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세계’라는 단어에 어쩐지 로망을 갖고 있습니다. 본래의 의미는 ‘냉전 시대에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았던 비동맹 진영’을 뜻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흔히 가볼 수 없는 나라를 의미하는 것만 같은 어감이 낭만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실제로는 ‘낯선 나라’ 혹은 ‘이국異國’쯤으로 불러야 할) 그 제3세계라는 곳을 찾아 먼지에 뒤덮인 짙은 밤색 재킷, 커다란 배낭에 간소한 옷 몇 벌과 얇은 책 한 권, 낡았지만 튼튼한 워커를 신고 손에는 카메라를 하나 들고 누벼보는 것은 어쩐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그런 제3세계를 여행한다는 꿈은 그 간절한 바람이 무색하게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습니다. 자진해서 ‘사서 고생’을 한다는 것은 역시나 두려운 일입니다. 혼자인 시절부터 그리 주저했으니, 가족을 이룬 지금은 그 로망을 실현한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다만 일의 특성상 가끔은 뜬금없는 곳에서 업무를 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곤 합니다. 물론 출장이 여행과 같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상상 속 제3세계의 이미지와 부합하는 곳으로 떠날 일이 생기면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일전에 ‘키르기스스탄’을 갈 때가 딱 그랬습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과 같은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종종 봐왔기에 나라 이름 자체는 낯설지 않지만, ‘스탄’이란 글자가 들어갔으니 중앙아시아 어디쯤 있을 것이란 막연한 정보 이외에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더 설렜던 것이죠. 꽤 무거운 카메라에 표준 줌 렌즈를 꾸역꾸역 짐 속에 넣어 두었건만, 굳이 Zeiss Otus 85mm f/1.4도 추가로 챙겼다는 것은 그 설렘이 얼마나 컸을지 충분히 짐작이 갈만합니다.

오투스 85mm의 무게는 무려 1,200g이니까요. 대자연이 펼쳐지는 곳을 가면서 하나의 단렌즈를 고를 때 대구경 준망원 렌즈를 골랐다는 것은 그 자연의 구석구석을 집중된 시선으로 담겠다는 강한 의지를 의미합니다. 광각이 아쉽지 않을 리 없을 텐데, 그건 줌렌즈에 맡기더라도 준망원의 영역만은 욕심을 내고 싶었습니다.

승합차에 앉아 꾸벅꾸벅 졸며 끝없이 달려도 계속되는 평원, 고산병을 걱정하며 두통약을 꼭 쥐고 걸었던 깊고 높은 산, 별이 쏟아지는 바다처럼 광활한 호수, 활기가 넘치던 시골 마을의 시장과 같은 풍경은 제3세계를 동경하고, 구애하며 상상하던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꼽아보자면 무엇보다 ‘유목민’들과의 만남입니다. 자연과 어우러져 가축과 함께 떠도는 그들의 생활 자체는 어쩐지 경외심마저 느껴져, 현대 사회에서 ‘유목민(nomad)’이란 단어를 유행처럼 사소하게 쓰는 것에 거부감마저 들기 시작했습니다. 편하게 집에서 업무를 하고 싶다는 의미로 “디지털 노매드가 꿈이야.”란 식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어냈던 지난날 제 모습이 어쩐지 창피하게 느껴졌습니다.

곁에서 고작 며칠을 지켜본 것만으로는 유목민들 삶의 극히 일부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들은 가축을 먹일 풀을 찾아 계절이 향하는 곳을 따라 항상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어쩐지 그 삶의 방식이 세속적인 것을 벗어나 지구라는 별에서 태어나 살다 다시 별로 돌아가는 한 생명체로서 사는 방식처럼 느껴져 낭만적이면서도 숭고하게 느껴졌습니다.
재산으로써 집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의미로 ‘부동산(不動産)’이라는 단어를 쓰는 한국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인지라 유목민들의 삶의 형태는 익숙해질 수 없지만, 그렇기에 더 큰 동경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인간으로서 가장 이상적인 삶의 형태가 유목이라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대자연 속에서 쓸모없는 풀을 활용하여 가축이라는 자원을 생산해 내고, 가축을 통해 식량과 가죽 등을 얻어 의식주를 해결하고, 날씨가 좋은 곳으로 이동하며 사는 것이 유목이라는 게 그 이유입니다. 그렇게 끝없는 여정을 하는 그들의 삶은 낭만적이지만, 그들의 이동식 거주 형태인 유르트(키르기스스탄 전통 이동식 가옥 형태)에서 평생을 지낸다는 것은 고단한 일상은 아닐지 짐짓 겁이 나고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사실 키르기스스탄은 경제적 지표를 빗대어 보면 빈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삶이 곤궁하고, 고단할 것이라 예상한다고 해서 그게 섣부른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TV 속에서 빈국으로 봉사를 가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며 꽤 심각한 표정을 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이야기하던 연예인들의 모습을 계속 봐왔기 때문에 그런 선입견이 생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손톱 끝의 때는 그들이 꽤 거친 노동 환경에 놓여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대자연 속에서 작은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교육과 의료, 그리고 계절노동과 같은 도시의 관념을 갖다 대면 낭만의 이면에는 역시나 고단한 삶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만났던 키르기스스탄 유목민들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고, 그들의 일상은 항상 즐거워 보였습니다.
‘삶은 고단해도 일상은 즐겁구나.’

키르기스스탄 중앙부에는 송쿨이라는 호수가 있습니다. 천산산맥에 둘러싸여 만년설이 녹아 생긴 이 호수는 해발 3,000m에 있는데, 드넓은 초원에는 소와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고, 호수에는 구름이 비치고, 민둥산에는 하늘이 맞닿아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줍니다.
다만 여행(출장) 막바지에 이르러 송쿨에 도착할 때쯤엔 몸 컨디션이 꽤 망가져 예민해지고 말았습니다. 비를 맞은 채로 난방이 안 되는 유르트에서 잠들었던 것이 아무래도 원인 같습니다. 건조한 공기에 목과 폐의 회복력도 더디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3,000m에서 고산병까지 와버리면 난 이번 임무를 모두 마치지 못할지도 몰라.’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1년 중 6월부터 9월까지 약 100일만 방문이 가능하다는 송쿨이기에 베이스캠프로 정한 유르트 시설을 기대하지도 않았건만, 생각보다 너무 훌륭하여 몸을 꽤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걱정했던 고산병도 오지 않았고, 밤에는 밖에서 쏟아지는 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떠나기 전, 개운한 아침을 맞이하여 근처를 한 바퀴 돌아봅니다. 완만한 구릉과 멀리 보이는 산맥에는 만년설이 아침 해를 받아 반짝거리며 빛납니다. 그리고 그 만년설이 녹아 초원 한가운데 작은 개울을 이뤄 호수까지 흘러 들어오는 풍경이 ‘저세상’이라는 곳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풍경에 빠져 있는데, 어디선가 아이 두 명이 막대기를 들고 소를 이끌며 나타납니다. 저와 아이들은 서로의 모습이 궁금한지 주변을 돌며 말없이 히죽거리기만 합니다.

용기를 내 사진 한 장만 찍겠다며, 손에 쥐고 있던 카메라를 가리키고는 손가락 하나를 펴서 내미니 방긋 웃으며 포즈를 취해줍니다. 카메라를 뒤집어 찍은 사진을 보여주니 까르르거리며 웃더니만 다시 소를 끌고 멀리 사라집니다.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어스름했던 호수에는 해가 떠오르고, 얼떨떨한 것이 요정을 만났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저의 이번 제3국에서의 일정은 끝났습니다. 다음에 다시 일이 아니라 사진과 영상을 담기 위해 혼자서 와보겠다며 다짐을 해봅니다만, 여전히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1.2킬로나 되는 거대한 렌즈를 그 여정 속에서 낑낑거리며 들고 다녔는데, 오랜만에 사진을 꺼내어 보며 기억을 떠올려보니 결국 그 아침의 초점은 아이들의 웃음에서 머물러 빛나고 있습니다.

언젠가 사진을 좋은 종이에 인화해서 아이들을 만나러 송쿨 호수를 찾아보리라 다짐합니다. 아직도 키르기스스탄을 떠올리면 호수의 차가움과 산의 건조함, 공기 속 초원에 피어 있던 라벤더 향기가 묻어나는 것만 같습니다. 그곳의 유목민들은 그렇게 또 하루를 보내고 있겠죠?

사용 장비 ㅣ 라이카 SL2-S + 라이카 Vario-Elmarit-SL 24-90mm f/2.8-4.0 ASPH, 자이스 Otus 85mm f/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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