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갑자기 추워지는 듯하더니 한낮은 포근하고 청량한 가을 공기가 부유합니다. 아직은 가을이구나 싶어 마음을 놓으면 아침, 밤마다 내려가는 기온에 이러다 가을을 즐기기도 전에 눈이 내리겠다 싶은 걱정이 들기도 했는데요. 누군가는 완연한 가을, 다른 누군가는 가을의 끝자락으로 느끼겠지만 이번에 원주와 용인을 다녀온바, 다행히도 우리 가을은 아직 영업 중이었습니다.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 1495-1
반계리 은행나무. 높이는 약 33m
첫인상은 웅장하다, 압도된다, 비현실적이다.
멀리서부터 지붕보다 높게 우뚝 솟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보였는데 그때 아, 이 나무는 심상치 않겠다는 감이 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반계리 은행나무는 국내 최고 수령으로 알려져 있어요. 대략 800년으로 추정되고 있으니 무려 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있는, 살아있는 국사 및 근현대사입니다.

약 16m에 달하는 은행나무 밑동

평일이었음에도 절정으로 달려가는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반계리를 찾았습니다. 사람들은 휴대폰과 카메라를 들고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었고, 무엇보다 새로운 냄새를 맡으러 온 반려견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서 그곳 자체가 힐링이었어요.
인파를 뚫고 마침내 눈앞에 펼쳐진 건, 사람 열댓 명 정도가 붙어야 다 감싸질 듯한 14m에 이르는 두꺼운 밑동, 그리고 그 위로 수천, 어쩌면 수만 개일 수도 있는 노란 잎들이었습니다. 살면서 나무에 압도될 수 있다는 것을 반계리 은행나무가 처음 알려주었고, 비현실적이어서 옛날이었으면 이 나무를 수호수로 삼았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입구부터 천천히 나무 주변을 한 바퀴 도는 시간만 해도 10여 분이 걸릴 정도니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대충 감이 오실 거예요. 10여 분 동안 한 바퀴를 돌았는데도 여전히 처음 봤을 때 그 신기하고 놀랍단 생각이 떠나질 않을 정도로요. 걷다 보면 여기저기서 보기만 해도 좋다는 감탄도 들려오는데, 십분 동감할 만큼 이 나무가 주는 기운이 남달랐어요.



아무래도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고점인 시기라 사진을 찍을 때 주변 사람들이 같이 찍히는 일이 빈번한데요. 조금 거리를 두고 망원렌즈로 촬영해 보니 비교적 나무에 집중해서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또 은행나무만 봐도 좋지만 그 뒤로 알록달록 자태를 뽐내는 산과 은행나무가 잘 어우러지니 눈으로 그 광경을 찍어보세요.
마지막으로 반계리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비행 허가가 필요한 곳이니 관할 기관에 사전 비행 승인을 받으면 드론을 날려봐도 좋을 듯합니다. 실제로 드론을 사용하는 분도 있었는데 우리 눈만으로는 이 나무를 모두 담기엔 역부족일 때, 은행나무의 꼭대기가 궁금할 때 눈을 대신해 주기에 딱 이거든요. 이날 호버에어(HoverAir)를 들고 갈 것을.. 아쉬움이 남네요.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퍼스 명수당
-경기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외대로 81
명수당
메타세쿼이아

학교 정문부터 아주 빨갛게 물이 든 단풍나무와 바람에 나부껴 노란 눈처럼 떨어지는 은행잎이 시선을 사로잡아 완연한 가을이 맞긴 하구나 싶었는데, 명수당에 발을 들이자 가을의 모든 것이 여기에 있었어요. 단풍나무는 물론, 낙엽수인 메타세쿼이아가 초록빛, 노란빛, 갈색빛 등 다양한 색채를 입은 채 곧게 서 있있어요. 그리고 그 모습이 저수지에 반영돼 잔잔하게 일렁이는 장면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뿐만 아니라 저수지에 반영된 장면을 꼭 담아보는 걸 추천.
메타세쿼이아 길




이 반영이 첫 번째 포인트라면 두 번째 포인트는 메타세쿼이아 길입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식재된 메타세쿼이아는 멀리서 봐도 멋지지만 그 품으로 들어가면 아늑하고 선선해요. 커다란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가벼운 산책을 하기에 좋고 가끔 나무 사이사이로 빛이 스며드는 광경도 예술입니다. 메타세쿼이아를 한번에 담을 수 있는 명수당 초반 지점과 메타세쿼이아 길에 사람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건 다 이유가 있었던 거죠.
그리고 타이밍이 좋으면 저수지 표면을 따라 반짝이는 윤슬을 볼 수 있어요. 윤슬은 매번 봐도 질리지 않는 현상이라 더 아름다운 게 아닐지 생각해요. 해와 물이 있어야만 탄생할 수 있는 자연의 산물이니까요.



정문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를 처음 맞이했던 단풍과 은행이 다시 보이기 시작합니다. 최고 수령을 자랑하는 은행나무부터 붉은 단풍에 메타세쿼이아까지 하루 동안 가을에 푹 젖어있었더니 아직 가을이 가지 않았음을 실감했어요. 가을이 조금만 더 머무르다 갔으면 좋겠네요.
참고로 한국외대 내로 행락객 차량 진입이 금지되어 있어 근처 주차장을 찾아 차를 댄 뒤, 정문에서 약 10~15분 정도를 걸어야 명수당에 갈 수 있습니다.(정문 밖에도 주차할 공간이 마땅치 않긴 합니다.) 출발지 근처에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광역 버스가 있다면 버스를 타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으니 어떤 방법으로 가야 좋은지 사전에 찾아보고 방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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