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MA CAMERA REVIEW
SIGMA BF

긴 기다림의 끝, 시그마에서 아주 재미있는 카메라가 출시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고대한 포베온 센서는 아니지만 UI - 사용자 경험의 측면에서는 포베온 이상으로 센세이션한 카메라일지 모른다.
SIGMA BF의 풀네임은 beautiful foolishness, 직역하면 아름다운 어리석음을 의미한다. SIGMA의 대표 야마키 카즈토는 여러 언론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하여 이 카메라의 이름과 콘셉트를 일본의 다도 문화로부터 영감을 받아 고안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오카쿠라 카쿠조의 책 『The Book of Tea』의 도입에서 저자는 "Let us dream of evanescence, and linger in the beautiful foolishness of things"라며 일본의 미학적 정서 저변에 깔린 순간의 아름다움과 불완전함을 강조하였는데, 어쩌면 일본 문화 전반에 놓여있는 순간의 가치는 곧 사진이 지닌 가치가 아니었나 싶다.
순간의 가치 - 불완전하기에 아름다운 것 - 을 형상화하는 것이 SIGMA BF의 제작 의도였다면, 그리고 그러한 철학이 사용자의 사진 생활에도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의 카메라를 설계했다면. SIGMA BF의 하드웨어적 매커니즘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SIGMA BF 하드웨어는 불완전함과 아름다움을 공유한다. 이미지 프레임의 가장 고유한 형태를 연상시키는 유니 바디 - 결합부나 나사가 없으며 하나의 알루미늄 바디를 가공하여 제작하였다. - 직사각형이 아닌 비대칭 사다리꼴의 형태, 뷰파인더를 비롯한 각종 기능 버튼과 메모리/배터리 슬롯 삭제를 통하여 본질만 남기고 모든 것을 잘라낸 듯한 결백함. SIGMA BF는 그동안 최신 기술의 홍수에 떠밀려 '나만의 사진'을 잃어가던 사람들이 덜어냄을 통해 이미지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말하지 않은 것을 남겨둠으로써 감상자는 아이디어를 완성할 기회를 얻게 되고,
그렇게 위대한 걸작은 관객의 관심을 사로잡아 마치 관객이 실제로 그 일부가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오카쿠라 카쿠조-

SIGMA BF는 렌즈 교환식 풀프레임 미러리스 디지털 카메라로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포베온 센서 대신 백사이드 일루미네이티드(BSI: Backside-illuminated) CMOS 센서를 탑재하였다. SIGMA BF 출시에 맞춰 새롭게 개발된 센서로, 기존 CMOS 센서에 비해 노이즈 억제력이 좋고 저조도 상황에 대응력이 좋다고 한다. 유효 화소 수는 2460만 픽셀, 총 화소 수는 2530만 픽셀이다. 6K 30p, 4K 30p, FHD 120p를 지원하며 L-log와 H265 인코딩이 가능하다. 시그마 fp와 동일하게 전자식 셔터만 지원하나 안티 플리커 기능이 대폭 향상되었다. 라이카, 파나소닉과 같은 L 마운트를 사용한다. 카메라 무게는 446g으로 컴팩트해보이는 작은 외관에 비하면 오히려 살짝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함께 사용한 렌즈는 시그마의 I Series 50mm F2 Contemporary 제품으로, SIGMA BF의 출시와 함께 실버 컬러 렌즈가 출시되었다. 특별하게도 해당 렌즈의 박스 패키징은 기존의 흰색 시그마 박스가 아닌 새로운 컬러와 재질로 새롭게 디자인 되었는데, 이는 일본 전통 종이인 와시를 연상시킨다고 한다.
[해당 리뷰는 어떠한 관점에서 작성되었는가]
- 시그마 BF가 비움을 통해 얻은 것
- 시그마 BF가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
- 시그마 BF와 함께하는 사진 생활
SIGMA BF
SD카드 슬롯이 없는 카메라
충전 중 오른쪽 모니터를 통해 배터리 잔량을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 이런 망측한 카메라가 있나!
뷰파인더가 없는 제품들은 요즘 워낙 흔하니 그렇다고 치자. 처음에는 배터리가 너무 작아서 분리되지 않는 내장형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다행히 분리가 잘 된다. 삼각대 나사 구멍이 붙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했다. 그런데 메모리 카드를 넣을 SD 슬롯이 없다. 마이크나 USB를 연결할 단자도 없다. 오직 C-type 연결 단자 딱 하나만 있다. 카메라 스트랩을 연결할 수 있는 고리는 오른쪽밖에 없어서 넥스트랩은 포기, 손목 스트랩을 사용해야 한다. 몇 개 없는 버튼은 모두 똑같이 생겨서 카메라를 어떻게 켜야 할지도 모르겠다. 카메라 조작법부터 공부할 생각을 하니 막막해서 카메라를 거실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올려둔 채로 며칠이 지났다.
어느 날 동생이 집에 놀러 왔다. 소파에 앉아 SIGMA BF(이하 시그마 BF)를 만지작거리는데 나의 다른 카메라들보다 훨씬 다루기 쉽다고 한다. 시커먼 카메라(Sony a7m4 혹은 X-T5)는 버튼과 다이얼이 뒤섞여 있어서 조작이 부담스러운데 시그마 BF는 다이얼만 돌리면 해결되니까 어려울 것이 없다고 한다. 동생은 사진을 모른다. 하여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도, SD 카드가 무엇인지도 알 턱이 없다. 카메라 파지법도 당연히 모른다. 그런데 애초에 그 파지법이라는 거, 과거 DSLR을 기준으로 만든 것 아니었나? 만약 시대가 발전하고 신기술이 나와 카메라의 미래가 달라진다면. 우리는 과연 오늘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얼마나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처음 시그마 BF가 어렵고, 이해할 수 없다고 느꼈던 이유는 나에게 남아있는 과거 때문이었다.

일상의 범주 안에서 시그마 BF는 기존의 카메라보다 월등하게 편리하다. 별도의 SD 카드 없이 카메라 내장 메모리에 파일 저장, USB 10Gbps(USB 3.2)와 호환되기 때문에 생각보다 빠르게 이미지 전송이 이루어진다. 컴퓨터와 USB로 연결되어 있는 동안은 배터리 충전도 동시에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시그마 BF를 사용했던 한 달 동안 배터리를 한 번도 분리해서 충전하지 않았다. 태블릿이나 스마트폰과도 USB-C 연결이 가능하며 카메라 저장 공간에 있는 이미지들을 바로 불러와 사용할 수 있다. JPG 파일을 포함하여 DNG 파일 원본도 전송 가능하기 때문에 촬영 직후 아이패드를 통한 이미지 보정이 가능해졌다. 그동안 SD 카드라는 저장 매체 때문에 카메라로 촬영한 이미지들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는데 시그마 BF는 그 중간 과정을 모두 삭제하고 카메라의 확장성을 PC부터 모바일까지 확대시켰다.
아래는 카메라 UI 인터페이스의 구성. 오른쪽의 다이얼과 중앙 버튼을 이용하여 조작한다. 시그마 BF의 모니터는 TFT 컬러 LCD로 정전 용량 방식의 터치패널이나 터치 기능은 초점 선택을 할 때에만 활용 가능, 일반 메뉴 조작은 다이얼과 버튼만 이용할 수 있다. 예전 시그마 fp 역시 LCD 모니터가 무척 선명한 편이었기에 BF 모니터의 준수한 해상력은 어느 정도 예정된 스펙이었다.
동영상 모드
단일 촬영 모드
설정 메뉴
단순화의 직관성
SD 카드를 거치지 않고 USB-C를 이용하여 핸드폰, 태블릿으로 바로 촬영본을 전송할 수 있는 시그마 BF의 특성은 일상을 기록하는 크리에이터들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설득력을 지닐 것이다. 시그마 BF 내장 메모리는 230GB로 256GB SD카드 한 장과 비슷한 크기다. 각자의 촬영 스타일과 주제에 따라서 230GB는 클 수도, 작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영상은 거의 촬영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아주 충분했다.
영상 촬영 시 시그마 BF는 전자식 손떨림 보정(EIS)을 지원한다. 전자식 손떨림 보정이기에 화면이 다소 크롭되어 보이는 단점이 있긴 하나 짐벌이나 삼각대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반드시 필요한 기능이다. 이 외에도 촬영 단계에서 원하는 컬러 모드를 선택하면 별도의 보정 없이 영상에 톤을 입힐 수 있다. 시그마의 컬러 모드는 총 13가지가 있다.
SIGMA BF
즐거운 사진 생활
예전 시그마 fp를 사용할 때에도 나는 독특한 화면비와 컬러모드를 즐겨 사용하곤 했다. 시그마 카메라에는 장소와 환경, 소재에 따라 어울리는 화면비, 컬러모드가 존재했고 나는 그러한 선택 사항들을 이용하여 촬영 후 집에 돌아와 보정 단계에서 많은 참고를 했는데, 덕분에 시그마 fp라는 카메라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시그마 BF의 화면비는 1:1, 6x7, 4:3, A size, 3:2, 16:9, 21:9로 기본형인 3:2 외에 6가지가 더 준비되어 있다. JPG의 경우 해당 화면비로 바로 저장되며, RAW 파일은 컴퓨터로 옮겨서 열어보면 설정한 비율에 맞춰 이미지가 크롭핑 되어 있다. 이때 후보정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추가적인 톤 보정 및 이미지 비율 조정이 가능하다. 컬러모드는 총 13가지로 스탠다드, 리치, 캄, 파우더 블루, 웜 골드, 틸 앤 오랜지, 클래식 블루, 클래식 옐로우, 포레스트 그린, 선 셋 레드, 709, 시네마틱, 흑백 중에서 원하는 톤을 선택할 수 있다.
아래는 시그마의 컬러모드와 화면비를 활용하여 편집한 사진들. 각각의 이미지 하단에 사용한 컬러모드의 이름과 / 새롭게 수정한 화면 비율을 적어두었다.
warm gold, 화면비 5x7
forest green
forest green
monochrome

시그마 BF와 fp, fp L이 탑재한 13가지 컬러 프리셋은 JPG 촬영뿐 아니라 DNG(RAW) 파일에서도 자유롭게 편집 가능하다. 때문에 사용자는 상황에 맞춰 현장에서 바로 컬러 프리셋을 적용한 JPG 이미지를 촬영하여 추가 보정 작업을 생략할 수도 있거나, 후보정 단계에서 보다 다양한 프리셋을 세부적으로 조절함으로써 촬영 당시의 의도를 가장 적합하게 표현해 낼 수도 있다.
powder blue, 4x3
Standard
classic blue
classic yellow, 5x7
개인적으로는 가장 마음에 들었던 컬러 모드, rich를 이용한 사진들. 전반적으로 색감이 풍성하게 나오며 때로는 다소 과하거나 볼드하게 보일 때가 있으나 그러한 특징마저 매력적이다.
F2.5, rich, 16x9
200% 확대한 사진. F2.5로 조리개를 밝게 개방하였다. 나비의 더듬이를 따라 마젠타 빛의 색수차가 미세하게 관찰된다. 이번 포스팅은 시그마 BF 리뷰를 주제로 하고 있어 렌즈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를 하지 못했으므로 참고할 수 있는 50mm 렌즈 리뷰 포스팅을 삽입하도록 하겠다.
▷SIGMA 50mm F2 단렌즈 사용기
rich, 16x9
rich, 16x9
SIGMA BF
기타 샘플 이미지
시그마 BF는 색 재현력이 상당히 정확하고 풍부한 편이다. 같은 초록색이어도 수종에 따라, 빛의 양에 따라 모두 다르게 표현되었으며 그 정도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다. 선명하지만 과하지 않으며 전반적으로 자연스러운 느낌은 시그마 렌즈를 사용하는 동안 느꼈던 것과 유사했다. 만약 지인들에게 이 카메라를 추천한다면 그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색'일 것 같다.



시그마 BF 전용 배터리는 하단 배터리 커버를 개폐하여 교환이 가능하다. 시그마 BF의 배터리 성능은 6K 최고 화질 설정 후 동영상 촬영 시 약 60분 동안 연속 촬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1박 2일 동안 여행을 다니며 사용해 보니 걷거나 주변을 둘러보는 등 카메라를 대기 상태로 두는 시간이 길었고 자동으로 꺼진 카메라를 재부팅하는 경우 또한 잦다 보니 배터리가 쭉쭉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배터리를 나름 아껴서 사용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저녁이 되자 20%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만약 다른 카메라였다면 1박 2일 내내 전혀 충전을 고민하지 않았을 텐데 시그마 BF 배터리 성능은 체감상 그의 절반 정도밖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사진을 찍다 보면 인터벌 촬영을 위해 몇 시간 동안 전원을 켜두어야 할 수도 있고, 풍경 촬영을 위해 전력 공급이 자유롭지 않은 벽지로 며칠간 떠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내가 생각해도 시그마 BF를 쓰기엔 다소 무리일 듯싶다. 장시간 촬영 시에는 예비 배터리를 반드시 휴대하는 것을 추천한다.
깔끔하고 단정한 카메라의 생김새는 사용하는 내내 만족감을 주었지만, LCD 패널이 일체의 회전이나 틸팅 기능이 되지 않는 고정형이라 상당히 불편했다. 밝은 주간에 야외에서 사진을 찍는 경우 빛반사로 인해 화면을 인지하기 어려웠고 앵글이나 구도에 따라 LCD 화면이 시선에 닿지 않기도 했다. 그럴 때에는 대략 짐작하여 비슷하게 두어 장을 찍어둔 다음 프리뷰로 확인하는 식이었는데, 이런 불필요한 행동들이 번거롭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시그마 BF는 모든 것을 덜어낸 미니멀한 풀프레임 미러리스이다. 작고 가볍지만 배터리 이슈가 있기 때문에 장거리 여행보다는 당일치기 여행이 어울릴 것이다. 색 표현이 섬세하기 때문에 이 카메라와 함께 여행을 다닌다면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진과 영상 콘텐츠를 모두 오가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한다. 가장 추천하고 싶은 쓰임은 가벼운 일상의 기록이다. 현대인의 삶 - 평일에는 도시, 주말에는 근교로 이루어진 - 에 잘 어울리는 카메라이다. 또한 기존 풀프레임 미러리스가 제공했던 수많은 편의 기능으로 인해 오히려 창의성을 빼앗긴 것 같았던 사람들, 조작법이 어려워 섣불리 사진 찍기를 시작하기 망설였던 사람들에게도 추천한다.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성은 비어있는 영역이 많을수록 활발해지기 마련이다.
인간은 운명을 거스를 수 없으며,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오늘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인생은 공허하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지점을 설계할 수 있다면 비정형적인 아름다움이란 존재할 수 있을까. 순간의 아름다움은 어쩌면 영원히 미완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에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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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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