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을 나가려고 장비를 챙길 때마다 항상 드는 고민이 있습니다. 렌즈를 한 개만 챙길 것이냐, 여러 개 챙길 것이냐. 혹은, 단렌즈냐, 줌렌즈냐. 사진이라는 취미 생활을 끝내지 않는 한 절대로 쉽게 결론 내릴 수 없을 겁니다. 특히 여행을 앞두고 장비를 챙길 땐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그만큼 특별한 순간을 멋지게 담아내고 싶기 때문에 끝나지 않는 고민을 하게 되죠.
저도 그 고민을 하는 사람 중 한 명인데요. 이런 마음속 고민을 해결해 줄 구원자가 나타났습니다. 시그마가 20-200mm F3.5-6.3 DG | C 렌즈를 들고 말입니다.
시그마에서 미러리스로의 대전환 이후 우리가 말하는 소위 '슈퍼 줌렌즈'. 즉, 광각부터 초망원을 커버하는 8~10배 줌 렌즈에 대해서 꽤나 인색했던 게 사실입니다. 올해 초에 나왔던 슈퍼 줌렌즈인 16-300mm F3.5-6.7 DC OS의 경우에는 크롭팩터 전용 렌즈이기 때문에 풀프레임 유저들에게는 그림의 떡같은 존재였는데 이렇게 출시가 됐습니다.
단호한 시그마의 결정, 슈퍼 줌렌즈 프로젝트

아주 심플합니다. 포커스 레버와 락 레버.
어두운 실내에서 200mm로 촬영했지만 흔들리지 않습니다.
렌즈는 언뜻 보기에는 APS-C 전용 렌즈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작은 크기에 심플 합니다. 줌 링이 렌즈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서 어떤 상황에서도 조작이 쉽고, 렌즈 측면 버튼도 AF/MF 포커스 설정 레버와 렌즈가 흘러내리는 것을 막아줄 LOCK 레버가 끝입니다. 시그마는 철저하게 소형, 경량 설계를 바탕으로 언제 어디서든 빠르고 간편하게 다양한 촬영이 가능한 렌즈로 기획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렇기에 목적에 맞지 않은 기능과 설계 등은 과감하게 빼버렸습니다. 단호한 의지가 엿보이죠.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바로 손 떨림 보정 장치인 OS를 제외했다는 점입니다. 이런 결정에 대해서 많은 유저 분들이 아쉬워할 걸 알지만, 시그마는 OS를 카메라 센서에 적용된 손떨림 보정 성능에 맡기고 다른 사용성이나 화질을 위한 구조 개선에 더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OS가 빠졌지만 없어서 200mm를 촬영하기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고요.
고화소 센서 특성상 흔들림이 발생하면 초점이 맞지 않거나 블러 현상 같은 게 잘 느껴지는데 최근 카메라 바디에 적용된 IBIS가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준 덕에 실내에서 셔터 스피드가 나오지 않는 저조도의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도 촬영이 가능했습니다. 고감도로 촬영 했지만 200mm 초점거리에서 1/125초 ~ 1/160초에서도 흔들리지 않고도 디테일하게 표현합니다.
그리고 무게 감량을 위해서 외관의 재질도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을 대거 사용하고, 내부 구조도 단순하게 만들고, 보다 고굴절 유리 소재를 사용해서 렌즈의 움직임까지 고려한 덕에 10배 줌이 되는 슈퍼 줌렌즈 중에서는 550g (소니 E마운트는 540g)으로 가장 가벼운 무게를 보여줍니다. 이 말을 시그마 렌즈에서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경박단소'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슈퍼 줌 렌즈 최초의 20mm 초광각


20mm로 촬영했습니다. 가운데를 잘 봐주세요.
가운데 있는 나무를 200mm 초점거리로 촬영했는데 이렇게 보면 정말 10배 줌의 위엄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슈퍼 줌렌즈에서 중요한 부분이라면 무게와 크기도 있지만, 최소 초점 거리라고 생각합니다. 멋진 건물의 외관이나 내부 같은 곳들을 다니면 '아 내 렌즈가 조금만 더 광각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데 평소에는 별로 신경도 안쓰던 부분이데 말입니다. 그래서 저처럼 여행을 다닐 때 표준 줌렌즈 하나로만 다니셨던 분들은 더더욱 그런 순간이 있을 겁니다.
그런 순간에 아쉽지 않게끔 시그마에서 슈퍼 줌 렌즈 중에서는 최초로 20mm 라는 최소 초점 거리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제서야 정말 슈퍼 줌렌즈를 쓰는 느낌이 듭니다. 넓은 광각으로 촬영했다가 200mm라는 초망원까지 렌즈 하나로 촬영할 수 있다는 점은 쾌감이 느껴질 정도로 편합니다. 그동안 이런 렌즈가 왜 나오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촬영해보며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렌즈 외부에 20mm, 28mm35mm, 50mm, 85mm, 135mm, 200mm 까지 다 단 렌즈에서 많이 쓰이는 초점 거리라서 매크로나 로우앵글 같은 특정 상황에서 빠르게 세팅할 수 있었습니다.
슈퍼 줌렌즈 하나로 폭넓은 세미 매크로까지
28mm 에서의 최단 촬영거리는 0.165m 입니다.



슈퍼 줌 렌즈가 단순히 광각부터 망원까지만 커버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슈퍼 줌 렌즈는 구조 특성상 세미 매크로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데 이번 시그마의 20-200mm F3.5-6.3 DG | C에서는 1:2 배율로 촬영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어느 특정 초점거리에서만 활성화 되는 게 아닌 28mm ~ 85mm까지 1:2 배율로 촬영이 가능해서 보다 넓은 활용폭을 자랑합니다.
매크로 촬영을 하면서도 뒷배경의 풍경을 담아내고 싶다면 28mm. 보다 집중도 있는 모습을 담아내고 싶다면 85mm로 촬영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촬영하는 사람의 의도를 잘 표현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화질

이런 편한 렌즈라도 화질은 빼놓을 수 없습니다. 광학 제품들은 사용성이 아무리 좋아도 본질인 '화질'에서 낙제점을 받으면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카메라도 중요하지만 렌즈가 보여주는 퍼포먼스의 중요성은 입 아플 정도죠. 그런 면에서 시그마의 20-200mm F3.5-6.3 DG | C 렌즈는 극한의 효율을 추구했음에도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비구면 렌즈 4매와 초저분산 렌즈 1매, 특수저분산 렌즈 3매를 삽입했는데, 이는 시그마가 10배 줌을 구현하면서도 얼마나 작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지, 동시에 화질이나 수차 발생을 줄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해야 되는 렌즈의 특성을 고려해서 화질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단순 스펙 데이터가 아닌 실제로 촬영하고 결과물을 보면서도 단 렌즈나 Art 라인 정도의 화질은 아니지만 사용성을 바탕으로 여행에 이 렌즈 하나로만 가기에 충분하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초점거리에서 디테일하게 표현해주기 때문에 화질에 대한 걱정은 크게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200mm로 당겨 찍다가 20mm 초광각을 즐길 수 있다는 게 너무 즐겁습니다.






20mm부터 전 구간별로 모아놓고 세세하게 봤지만 특별하게 부족한 점을 찾긴 어려웠습니다. 특히, 200mm의 초점거리에서 좀 화질이 떨어지는 거 아닐까 했었는데 디테일한 표현력에 놀랐는데요. 이번 촬영에는 소니의 고화소 바디인 a7RIV를 사용했는데 고화소 바디 유저들에게 만족감을 선사하리라 생각합니다.
해가 지는 시간대에선 빛의 대비가 강하고, 여러 방향에 들어오는 빛 때문에 자칫 디테일이 뭉개지거나 표현력이 부족할 수 있었지만 20-200mm F3.5-6.3 DG | C 렌즈는 확실히 초저분산 & 특수저분산 유리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덕에 수차 보정 뿐만 아니라 디테일한 표현력이 꽤 마음에 들더라고요. 시그마는 '이렇게 만들기 위해 그동안 슈퍼 줌렌즈를 내놓지 않았구나'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듭니다.

그동안 이런 슈퍼 줌렌즈를 바라고 있었지만 출시하지 않아서 야속하기만 했는데 그 야속함을 날려버릴 정도로 만족스러웠습니다. 단순히 가벼워서, 편해서가 아니라 시그마가 정말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부분을 고민하고 그에 부합하는 제품을 만들려는 노력이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20mm 부터 200mm 까지 하나의 렌즈로 내 앞에 보이는 세상을 다양하게 담을 생각을 하니 벌써 즐거워집니다. 렌즈 고민 없이 이 렌즈를 통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촬영만 잘하면 되니까요. 렌즈 고민할 시간에 좀 더 많이, 더 즐겁게 찍어보겠습니다.
Contemporary 20-200mm F3.5-6.3 DG로 담은 다양한 세상의 모습
20-200mm F3.5-6.3 DG | C (F9, 1/800s, ISO250 / a7R5 촬영)
20-200mm F3.5-6.3 DG | C (F9, 1/800s, ISO250 / a7R5 촬영)
20-200mm F3.5-6.3 DG | C (F8, 1/400s, ISO250 / a7R5 촬영)
20-200mm F3.5-6.3 DG | C (F6.3, 1/640s, ISO100 / a7R5 촬영)
20-200mm F3.5-6.3 DG | C (F6.3, 1/160s, ISO1000 / a7R5 촬영)
20-200mm F3.5-6.3 DG | C (F6.3, 1/160s, ISO1000 / a7R5 촬영)
20-200mm F3.5-6.3 DG | C (F4, 1/1250s, ISO1000 / a7R5 촬영)
20-200mm F3.5-6.3 DG | C (F6.3, 1/4000s, ISO250 / a7R5 촬영)
20-200mm F3.5-6.3 DG | C (F6.3, 1/2000s, ISO640 / a7R5 촬영)
20-200mm F3.5-6.3 DG | C (F4.5, 1/60s, ISO1000 / a7R5 촬영)
20-200mm F3.5-6.3 DG | C (F10, 1/1000s, ISO250 / a7R5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