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1호는 엘리베이터로 바뀌었고
소피 칼은 과거의 흔적을 추적하며
자신의 아카이브를 책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글과 함께 구성되는 이 책은
비밀스러운 탐사 사진책 같습니다.
1. 자기소개와 사진 책에 참여하는 역할
저희는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프론트도어(front-door)’를 운영하는 강민정, 민경문입니다. 2017년 스튜디오를 시작한 이후, 글자의 의미와 형태의 관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문화·예술 분야를 비롯해 다양한 기업과 협업하며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습니다.
또한 동시대 창작자들의 작업 속 이야기를 책이라는 매체로 전하고자 스튜디오와 같은 이름의 출판사 ‘프론트도어’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 기획부터 구조, 형태까지 작품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이상적인 방식에 대해 작가와 함께 고민하며, 지금까지 세 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2. 가장 심도 있게 진행했던 북 프로젝트
프론트도어 출판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던 김효연 사진가의 『감각이상 Abnormal Sense』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들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 과거의 아픔이 현재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사진 연작과 작업 과정에서 작가가 수집한 아카이브 자료를 함께 보여주기 위해 책의 구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감각이상’이란 감정선을 온전히 보여주기 위해 사진책과 아카이브 자료집을 분리하여 세트로 구성하였고, 사진책 중간에 작가의 가족사를 바탕으로 장혜령 소설가에게 의뢰한 ‘화자의 하나코’라는 짧은 단편 소설을 수록했습니다. 책의 앞표지와 뒤표지는 1세대와 3세대의 피해자의 뒷모습으로 구성해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는 아픔에 대해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 외에도 책의 판형, 종이의 선택 등 많은 부분에 있어서 ‘감각이상’의 주제를 시각적으로 섬세하게 드러내기 위해 많은 고민을 기울였습니다.

3. 나의 TOP 5 books
1) 『ZEEN』 (Scheltens & Abbenes)



『ZEEN』은 정물 사진가 모리스 셸텐스와 리스베트 아베네스의 작업을 담은 책으로, 암스테르담 Foam 사진 미술관에서 열린 동명의 전시와 함께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유연한 표지의 질감과 박 가공을 통해 그들의 사진이 지닌 특성을 시각적·촉각적으로 표현하며, 독자가 이미지를 탐험하듯 살펴볼 수 있도록 페이지를 구성했습니다. 각 페이지에 표기된 코드는 해당 이미지를 의뢰한 클라이언트를 나타내고, 색인을 통해 추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Sophie Calle & Jean-Paul Demoule: The Elevator Resides in 501』 (Sophie Calle , Jean-Paul Demoule)



소피 칼은 1978년부터 1981년까지 폐허로 방치된 오르세 궁 호텔 501호를 거처로 삼아 5년간 호텔의 여러 공간과 고객 카드, 일기, 남겨진 메모 등 다양한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했고 40여 년이 지나 오르세 미술관 큐레이터 초청으로 다시 그 장소를 찾게 됩니다. 501호는 엘리베이터로 바뀌었고, 소피 칼은 과거의 흔적을 추적하며 자신의 아카이브를 책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글과 함께 구성되는 이 책은 비밀스러운 탐사 사진책 같습니다.
3) 『FUMIO TACHIBANA IMPRINT/IMPRESS IT’S ONLY A PAPER MOON』 (Fumio Tachibana)



작가 후미오 다치바나의 개인전을 담은 도록으로, 단순한 카탈로그를 넘어 작품의 주제 의식과 책의 물성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일반적인 작품집은 발색이 좋은 러프그로스나 도공지 계열의 종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책은 신문 용지와 유사한 갱지를 사용해 겉보기에는 단순한 종이 뭉치처럼 보입니다. 손에 쥐었을 때 느껴지는 가벼움과 달리 책의 뒷면에는 금박 후가공을 적용해 제목인 ‘IMPRINT’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점이 흥미롭습니다.
4) 『A Criminal Investigation』 Watabe Yukichi



와타베 유키치가 사토 타다시 살인 사건 수사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책입니다. 젊은 사진기자 와타베는 수사 현장에 직접 접근하여 거리와 수사관들의 사무실을 따라 이동하며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책장을 넘길수록 그의 사진은 마치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듯한 긴장감과 서사를 그대로 담아 흥미롭습니다. 양장 제본 후 밴딩 처리되어 하나의 수사 노트처럼 보이며, 모든 텍스트는 타자체를 사용해 당시 시대상과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5) 『The Best of Time』 Wu Lie Wei



우 리웨이가 자신 친구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은 사진책입니다. 전통적인 꽃무늬 자수로 이루어진 책 위에, 앞표지와 뒤표지를 가로지르는 책 제목이 검정 시트지로 투박하게 부착되어 있습니다. 종이를 접어 네 개의 구멍을 뚫어 실로 꿰매는 전통적인 제본 방식으로 제본되어 있으며, 사진은 접지되는 면에도 이어지도록 배치되어 한 편의 청춘 영화를 보는 감각을 느끼게 합니다.




4. 가장 아끼는 사진책 한 권과 그 책과 얽힌 스토리
이동근 『아리랑 예술단: In the Spotlight』
2019년에 저희가 디자인한 이동근 사진가의 사진책으로, 7여 년 동안 북한의 춤과 노래를 공연하는 탈북민 공연단 ‘아리랑 예술단’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집입니다. 공연단은 화려한 키치적 의상과 장치로 북한의 춤과 노래를 선보이며 일상과 키치적 리얼리즘을 넘나드는데, 이동근 작가는 분단으로 인해 경계에 선 그들의 디아스포라 적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담히 포착합니다.

5. 그 책 안에서 유독 특별하게 다가온 페이지가 있다면
빈 무대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사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생계를 위해 고향의 춤을 추는 탈북민들에게 그 무대는 벗어날 수 없는 또 다른 고향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이미지에서 착안해 스포트라이트를 북한의 인공기를 연상시키는 심벌로 디자인했고, 그것이 지금의 표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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