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히 추워진 날씨 때문에 뜨끈한 집에서 꼼짝없이 하루를 머물고 싶은 날입니다. 채널을 돌려봐도 딱히 볼 것이 없다면 구독 중인 OTT를 열어보세요. 그리고 아래의 영화를 검색해 보세요. 순식간에 몰입해 추운지도 모를 테니까요.
*스포 주의*
*필자의 감상이 영화의 메시지를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한 개인의 주관적인 의견으로 봐주세요.
ⓒ넷플릭스
프랑켄슈타인(2025)
-넷플릭스
-청소년 관람불가
독보적인 미장센을 자랑하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 <프랑켄슈타인>을 선보였습니다. 원작이 워낙 유명한 데다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창작진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담긴 작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요. 한국에선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이 크게 흥행했죠.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프랑켄슈타인 속 피조물은 녹색 피부에, 목에 볼트가 박힌 모습이지만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영화 속 피조물은 얼추 사람의 외형을 갖추고 있습니다. 비록 키와 덩치, 힘이 인간의 그것과는 다르지만요.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오직 인간 창조에 심혈을 기울이며 하나, 하나 설계했기 때문에 이 피조물은 퍽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여기에서 감독의 미장센과 연출이 돋보이는데요. 피조물이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스산한 성까지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물론 신체를 가닥가닥 붙여 새로 만드는 작업이다 보니 불쾌한 장면이 꽤 나오고 피조물의 파괴적인 힘이 불러온 결과가 잔인하지만 어쨌든 아름답습니다.
ⓒCJ CGV
ⓒCJ CGV
이 영화를 보면서 인간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 인간보다 더 인간답다는 아이러니가 머릿속을 떠다녔습니다. '인간은 창조될 수 있다'라는 믿음 아래 빅터는 외골수(라고 쓰고 아집이라 읽는다.)처럼 인간 창조에 빠져들어 온 시간, 온 삶을 바칩니다. 죽은 이들의 살과 뼈를 모아 마침내 '살아 움직이는 인간'을 탄생시키는데 성공하지만, 이는 빅터가 원하는 결과물이 아니었습니다. 그 순간 변한 빅터의 태도, 만들어진 이상 이 세계에서 살아 남아야만 하는 피조물, 피조물이 하나씩 배워가고 느끼는 감정들을 보며 '인간다운 것이란 무엇이며, 누가 더 인간다운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떠오르는 햇빛을 바라보며 짓는 피조물의 표정은 깊은 인상과 여운을 남깁니다. 영화 후반부는 이야기가 급전개되는 느낌이 있지만 인간에 대한 고찰과 함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만의 스타일이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넷플릭스로.
ⓒ미디어캐슬
괴물(2023)
-웨이브 / 2026년 넷플릭스에서 공개 예정
-12세 이상 관람가
이동진 평론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영화 <괴물>을 보고 이렇게 평했습니다.
"오해를 경유해서 이해에 이르는 경험 끝에 관객은 그 햇살 아래서 증인이 된다." 별점은 4.5점.
이 영화의 처음과 끝을 모두 담은 완벽한 한 줄 평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를 보고 난 뒤 이 평을 읽었을 때 제가 느낀 모든 감정이 이 한 문장으로 설명됐거든요.
<괴물>은 총 3부 구성입니다. 1부는 미나토의 엄마 사오리, 2부는 미나토와 요리의 담임 호리, 3부는 미나토의 시선을 따라갑니다. 영화는 각 파트의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작품의 중심인물 '미나토', '요리'와 긴밀하게 얽힌 이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들처럼 생각하게 되고, 특정 인물을 오해하며, 사건을 왜곡해서 바라보게 됩니다. 하지만 3부 미나토의 시점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되고 이해한 순간 충격과 함께 묵직한 감정이 관객을 짓누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미나토와 요리는 햇살을 향해 뛰어가지만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일 겁니다.(감독은 해피엔딩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NEW
ⓒNEW
무엇보다 관객이 무의식중에 의심하고 편견을 가지지만(오해를 경유해) 마침내 진실을 알게 되면서(이해에 이르는) 밀려오는 부끄러움과 미안함, 여러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 구성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연출이 압권이에요.
확실치 않은 말들이 삽시간에 퍼져나가는 과정, 그 말에서 비롯된 편견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나는 그동안 타인의 입으로 들은 소문에 어떻게 휘둘렸는가, 우리는 상대를 잘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기만했는가-라는 생각 때문에요. 발 없는 말에 귀 기울이기보단 진실을 바라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음을 이 영화로 다시 되새깁니다. <괴물>은 이 과정들을 섬세하게 묘사해 영화가 미나토와 요리를 보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참고로 <괴물>은 LGBTQ+, 학교 및 가정 폭력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드
더 폴: 디렉터스 컷(2024)
-디즈니플러스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를 많이 봤다고 말할 수 없지만 단언컨대 제가 봤던 영화 중 미장센이 가장 아름다운 영화였습니다. 황홀하고 시각적으로 풍만한 장면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합니다.(하여 이 영화는 큰 스크린으로 보는 것을 추천하지만 영화가 내려갔기 때문에 디즈니플러스에서라도 꼭 영상미를 느끼길 바랍니다.)
작년에 재개봉한 <더 폴: 디렉터스 컷(이하 더 폴)>은 28개국을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한 감독의 뚝심이 화면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올 로케가 아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영상미와 웅장함이 있고, 색(色)이 주는 임팩트를 감독이 잘 알고 있는 덕에 눈이 즐겁습니다. 또 아무리 기술이 발전했다고 한들 2008년에 개봉한 영화인데도 화질이 선명해 의아했는데, 2006년에 촬영할 때부터 4K로 찍었다는 타셈 싱 감독의 말을 듣고 그의 자신감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어요.
ⓒ오드
ⓒ오드
이야기는 액자식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영화 촬영 중 다쳐 입원한 로이와 같은 병원에 입원한 꼬마 알렉산드리아가 만나게 되고, 로이는 알렉산드리아가 어떤 것을 구해다 주는 대가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요. 현재의 로이와 알렉산드리아의 이야기, 로이가 만든 세계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고, 이야기 속 상황들도 훅훅 바뀌는 탓에 산만한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더 폴>의 화려한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산만한 것쯤이야 감수할 수 있는 데다 영화를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영상미도 좋지만 병원에서 만난 로이와 알렉산드리아가 점점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도 눈여겨 볼 포인트입니다. 그리고 로이와 알렉산드리아가 처한 상황, 케미가 로이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에게 반영되는 지점들도 재미있고요.
참, 알렉산드리아 역의 카틴카 언타루가 정말 사랑스럽고 로이 역의 리 페이스의 얼굴과 연기가 굿입니다.
ⓒ영화사 진진
해피엔드(2025)
-왓챠
-15세 이상 관람가
이 영화의 제목은 '해피엔딩'이 아니라 '해피엔드'입니다. 말 그대로 행복한 결말일 수도 있고 행복이 끝이라는 말일 수도 있어요. 보는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겠지만 저에겐 행복한 결말에 조금 더 가까웠습니다.
학생들이 주인공이지만 우리가 아는 청춘물의 분위기를 쭉 가져가진 않습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유타와 코우, 친구들은 청춘 그 자체지만 통제가 침범하는 순간 영화의 분위기도 서서히 바뀝니다. 학교는 작은 사회라는 말이 있죠. <해피엔드>에선 총리가 국민을 통제하려 한다면, 교장은 학생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영화는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고 옳고 그름을 재단하지 않으며 큰 갈등을 겪는 이는 유타와 코우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주인공들의 감정선을 명확히 따라가지도 않아 자칫 심심할 수도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사 진진
ⓒ영화사 진진
그럼에도 추천하는 이유는 음악 덕분입니다. 첫 시퀀스 음악부터 사람을 확 몰입시키는데, <해피엔드>에서 음악과 사운드는 중요한 역할을 해요. 영화는 내내 소리를 끊임없이 내다가 딱 한 장면, 지진이 일어난 상황에선 사운드가 뮤트 됩니다. 제가 GV에 갔을 때 들었던 해석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지진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뮤트로써 보여준다는 해석이었습니다. 그만큼 음악과 사운드가 이 영화를 구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아요.
스토리를 말해보자면 첫 관람 때는 막역하고 음악으로 이어졌던 유타와 코우가 학교 내외로 발생하는 통제 때문에 점점 벌어지는 균열이 안타까웠어요. 두 사람의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이 곳곳에서 보입니다. 코우(를 비롯해 다른 친구들)는 일본의 현 상황을 통해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지만, 유타는 여전히 제자리에 멈춰있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이게 어떻게 유타에게 해피엔드일 수가 있지? 의문이 들었어요. 오히려 코우와 친구들과의 행복한 시간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다시 봤을 땐 그 자리에 머무를 것만 같았던 유타가 여러 가지 일들로 미미하지만 변화를 받아들이고 성장통을 겪었다는 점에서 행복한 결말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넷플릭스
소년의 시간(2025)
-넷플릭스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가 아닌 4부작 영국 드라마지만 꼭 한 번 볼 것을 추천합니다. 제이미 역의 오언 쿠퍼가 에미상에서 최연소로 남우조연상을 받았으며 <소년의 시간>은 남우조연상을 포함 8관왕을 거머쥐었어요.
<소년의 시간>은 4화에 걸쳐 같은 반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잡힌 13세 소년의 이야기를 파헤칩니다. 1화는 제이미가 살인 용의자가 되면서 일어나는 혼돈, 2화는 단서를 찾기 위해 제이미가 다닌 학교를 찾아간 경찰관의 시선, 3화는 제이미와 심리상담사의 일대일 대화, 4화는 제이미 가족을 향한 불링을 담았습니다.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를 볼수록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13세 소년이 정말 친구를 살해했는가'가 아닌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는 2화에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며 3화에서 폭발적으로 터지는데요. '특정 문화'가 또래 집단에 퍼졌을 때 어떤 파급력을 지니는지, 그 파급력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알게 되면서 작금의 사태에 대해 고민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문화는 현재 진행형이며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나타납니다. 어쩌면 몸집을 더 불릴 수도 있고요. 이것이 가장 공포스러운 지점이에요.
3화는 제이미와 심리상담사의 일대일 대화가 영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고 제가 마치 심리상담사가 된 듯 긴장이 됩니다. 4화는 보는 이에 따라 제이미 가족이 안타까울 수도 혹은 불편할 수도 있는데 저는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소년의 시간>이 더 재미있는 건 원테이크 촬영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에요. 원테이크가 가히 예술입니다. 장면 전환을 해야 할 때 대체로 등장인물을 교차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그것마저 전환이 부드럽습니다. 스토리도, 주제도, 촬영 방법도 모두 흥미로워 시간 가는 줄 모를 테니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넷플릭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