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 IV Monochrome
저는 평소 사진을 찍을 때 핸드폰의 모노나 느와르 모드를 종종 사용합니다. 다양한 색을 담는 촬영도 즐기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두 가지 색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을 때가 있더라고요. 흑백 사진의 매력은 색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남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색이 빠지면 빛의 방향과 명암의 정도, 형태의 윤곽이 더욱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평소에는 쉽게 지나쳤던 빛의 흐름이나 구도가 사진 안에서 하나의 이야기처럼 이어지는 느낌도 들고요. 그래서 저는 종종 흑백 모드로 촬영하거나, 후보정에서 일부러 채도를 낮춰 빛과 톤을 강조하는 방식을 사용해 왔습니다.
그런 제가 GR IV Monochrome(GR4 모노크롬)을 사용하며 느낀 감정은 꽤 분명했어요. '아, 이 카메라는 정말 갖고싶다!'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거든요.


GR IV를 사용해 왔고, 최근에는 GR IV HDF도 경험했지만, 이번 GR IV Monochrome은 출발선부터 다른 카메라입니다. 단순히 색을 덜어낸 버전이 아니라, 흑백 촬영을 전제로 센서와 이미지 처리 과정 전반이 설계된 전용 모델입니다. 색 정보가 많아지면 오히려 복잡해질 수 있는 장면에서도, GR IV Monochrome은 형태와 명암, 질감에 집중한 결과물을 안정적으로 제공합니다. 깔끔한 해상력 속에서 여운이 남는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느낌이 인상적이었어요.
흑백 촬영은 기존의 모노 모드나 흑백 필름으로만 해오던 제 기준에서, 이번 모노크롬은 '완성형 흑백 카메라'에 가까웠어요. 눈에 보이는 형상을 흑백으로 변환한 결과가 아니라, 처음부터 흑백으로 바라본 장면을 그대로 기록한 듯한 인상이었죠. 높은 해상도와 섬세한 디테일, 명암의 표현까지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카메라였습니다.
[흑백 옵션과 흑백 카메라의 결정적인 차이]

GR4 모노크롬 흑백 센서 (좌) / GR4 컬러 센서 (우)
GR IV Monochrome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GR IV에 탑재된 모노톤 모드와의 차이를 먼저 짚어보는 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이미지 센서에 있습니다. GR IV Monochrome은 흑백 전용 CMOS 이미지 센서를 사용합니다. 일반적인 디지털카메라는 컬러 정보를 얻기 위해 센서 위에 색 필터 배열을 두고, 각 픽셀이 빨강·초록·파랑 중 하나의 빛만 받아들입니다. 이후 주변 픽셀의 데이터를 계산해 색을 완성하는 보간 과정을 거치게 되죠. 즉, 컬러 이미지는 센서가 받아들인 빛의 정보와 계산으로 보완된 정보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잎사귀의 솜털까지 보이는 뛰어난 해상력
반면 GR IV Monochrome은 색 필터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각 픽셀은 오직 빛의 밝기만을 기록하며, 보간 과정 없이 센서가 받아들인 정보가 그대로 이미지에 반영됩니다. 이 구조적인 차이는 해상도와 선명도, 그리고 미세한 디테일 표현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흑백 전용 센서는 기능을 제한한 센서가 아니라, 빛의 정보를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빛이 직접 센서에 닿기 때문에 명암의 연결이 부드럽고, 미세한 톤의 변화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그 결과 피사체의 형태와 질감이 또렷하게 살아나며, 흑백 사진 특유의 깊이감이 안정적으로 표현됩니다.
GR4 모노 필터 (좌) / GR4 모노크롬 (우) / 모두 동일한 설정값으로 촬영 했습니다.
실제로 GR IV의 모노톤 모드와 GR IV Monochrome의 결과물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더욱 분명해집니다. 컬러 센서에 흑백 처리를 적용한 모노톤 이미지는 밝은 영역에서의 대비나 계조 표현이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느껴지는 반면, 모노크롬은 풍부한 계조를 기반으로 빛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담아냅니다. 같은 장면을 촬영하더라도, 명암의 밀도와 공간의 깊이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이번 GR IV Monochrome에 탑재된 흑백 센서는 리코가 오직 GR 모노크롬을 위해 새롭게 개발한 센서로, 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빛의 밝기 데이터를 각 픽셀 단위로 정확하게 반영합니다. 단순히 흑백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넘어, 흑백으로 기록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GR IV 모노 필터와 GR IV Monochrome은 분명히 다른 카메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ND 필터 대신, 레드 필터(Red Filter)]

레드 필터 ON (좌) / OFF (우)
GR IV Monochrome의 또 하나의 핵심은 ND 필터 대신 렌즈 유닛 내부에 탑재된 레드 필터(Red Filter) 입니다. GR IV HDF가 HDF 필터를 선택했던 것처럼, 이번 모노크롬 역시 흑백 촬영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방향으로 과감한 선택을 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레드 필터는 Fn 버튼을 통해 즉각적으로 ON/OFF 할 수 있으며, 활성화 시에는 AF 보조광 또한 붉은 색으로 함께 변경됩니다. 레드 필터를 적용하면 푸른 하늘은 더 어둡게 표현되고, 구름의 윤곽은 또렷해지며, 붉은 계열의 피사체는 상대적으로 밝게 드러납니다. 흑백 촬영임에도 불구하고 색의 성질을 활용해 이미지를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 이 필터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처음 레드 필터의 존재를 알았을 때는 단순히 붉은 계열을 강조하는 기능일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해 촬영해 보니, 이는 색을 강조하기보다는 명암과 대비를 보다 적극적으로 다루기 위한 도구에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레드 필터를 활용하면 그림자가 더 깊어지면서 공간의 입체감이 한층 강조됩니다. 대비가 분명해지고, 빛이 장면 전체를 이끌어가는 인상도 강해집니다. 특히 강한 빛과 다양한 색이 공존하는 장면일수록, 레드 필터가 만들어내는 흑백의 밀도는 더욱 또렷해집니다. 이러한 변화가 촬영 순간에 즉각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에, 촬영 흐름을 끊지 않고 장면에 따라 자연스럽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점 역시 GR IV Monochrome만의 큰 장점입니다.
[고감도의 매력]
ISO 6400, 1/320s, F2.8
컬러 센서를 탑재한 GR IV는 ISO 100부터 최대 204800까지 감도 설정이 가능합니다. 반면 GR IV Monochrome은 색 필터가 없는 흑백 전용 센서를 사용하기 때문에, 컬러 센서보다 빛에 대한 감도가 더욱 높습니다. 그에 따라 최소 ISO는 160부터 시작하며, 고감도 촬영을 하나의 표현 영역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최대 ISO 409600까지 지원합니다. 수치만 보면 다소 과감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GR IV Monochrome에서 고감도는 단순한 한계치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표현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갑작스럽게 눈이 내리던 밤, 신호등 아래에서 흩날리는 눈이 인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주머니에서 모노크롬을 꺼내며, 어두운 환경에서 이 장면이 어떻게 표현될지 자연스럽게 궁금해졌어요. 조심스레 ISO를 6400까지 올려 촬영해 보니, 노이즈나 빛 번짐에 대한 걱정보다는 전체적인 톤 밸런스가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눈발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드러나고, 빛과 명암이 적절하게 정리된 장면으로 깔끔하게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흑백 촬영에서 빛의 활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체감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ISO 64000, 1/250s, F6.3, 어두운 박물관에서도 또렷하게 남는 장면
ISO 64000, 1/16000s, F5, 매크로
ISO 65535, 1/16000s, F14
컬러 모델에서 고감도 영역은 색 번짐과 노이즈가 함께 증가하는 구간이지만, 모노크롬 센서에서는 색 정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입자가 명암 중심으로 정리됩니다. 그 결과 고감도에서 나타나는 미세한 입자감은 사진 전체에 균일한 질감으로 더해지고, 필름 현상 후 나타나는 그레인과 닮은 인상을 만들어냅니다. 디지털 특유의 느낌과는 다른 방향의 표현이 완성되는 셈이죠. 고감도가 '피해야 할 설정'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표현이 된다는 점에서 이 카메라의 매력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밝은 환경에서 ISO를 높여 질감을 살리는 촬영에서는 전자식 셔터의 존재감이 더욱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저 역시 빛이 강한 낮 시간대에 필름 같은 입자감을 담고 싶어 ISO를 64000까지 올리고, 셔터스피드를 1/16000로 설정해 촬영해 봤습니다. 강한 빛이 만들어내는 명암이 또렷하게 구분되는 상황에서, 높은 ISO로 형성된 자연스러운 그레인이 이미지 전반에 고르게 더해졌고, 높은 셔터스피드를 통해 노출을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부드러운 톤과 거친 질감이 함께 공존하는, 한 장의 필름 사진 같은 인상이 자연스럽게 완성되었습니다. 이런 촬영은 전자식 셔터가 없었다면 쉽게 시도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밝은 환경에서도 ND 필터 없이 조리개를 개방할 수 있고, 고감도를 활용해 질감을 강조한 흑백 촬영이 가능하다는 점은 GR IV Monochrome만의 분명한 장점입니다. 필름 같은 입자감을 디지털 카메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은 촬영 과정 자체를 더욱 즐겁게 만들어줍니다.
[같은 흑백, 다른 표현]

GR IV Monochrome에는 흑백 전용 이미지 컨트롤이 탑재되어 있으며, 이번에는 Solid와 Grainy 화상이 새롭게 추가되었습니다. Solid는 강한 톤 커브를 통해 경계를 또렷하게 만들고, 블랙을 단단하게 잡아주어 이미지를 명확하고 정제된 인상으로 마무리 합니다. Grainy는 입자가 분명하게 드러나면서도 하이라이트와 섀도우의 디테일을 균형 있게 유지해, 필름 사진을 떠올리게 하는 질감을 표현합니다.
ISO를 높이지 않아도 Grainy 모드를 통해 자연스러운 질감을 더할 수 있고, 전체 톤 밸런스를 유지한 상태에서 표현의 폭을 넓힐 수 있습니다. 흑과 백만으로 구성된 사진이라고 해서 단조로울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모노크롬만을 위해 설계된 화상 컨트롤 덕분에, 톤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표현이 되기 때문입니다.
GR IV Monochrome은 강렬한 콘트라스트의 스트릿 사진부터, 부드럽고 절제된 무드의 흑백 사진까지 폭넓은 표현을 지원합니다. 추상적인 이미지와 구체적인 장면, 소프트한 톤부터 하이 콘트라스트 영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톤과 질감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촬영자 각자의 기준과 취향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흑백이라는 조건 안에서 오히려 더 넓은 표현 스펙트럼을 경험할 수 있는 카메라입니다.
Solid 모드
Grainy 모드
[흑백 세계관]


GR IV Monochrome은 흑백 전용 카메라이지만, AF 성능은 일반 GR IV 모델과 동일한 기준을 유지합니다. 주머니에서 꺼내 셔터를 누르기까지의 과정은 빠르고 안정적입니다. 레드 필터가 활성화된 상태에서도 AF 촬영이 가능해, 조작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디자인 역시 기능과 같은 방향을 향합니다. 마그네슘 합금 바디부터 링 캡까지 모두 무광 블랙으로 통일되었고, 전면의 GR 로고는 세미 글로스 블랙으로 처리되어 미묘한 대비를 더합니다. 전원 버튼의 화이트 점등은 흑백 세계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익숙한 GR의 형태 안에서, 흑백이라는 개념이 디테일까지 일관되게 정리 된 인상을 줍니다.





GR IV Monochrome은 단순히 색을 제거한 카메라가 아닙니다.
빛과 톤, 질감을 중심으로 사진을 다시 구성하도록 유도하는 카메라라고 할 수 있죠.
뛰어난 해상력을 지닌 흑백 전용 센서, 레드 필터를 통한 이미지 조정, 그리고 흑백을 전제로 설계된 다양한 이미지 컨트롤은 촬영자의 선택지를 오히려 넓혀줍니다.
이번 GR IV Monochrome 공개 이후, 일반 모노톤과 모노크롬의 차이에 관한 질문이 많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 차이가 가장 궁금했고, 직접 사용해 본 뒤에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요. 흑백 촬영을 즐겨오셨다면, 혹은 새로운 촬영의 기준을 만나보고 싶다면 GR IV Monochrome은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이 될 것입니다.
색을 덜어낸 만큼, 사진을 바라보는 기준이 오히려 또렷해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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