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네비게이션바로가기 컨텐츠바로가기

S매거진

페트라 콜린스
LIFEArt & Culture
모든 소녀를 위한 선언
전시 《페트라 콜린스: fangirl》
2025.09.12
157 1

고백하자면 페트라 콜린스에 대해 잘 몰랐을 때, 'fangirl'이란 전시명만 보고 밝고 발랄한 전시 이미지를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전시 내내 본 것을 나열하자면 이렇습니다. 몽환, 불안정, 왜곡, 그로테스크, 페이소스, 대상화, 불쾌함, 아이러니, 그리고 예찬과 선언.

 

소녀는 자라면서 많은 것들을 마주하며, 많은 것들을 알게 되고 느끼게 됩니다. '많은 것'의 범주는 다양해요. 신체적 변화와 해체, 자아의 확립과 미성숙, 시선으로부터의 탈피 등등. 아직 마음이 단단히 여물지 않았기에 갑작스럽게 다가온 변화에 보다 쉽게 흔들릴 수 있고, 딛고 선 땅이 무르다고 느껴지기 마련이에요. 이에 괜찮다는, 의연하게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을 듣기란 혹은 다른 누군가도 그 말을 건네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회가 그렇고, 시대가 그렇고, 환경이 그러하니까요. 특히 소녀들에겐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손을 내미는 이들은 분명 존재합니다. 똑같이 혼란스러웠고 치열했기에 내밀 수 있었던 손. 바로 페트라 콜린스입니다. 페트라 콜린스는 필름 카메라로 담아낸 개인적이고도 친밀한 사진으로 팬걸을 양산한 캐나다 출신의 사진가이자 아티스트입니다.

 

전시 《페트라 콜린스: fangirl》은 대림미술관에서 무료로 볼 수 있으며, 공식 홈페이지나 네이버 예약에서 사전 예약을 한 뒤 방문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전시 특성상 페트라 콜린스, 그리고 '소녀'에 초점을 맞춰 글을 풀어나가니 감상에 참고 바랍니다.

 

 



《페트라 콜린스: fangirl》 Becoming PETRA

 

페트라 콜린스라는 이름이 왠지 모르게 익숙하게 들린다면 아마 뉴진스, 블랙핑크의 사진을 촬영하고, 유명 브랜드와 컬래버를 한 작가이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명품 브랜드, 셀러브리티와 협업한 '유명 작가 페트라 콜린스'를 주목하기보단 초기 작품부터 현재까지의 히스토리를 조명합니다. 페트라 콜린스가 누구인지, 왜 이런 작품 세계를 구축하게 된 것인지 알 수 있도록요.

 

첫 번째 섹션, <Becoming PETRA>는 페트라의 10대 기억을 끄집어낸, 기억 한 조각을 보는 듯합니다. 그의 시선 속 어떤 이는 페트라를 바라보고, 어떤 이는 카메라가 있는지도 모를 만큼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어요. 정제되지 않고 거칠기도 하지만 그 안엔 고요와 평화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필름 사진이랑 가장 잘 어울리는 파트이기도 했으며, 일상적이지만 몽환적인 페트라의 사진은 수많은 fangirl을 탄생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엔 반전이 있는데요. 2층을 가득 채운 사진 시리즈 중 <Coming of Age> 소개를 꼭 읽어보시길 바라요.

 

그리고 놀라웠던 점. 필름으로 작업한 사진에서도 또렷하게 느껴지는 빛과 그림자, 빛 갈라짐이 단연 돋보입니다. 어쩌면 후보정이 들어갔을 수도 있지만 소녀들을 향하는 뾰족한 빛 갈라짐이, 따뜻한 주황빛이 그들을 어루만지는 듯해 이를 감상하는 소녀들에게 묘한 위로를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직아워의 안나와 캐서린」 / 「매직아워의 안나와 캐서린 2」

 

「안나와 캐서린 (무지개)」



<Selfie> 시리즈. 3층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재미있는 방식으로 전시되어 있으니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세요.

 



《페트라 콜린스: fangirl》 The Gaze

 

3층 <The Gaze>부터는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gaze, 시선이라는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소녀를 왜곡하고 대상화하는 다양한 시선을 비트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불쾌함 또는 해방감(이라고 단언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긴 합니다만)을 느낄 수 있는 파트라 여겼고, 저는 불쾌함에 조금 더 가까웠습니다.

 

사실 소녀를 향한 대중문화의 적나라하고 가감 없는 시선은 <Becoming PETRA> 전시의 시리즈 <The Teenage Gaze>부터 천천히 두각을 드러냅니다. 필름 속 추억 한 조각을 꺼낸 듯한 따뜻함은 애초에 없었다는 듯 차갑기도, 외설스럽기도, 폭력적이기도 하며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이 때문인지 작품을 전시한 방법 자체부터가 달라요. 서서히 변화하는 페트라의 생각, 대상을 향한 시선을 비트는 행위는 <The Gaze>에서 폭발합니다.

 

울고 있는 소녀들의 모습을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감정을 극대화한 <24hr Psycho(24시간 사이코)> 시리즈는 불편하고 불안한 감정을 초래합니다. 가까이서 찍지 않았다면 몰랐을 소녀들의 감정이 빨개진 코끝, 턱끝에 맺힌 눈물, 축축하게 젖은 속눈썹으로 대변됩니다. 네온 불빛만이 빛나는 장막 안은 꼭 소녀의 어두운 마음속 같고요.

 

장막을 걷으면 밝은 불빛 아래 그로테스크한 가면, 누군가에게 잘려 나간 듯한 신체 일부, 벌레, 그리고 페트라의 사진이 마치 세트 일부처럼 놓인 <Baron(바론)> 시리즈가 시작됩니다. 가면 뒤에 숨겨진 소녀의 표정은 확인할 수 없어 더욱 무섭고, 부자연스러운 자세는 몸부림처럼 보입니다. 작가의 얼굴과 신체를 본뜬 마스크와 실리콘 모형의 신체는 여성성을 해체하는 의도처럼 보이고요. 특히 우리의 시선은 소녀들에게 향해 있지만 정작 가면을 쓴 소녀의 시선은 어디를 향해 있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싸늘하고 기묘한 감각을 곤두세우게 만듭니다.



24시간 내내 이들을 psycho로 만드는 건 과연 무엇일까요.

<Baron> 시리즈



그에 반해 <Idol(아이돌)> 시리즈는 기괴한 오브제나 자세 없이 제목처럼 아름답게 꾸며진 아이돌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사진 자체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마냥 예쁘게, 귀엽게 바라볼 수 없는 오라(aura)가 있어요. 그들은 대체로 무표정을 짓고 있고 그들이 하는 몸짓 하나하나가 사람보단 인형에 가깝게 보이거든요. 게다가 무대 뒤, 표정을 잃어버린 듯한 모습은 그 분위기에 정점을 찍습니다. 때문에 페트라 콜린스 작품의 힘을 오히려 여기서 강하게 느꼈어요.

 

이와 반대되는 지점에 있는 것이 배우 알렉사 데미와 협업한 <Fairy Tales(페어리 테일즈)>입니다. 척추를 따라 돋아난 뿔, 뾰족한 귀, 인어의 꼬리, 무엇이든 꿰뚫어버릴 수 있을 듯한 기다란 손톱. 아이돌과는 확연히 다른 공격적이고 파격적인 외관이지만 억압되고 속박된 모습만은 비슷합니다. 외형이 강렬하기에 오히려 알렉사 데미의 무력함이 배가되어 다가오는 공간이에요.

 

<Idol> 시리즈

<Fairy Tales> 시리즈

 



《페트라 콜린스: fangirl》 New Nostalgia

 

노스탤지어라고 해서 과거를 그리워하고 회상할 것이란 고정관념을 깨는 <New Nostalgia>는 패트라 콜린스의 상업 작업물과 함께 그가 꿈꿨던 이상(理想)을 그립니다. <Becoming PETRA>, <The Gaze>가 페트라 콜린스의 과거와 변천이라면 <New Nostalgia>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총망라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실바니안처럼 귀여운 인형이나 작가의 브랜드인 'I'm sorry'를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공간들 사이사이에 그의 번뇌와 고민, 열망이 담긴 작품들, 즉 <Becoming PETRA>와 <The Gaze>의 사진들이 마치 침투하듯이 공존하기 때문이에요.

 

<Becoming PETRA>, <The Gaze>와는 확연히 다른 전시 분위기 때문에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으나 이 전시가 페트라 콜린스의 아카이브라 생각하면 오히려 뉴 노스탤지어는 이 전시의 집약체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공간에선 그녀가 추구하고 원하는 여성성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에선 아이러니함이 남았습니다.

 

촬영 비하인드
이상과 현실의 공존
페트라 콜린스의 상업 작품들. 뉴진스, 블랙핑크 등 다양한 아티스트의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몇몇 작품은 의문을 품게 했으나, 페트라 콜린스는 Be natural,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성장할수록 벗어날 수 없는 여성을 향한 포커스를 뒤틀어 확실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보는 이에 따라서 '뒤틂'의 방법이 달갑고 신선하게 보일 수도, 불편하고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어요.(바로 저처럼요.) 하지만 누군가가 목소리를 내야 했었다면, 그 사람이 바로 페트라 콜린스였던 것입니다.

 

한 인터뷰에서 페트라 콜린스는 예술이 소통하고 살아남는 방법이자 안전한 장소*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는 예술의 팬걸이었고, 자신의 첫 번째 팬걸이었으며,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팬걸이 되었습니다. (감히 거대한) 의미를 부여하자면 이건 페트라 콜린스가 이 세상 소녀들에게 보내는 예찬이자 위로이며, 그의 생각을 예술이란 매개로 확실히 드러냄으로써 페트라 콜린스와 소녀들이, 소녀들과 소녀들이 영향을 주고받는 일종의 연대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전시장을 나섰습니다. 소녀들이, 여성들이,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이 전시를 보면 좋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말이죠.

 

*출처: https://punkt.hu/en/2023/01/15/the-imagination-of-petra-f-collins/

 

페트라 콜린스&알렉사 데미 메시지

 



《페트라 콜린스: fangirl》

-전시 기간: 25.08.29.(금)~12.31.(수)

-운영 시간: 화, 수, 목, 금, 일 11:00~18:00 / 토 11:00~20:00 (매주 월 휴관, 추석 연휴(10/6, 10/7) 휴관)

-위치: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4길 21 대림미술관

-이용 요금: 무료

-홈페이지

 

 




본 콘텐츠는 저작권에 의해 보호됩니다. 복제, 배포, 수정 또는 상업적 이용은 소유자의 허가 없이 금지됩니다.

에디터 M 글 · 사진

끄적이고 있습니다.

태그 #대림미술관 #대림미술관전시 #미술관전시 #페트라콜린스 #fangirl
용산 타건샵 이전글 다다익키라 했습니다. 일단 두들기러 가봅시다. 카메라, 가방, 옷 등 다양한 것들에 시선을 뺏기지만, 그중에서도 '키보드'는 늘 새롭다. 키보드는 작은 변화만으로도 꽤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 존재다. 스위치(축) 하나만 바꿔도 평소와 다른 소리가 나고, 키캡을 바꾸면 타건감이 달라진다. 지겨워지기 쉬운 일상에서 이런 소소한 변화는 생각보다 큰 재미를 주기 때문에, 변덕이 잦거나 쉽게 싫증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기계식 키보드는 꽤 괜찮은 취미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로 나의 위시리스트는 끝없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결국 키보드는 손맛이고 직접 두드려봐야만 알 수 있다는 점이다. 풀리지 않는 문제로 끝없이 불어나는 위시리스트를 청산하기 위해 직접 타건샵을 다녀왔다. 역시나 다양한 모델을 비교하고 나와 맞는 제품을 찾아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결론은 간단하다. 나처럼 망설이는 사람이라면 괜히 머릿속에서만 고민하지 말고, 하루쯤은 키보드에 양보하는 게 낫다. 리뷰 100개 보는 병산서원 다음글 안동이 숨겨둔 보물, 세계문화유산 병산서원 안동 하회마을을 지나 낙동강 줄기를 따라 깊숙이 들어가면,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선 자리에 마치 자연의 풍경인 듯 자리한 병산서원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여름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던 날,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마치 몇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조선 선비들의 공간에 들어서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옛날 선비들도 공부를 위해 이 길을 걸었을까?’ 하는 생각을 품으며 도착한 서원은 기와지붕의 부드러운 곡선과 낙동강 물결이 어우러져 그 자체로 한 폭의 동양화 같은 풍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차량을 주차한 뒤 아기자기한 매점을 지나 약 5분 정도 걸으면 병산서원 입구에 도착합니다. 서원이란 무엇일까요? 오늘날로 비유하면 사립대학과 비슷한 성격의 교육 기관입니다. 공립 학교인 향교가 국가가 세운 교육 시설이라면, 서원은 학문에 뜻을 둔 유학자들이 지역 공동체와 힘을 모아 만든 자율적인 배움터였습니다. 병산서원은 그 대표적인 예로, 학문과 예절을 익히고 인격을 수양하던 공간이었습니다. 안동은
목록
0/200 자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이나 비속어, 비하하는 단어들은 표시가 제한됩니다.
댓글등록

프로모션

최근 본 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