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사진을 찍으면서 카메라나 렌즈, 삼각대 같은 장비 셋업은 명확해졌으나 아직도 흐리기만 한 게 있습니다. 바로 가방. 간단하게 정착할 줄 알았던 가방은 수많은 컬렉션으로 제 수납장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어 있습니다. 들고 갈 장비마다 다른 쓰임새나 디자인, 각기 다른 기능적인 이유로 아직 표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카메라 가방은 정말 어렵습니다. 디자인이 멋지면 카메라 가방의 본질적인 기능과 쓰임새가 아쉽고, 기능적으로 완벽한 것 같으면 칙칙한 디자인 때문에 망설여지기 마련이죠. 그만큼 카메라 가방은 본질적인 수납과 장비 보호의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가방의 심미적인 면도 일정 부분 이상은 충족해야 하는 어려운 분야입니다.
저도 그런 부분에서 항상 아쉽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기존에 보지 못한 쉐입과 컬러감. 그리고 탄탄한 재질과 디자인을 가진 브랜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미국의 카메라 가방 브랜드인 원더드 (WARDRD) 입니다. 이 원더드의 시작은 2015년 각각 디지털과 필름 사진을 촬영하는 Ryan Cope와 Spencer Cope 형제가 기존 제품들에서 디자인과 기능에 아쉬움을 느꼈고, 이름처럼 '탐험'을 주제로 만든 브랜드입니다.
원더드는 이렇게 다양한 컬러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기존 카메라 가방에서는 자주 사용되지 않는 컬러들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컬러명도 좀 독특합니다. 국내에서는 편의상 짧게 표기하지만 덧붙여 설명하자면 원더드의 컬러명은 유명한 지명들을 차용했습니다.
아타카마 사막의 점토빛 붉은 갈색을 뜻하는 Atacama Clay, 볼리비아 소금 사막의 영감을 받아 만든 Uyuni Purple, 미국의 사막을 연상케하는 Sedona Orange, 유마 사막을 테마로한 Yuma Tan까지. 이런 컬러명조차 원더드는 그 브랜드 이름처럼 모험을 연상케 하며 자연스럽게 여행과 모험을 떠올리게 합니다.
PRVKE 21L V4와 ROGUE 6L Sling V2입니다.
소개할 제품은 가장 대중적이면서 많은 수납을 자랑하는 백팩인 PRVKE (프로보크)와 크로스로 편하게 메고 다닐 수 있는 슬링백인 ROGUE Sling(로그 슬링)입니다. 특히, 이 두 제품은 고객들의 피드백을 받아 디자인부터 기능적인 부분까지 리뉴얼을 진행하는데 재밌는 건 이렇게 리뉴얼 된 버전을 제품명에 표기해 버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최근에 리뉴얼한 PRVKE와 ROGUE Sling의 제품명이 'PRVKE 21L V4', 'ROGUE 6L Sling V2'로 표기가 되니까 신제품인지 알아보기가 쉬워지고 또 동시에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개선한다는 이미지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가방의 로고도 더 잘 드러나고 내구성이 좋게 변경되며 부자재도 바디 컬러로 바뀌었습니다.
가방끈까지 모두 바디컬러가 적용되니까 컬러감이 돋보입니다.
특히 PRVKE 21L V3까지는 바디컬러와는 별개로 롤탑, 스트랩고리, 지퍼 등이 검은색이었습니다. 컬러감은 독특한데 롤탑, 지퍼 등은 블랙이라 독특한 컬러를 골랐을 때 온전히 느끼기 어려웠는데 V4로 리뉴얼 되면서 롤탑, 지퍼, 스트랩 고리 등 여러 요소가 바디컬러와 동일한 컬러로 변경되니까 컬러감을 한껏 느낄 수 있고, 통일성도 있어서 한층 고급스러워 보입니다. 최근 SUV 자동차들이 블랙 플라스틱 파츠들을 바디컬러로 변경해서 고급화를 이룬 것처럼 말입니다.

ROGUE Sling V2에서는 그 변화의 폭이 좀 더 커 보입니다. 존재감 넘치던 로고는 작게 바뀌면서 바디 컬러로 변경되었고, 가방 로고 위에 있던 외부 포켓이 사라지고 장비를 걸 수 있는 스트랩 고리가 가방 하단으로 이동해서 삼각대 등을 넣고 다닐 때 자연스럽게 무게 중심이 아래로 가게 만들어서 밸런스를 맞췄습니다. 슬링백은 작은 가방이지만 장비를 가지고 다니면서도 편안한 착용감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꽤 매력적인 부분입니다.
그리고 두 제품 모두 이런 수납이나 디자인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방수 성능과 스크래치에 더 강한 고강도 발리스틱 나일론 재질 소재를 사용했고, 메시 소재의 쿠션 패턴과 어깨 스트랩도 바꿔서 통기성과 착용감 부분을 개선 했습니다. 리뉴얼을 통해 소재 자체를 변경하거나 메시 소재의 패턴을 바꾸는 일은 보기 드문데 원더드는 그만큼 사진가들이 다양한 곳을 방문하면서 겪을 여러 상황을 염두에 둔 리뉴얼이라는 점에서 섬세함이 돋보입니다.
PRVKE 21L V4
롤탑 방식이라 필요할 때는 상단 부분을 추가 확장하여 수납이 가능합니다.
측면 입구를 통해서 카메라 뿐만 아니라 배터리까지 빠르게 준비할 수 있습니다.
클램쉘 타입이라 편하고 효율적으로 공간 활용이 가능합니다.
롤탑 쪽에 수납 공간이 2개, 등쪽에 히든 포켓이 있어서 귀중품을 수납하기 좋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가 바뀌었지만,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수납 아닐까요. 원더드의 가방을 자세히 보면 수납의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면 여지없이 지퍼를 발견할 수 있는데 쓰다 보면 '어? 여기도 수납공간이 있어?' 할 정도로 촬영자, 촬영자에 의한, 촬영자를 위한 가방 그 자체입니다. 멋들어진 디자인은 덤이고요.
PRVKE 21L V4 제품은 기본적으로 클램쉘 타입이라 등판 부분 전체가 오픈되면서 편리하고 많은 양의 짐을 차곡차곡 쌓을 수 있어서 공간 낭비를 최대한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미러리스 1대와 렌즈 2개, 컴팩트 카메라 1대, 메모리카드 케이스, 블로워 등 촬영과 관련된 물품 한 번에 넣어봤는데 큰 무리 없이 챙길 수 있었습니다. 기타 액세서리와 노트북은 카메라 장비와 공간을 분리해서 수납할 수 있어서 편리하더라고요. 아, 노트북은 15인치 맥북이었는데 알맞게 들어갑니다.
가방을 멘 상태에서도 카메라를 빠르게 꺼낼 수 있도록 측면 입구를 마련해 놓았고,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별도 수납 지퍼를 만들어서 배터리를 3개까지 보관할 수 있어서 배터리 찾는다고 뒤적거리지 않아도 됩니다.
백팩이지만 롤탑 방식이라 사용하지 않을 때는 돌돌 말아서 다니지만, 추가 수납이 필요할 때는 용량을 확장해서 겉옷이나 파티션에 넣을 수 없었던 부피 있던 걸 넣어서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쓰지 않을 때는 조금 더 작은 느낌의 가방처럼 사용할 수 있어서 메고 나갈 때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합니다.
ROGUE 6L Sling V2
카메라를 수납할 수 있는 파티션과 내부에 수납 공간이 추가로 더 있습니다.
ROGUE 6L Sling V2는 작지만 부족함 없이 장비를 넣고 다닐 수 있게 세팅되어 있어요. 내부를 보면 85mm F1.4 DG DN과 카메라 본체, 그리고 옆 공간에 펜탁스 17을 넣었지만 그렇지 않다면 작은 단 렌즈 정도는 추가로 챙길 수 있습니다. 꼭 이런 구성이 아니더라도 다른 장비 수납을 하고 싶다면 탈착식 디바이더를 통해서 장비에 맞게 탈착 후 장비에 맞게 조정하거나 제거해서 데일리 가방으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상단, 좌·우측 포켓을 통해 메모리 카드 케이스나 픽시 삼각대 같은 작은 촬영 장비까지 수납할 수 있고, 내부에 여러 수납공간이 있어서 작은 크기의 가방이지만 꼭 라이트한 구성에만 들고 다닐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가방의 세계에서 '절대', '완벽'에 가까운 건 없습니다. 그런 가방이 나올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늘 좋은 조건의 가방을 찾으러 다닙니다. 그만큼 가방을 선택하는 일은 까다로운 조건들을 통과해야 되는데 원더드는 꽤 많은 조건을 충족합니다. 용량과 함께 다양한 공간을 활용한 수납력, 다양한 컬러웨이와 데일리로도 무리 없는 디자인, 방수와 스크래치에 강한 재질로 환경에 대한 제약을 거의 느끼지 않아도 되는 점. 이런 점들로 인해 험난한 가방의 세계에서 더 이상 표류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