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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d B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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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4 컬러로그] Hard BW
흑백은 지루하지 않다.
202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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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4 컬러로그]
GR4(GR IV) 컬러로그 시리즈는 GR 카메라의 대표 화상(畫像)인 포지티브, 네거티브를 비롯해 흑백 감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하드 모노, 새로 추가된 시네마 옐로와 시네마 그린이 일상을 어떤 모습으로 담아내는지 보여드립니다. 기술적인 면보다는 룩이 주는 감성과 장소 이야기, 찍는 과정을 보여드리기 위함이니 사진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GR4 컬러로그 #1 Hard BW(하드 모노)

 

나에게 컬러 사진은 현재 진행형이라면 흑백 사진은 과거 완료형이다. 사진을 찍는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 모든 것은 단 0.1초 사이에 과거가 되지만 유독 흑백 사진은 이미 시간이 멈춘 듯하고 사진을 바라보는 나만이 움직이고 있는 감각을 내리꽂는다. 그 감각에 한번 빠지고 나면 흑백 사진을 왜 찍는지, 어떤 매력이 있는지 깨닫게 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퍼져 단단히 각인된다.

 

그런 의미에서 첫 번째로 고른 것은 리코 GR4의 흑백 필름 모드 중 Hard BW(이하 하드 모노). 대비가 하이 콘트라스트 흑백만큼 너무 강하지도, 소프트 모노처럼 옅지도 않아 무난히 그림을 담아내지만, 결코 지루하진 않다.

 

하드 모노와 잘 어울리는 장소를 탐색하다 아래 두 곳을 다녀왔다. 한 곳은 서서히 시간이 멈춰 끝에 다다른 곳이었고, 다른 한 곳은 셔터를 누르는 찰나가 과거가 되는 장소였다.

 

*사진은 모두 무보정이며 노출값만 조정해 촬영했습니다.

 



📍공항시장

 

9호선 공항시장역 옆에는 자그마한 공항시장이 있었다. 왜 과거형이냐 하면 재개발 지역이 되면서 사람들이 떠났기 때문이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침묵으로 메워진 골목 일대는 조용했다. 건물과 간판과 문은 녹이 슬고, 찢기고, 깨지고, 부서져 있었지만 동시에 수십 년 동안 쌓이고 쌓인 사람들의 흔적이 가득하기도 했다. 얼마 남지 않은 상가의 자그마한 소리를 배경음 삼아 천천히 시간 속으로 들어갔다.

 

골목은 어지러웠고 너저분했다. 인적이 드문 좁은 골목길에선 심심치 않게 접근 금지 테이프가 보였다. 공항시장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곳곳에서 발견된 생명이었다. 녹이 슨 대문 사이로 보이는 꽃, 지붕 위에서 핀 꽃, 깨진 창문에도 아랑곳없이 줄기를 뻗은 덩굴 식물이 고요가 내려앉은 공항시장의 유일한 생기였다.

 

앞서 말했다시피 대비가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는 적정선에 머물러 있어 밋밋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촬영하는 내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것과 확연히 다른 흑백의 화면이 매력적이라 지루할 틈이 없었다. 어쩌면 나는 두 개의 세상을 동시에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왼) 하드 모노 (오) 포지티브 

접근 금지 테이프에 널어둔 고무장갑과 수건

 

건물과 건물 틈새, 골목길로 추정되는 곳과 길가 군데군데 분해되지 못한 쓰레기와 질긴 생명력으로 자라난 풀들.

공항시장의 부흥을 조금이나마 유추할 수 있는 표어와 도로명 표지판.

깨진 유리창 너머로 사라져가는 생활의 흔적.

아직 남아 있는 이들의 유머.

 

(왼) 하드 모노 (오) 포지티브

 



공항시장은 굳게 잠긴 자물쇠와 같은 곳이었고, 한편으론 손길 없이도 피어난 꽃과 자라난 풀이 있는 오묘한 곳이었다. 그 오묘함이 하드 모노의 부드러운 흑백 톤으로 담으니 조금 정제되는 듯했다. 장소와 하드 모노가 만든 이미지가 잘 맞아떨어지기도 했지만, 하이 콘트라스트 흑백의 강렬함은 깎아내고, 소프트 모노의 연함에 힘을 준 그 표현력이 이 사진들을 더 돋보이게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GR4로 찍는 하드 모노는 어렵지 않다. 노출값만 적절히 조정해도 피사체와 배경의 어떤 부분이 어둡고 밝은지, 색상은 진한지 옅은지를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사진에 잘 반영된다. 흑백 사진이 어렵다거나 혹은 흑백 사진이 밋밋하다고 느낀 적이 있다면 하드 모노를 한번 써보자. 어렵지 않게 당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이스 K 서울

 

연회색 톤의 반듯한 건물이 하드 모노와 잘 어울릴 것이란 예감이 들어 선택한 장소였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높은 빌딩 사이에 폭 둘러싸인 이곳을 발견한 순간, 사람들이 스페이스 K를 언급할 때 그토록 빛과 그림자를 강조했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나무 그림자와 때마침 행인의 그림자가 물감을 찍은 듯 벽을 장식했다. 바로 지금이다! 다행히 카메라를 켜둔 덕에 연회색 벽이 조금 더 다채로워졌다.



사진 스폿으로 유명한 옥상 정원 가는 길



옥상정원으로 가는 길목을 촬영할 때 가장 많이 느꼈던 점은 하드 모노로 찍길 잘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길목은 연회색 건물 특유의 차가움과 딱딱함이 흐르는 곳이었고, 빛 한 줄기가 유일하게 유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자 하드 모노는 높은 대비로 이 길목을 멋스럽게, 흑백만이 줄 수 있는 감성으로 차가움을 상쇄시켰다. 무엇보다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의 대비가 확실한데, 빛과 만나니 더 극적인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고 찍고자 하는 대상에 깊이 집중할 수 있었다.

 

빛과 그림자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어떻게 셔터를 누르게 만드는 욕구를 부추기는지, 경계와 경계가 얼마나 신비한 선인지 알고 싶다면 화창한 날 스페이스 K로 당장 달려가길. 그곳에서 컬러로 찍기 전에 하드 모노로 사진을 찍어보길 권한다. 컬러가 다양성이라면 흑백은 순수함이므로. 순수한 빛, 그림자가 만든 비정형의 그림은 날카롭지 않고 포근하게 찰나를 만든다.



스페이스 K 옥상정원
반사된 물결
스페이스 K 옥상 정원에서 바라본 빌딩



시간이 멈춘 곳, 시간이 흘러가는 곳은 각각의 매력이 있는 출사지였다. 만약 하드 모노로 촬영하고 싶은데 장소가 고민인 GR 카메라 유저가 있다면 개인 취향으로 스페이스 K를 추천한다. 조건을 하나 더 붙이자면 맑고 해가 짱짱하게 뜬 날로 말이다. 하드 모노로 촬영을 끝냈다면 덤으로 컬러로 찍어봐도 좋을 것 같다.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건물 벽, 독특한 건축 형태가 흑백이든, 컬러든 잘 어울려 다음에는 네거티브 모드로 찍고 싶다고 생각했다.

 

평소에는 흑백 사진을 찍을 일이 없었기에 하드 모노를 주제로 한 이번 출사가 꽤 기억에 남는다. 대개 흑백은 아날로그를 표현할 때 사용되거나 '그냥' 흑백 사진으로 보지만 그 너머의 것을 본 듯하다.

 

그것은 따뜻함과 깔끔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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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M 글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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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GR4 #GRIV #GR #RICOH #리코 #하드모노 #hardb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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