기를 희망하고 있어요. 


DO 어느 순간, 내가 무언가를 찍는다기보다 빛에 밀어 넣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빛을 쏟아붓다 보면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들이 있거든요. 일부러 만들지 않아도 되는, 생긴 그대로의 형상들. 그 연장선에 남산도 있다고 할 수 있죠. 


KIM  두 분과 함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더운 계절 건강 잘 챙기시고, 저희는 또 다음 전시에서 윤택한 몸과 마음으로 예리한 시선을 나눌 수 있길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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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

Editor / Curator - 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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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15minute Pairing artists #인터뷰 #대담 #사진작가 #도재홍 #김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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