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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보니 따뜻했던 HARMAN RED
PRODUCT악세서리
지나고 보니 따뜻했던
HARMAN RED
2025.02.20
601 2

카메라를 손에 쥔지 대학생 4년, 직장 생활 2년 대략 6년 정도 된 거 같다. 대학생 시절 처음 접한 카메라는 소니 방송용 캠코더였다. 덩치가 어찌나 산만한지 이거 들고 몇 시간 촬영하다간 어깨가 작살날 거 같다고 생각했던 그 첫인상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다음은 '오막삼'이라고 불리는 Canon 5D Mark |||, 그다음 Canon EOS 90D 그리고 지금은 SONY A7R5를 쓰고 있다. 물론 회사 거다. 그럼 필름 카메라도 많이 써봤냐는 질문엔 "No". 그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다. 사진엔 문외한(영상만 찍어왔다)이었던 나는 입사 후 이것저것 배우느라 필름을 시도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쉽지 않았고, 확실한 걸 좋아하는 나에게 필름이라는 불확실성의 매개체는 그리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 필름이 있었는데..

 

바로 2025년 2월에 새롭게 출시된 [HARMAN RED]다. 이름만 들어도 어떤 필름인지 감이 오지 않는가. 이 필름은 평온한 서울의 길거리를 마치 영화 <나는 전설이다>의 마지막 대치 장면을 연상케하는 디스토피아적 걸작으로 변화시킨다. 아주 강렬하고 때론 따뜻하면서도 가끔은 아주 뜨겁게 말이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 中 주인공과 좀비 우두머리의 마지막 대치 장면 ⓒ washingtonpost





이 필름은 HARMAN에서 만든 최초의 redscale 필름이다. redscale 필름은 일반 컬러 네거티브 필름의 유제층이 반대로 노출되는 방식이다. 적색 감광층이 빛에 가장 먼저 노출되고, 제일 마지막인 청색 감광층은 빛을 거의 받지 못하기 때문에 파란색 계열은 사라지고 붉은색, 오렌지, 황금빛만 남게 된다. 붉게 물든 필름 속 세상은 그동안 아무 감흥 없이 셔터를 누르던 나에게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왔다. 세상에 이런 극단적인 필름이 있었는가. 한파를 무릅쓰고 낡은 필름 카메라와 하만 레드 2롤을 챙기고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핸드폰을 꺼내 지하철 노선도를 검색했다. 오늘은 어딜 가면 좋을까. 아무래도 지금 아니면 하늘색을 당분간 못 볼 거 같은 예감 때문일까 오늘따라 유난히 하늘색 노선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4호선을 타고 주변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낯선 곳에 낯선 것을 들고 낯선 무언가를 찍는 오늘은 모처럼 나를 설레게 한다.



 

왼쪽부터 SONY A7R5 / HARMAN RED로 찍은 청계천



 

가장 먼저 소개할 곳은 청계천과 낙산공원이다. 청계천의 오후 2시는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풍경이었다. 차가운 공기를 가로질러 빠른 발걸음으로 추위로부터 달아나는 사람들, 한 손에 커피를 쥐고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 어디서 떠내려왔는지 모르겠는 오리들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한 한적한 도시 풍경에서 조그맣게 새어 나오는 물소리는 겨울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해준다.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영락없는 평온한 오후 2시의 풍경이지만 하만 레드는 이 모습을 따뜻함을 넘어 마치 금방이라도 하천에서 용암이 튀어나올 거 같은 뜨거운 사진으로 변화시켰다.



 

왼쪽부터 ISO 64 / 125 / 250
왼쪽부터 ISO 64 / 125 / 400

 

 

하만 레드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먼저 ISO 50부터 400까지 넓은 관용도를 지녔다. 적정 감도인 ISO 125를 기준으로 감도가 낮아질수록 노란색이, 반대로 높아질수록 붉은색이 강조되는 특징이 있다. ISO를 제외한 동일한 조건(조리개, 셔터스피드, 노출보정계 등)에서 찍은 아래의 사진들을 보면, 확실히 오른쪽으로 갈수록 사진이 붉어지고 색감이 선명해지며 대비는 더욱 강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왼쪽부터 -2 EV / +0 EV / +2 EV

 



또 하만 레드는 노출 정도에 따라 표현되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적정 노출에서 촬영한 사진은 고르게 퍼진 주황빛과 부드러운 그림자가 어우러져 따뜻한 감성을 만들어낸다. 반면, 언더 노출(-2 EV) 시에는 진한 그림자 속에서 붉은 색감이 더욱 짙어지고, 거친 입자감이 필름 특유의 질감을 극대화한다. 오버 노출(+2 EV)의 경우 주황과 노란빛이 강하게 살아나고, 미세한 그레인과 함께 사진 전체가 화사하고 선명해진다. 깊고 강렬한 붉은 느낌을 원한다면 언더 노출을, 부드러운 사진과 따뜻함이 강조된 사진을 원한다면 오버 노출을 선택하면 된다.

 

이처럼 간단한 조작 하나로도 사진의 분위기는 극적으로 변화한다. 그래서 더욱 신중히 셔터를 누를 필요가 있다. 어느 정도 하만 레드에 대해 공부하고 출사를 떠난다면, 여러분이 의도한 느낌에 맞게 하만 레드의 다채로운 매력을 다양하게 담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때때로 조작 한 번에 예상치 못한 빛이 사진을 뒤덮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빛이 만들어내는 우연마저도 필름 사진의 묘미니까.



 

언더 노출

적정 노출

오버 노출

붉은 색감, 거친 입자감, 깊고 강렬한 느낌

고르게 퍼진 주황빛, 따뜻한 감성

주황과 노란빛, 미세한 입자감,

화사하고 선명한 느낌

 

 

청계천 윤슬 / 낙산공원 정상에서 바라본 해 질 녘 풍경

 



하만 레드는 청계천을 내리쬐는 햇살을 더욱 따뜻하게 표현한다. 햇살이 비친 곳은 하얗게 날아가는 대신, 노란빛으로 표현되고 특히 물결 위에서 반짝이는 윤슬을 둘러싼 주황빛의 할레이션은 오후 2시의 풍경을 마치 해 질 녘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디지털카메라로는 담아내기 힘든, 몇 시간의 후보정 작업을 거친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해 질 녘에 찍었을 때 빛은 어떻게 표현될까? 낙산공원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태양은 오렌지빛의 따뜻한 색감이 감돌며 부드럽게 퍼진다. 군데군데 자리 잡은 빛도 과하지 않고 은은하게 퍼져 더욱 감성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청계천 윤슬 사진에 비해 더욱 강하게 표현되는 부드러운 빛 퍼짐 현상과 빛이 적게 닿는 부분에 껴있는 붉은 색조를 볼 수 있다. 부드럽게 퍼지는 태양빛, 주택가 위로 스며든 노을이 만들어낸 부드러운 할레이션, 명암의 대비. 이 모든 것이 한 데 어우러져 시네마틱한 사진을 완성시켰다.



 

낙산공원

 

 

다음은 용산공원이다. 매서운 한파 탓인지 공원은 한산했다. 카메라를 든 몇몇 사람들만이 여전히 이곳을 찾았다. 연인을 모델 삼아 사진을 찍는 이들, 각자의 카메라로 서로의 스냅사진을 찍어주는 친구들. 포토 스팟으로 이름난 곳다운 풍경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용산공원을 찾는 이유는 아마도, 옛 미군 기지의 흔적과 적색 벽돌 건물이 자아내는 빈티지한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하만 레드는 여기에 감성을 덧입힌다. 레드스케일 필름 특유의 따뜻한 색감이 더해지며, 빈티지한 공간은 한층 더 깊은 분위기로 물들었다.

 

 

 

 

용산공원에서만큼 셔터를 누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곳이 없다. 디지털카메라였으면 셔터를 마구 눌러댔겠지만 오늘은 36장이 아쉬울 따름이다. 마음에 드는 피사체나 공간이 보이면 얼른 발걸음을 옮겨 셔터를 살짝 눌러보지만 매수계창을 슬쩍 보고는 결국 발길을 돌린다. 아쉬움이야말로 필름 카메라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싶다. 아쉬움만 남기고 떠난 그 자리가 아직도 눈에 밟히지만 더 나은 것을 향해 가는 발걸음이 그리 무겁진 않았다.

 

 

용산공원

 



해가 지고 외국인들로 가득 붐빈 명동 길거리로 향했다. 한 짐 바리바리 싸 들고 가는 누군가, 명동의 길거리 음식을 기웃거리는 누군가, 아빠 손에 이끌려 자리를 뜨는 어린아이까지. 명동의 길거리는 밤이 돼도 빼곡하게 반짝이는 간판들로 불이 꺼지지 않는다. 간판이 만들어낸 위향찬란한 빛과 몰려든 어둠을 하만 레드는 어떻게 표현해 낼지 궁금했다.

 

하만 레드는 어두운 곳에서 붉은빛과 대비 효과가 강하게 표현된다. 낮에 촬영한 사진과 비교하면 할레이션과 대비가 훨씬 뚜렷해지고, 조명의 색감도 한층 더 짙어졌다. 특히 길거리의 자동차 불빛과 간판은 붓으로 찍은 듯한 빛 번짐을 만들어냈다. 하만 레드의 매력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깜깜한 어둠 속에서 새어 나오는 빛을 담아보길 바란다.



 

오후 6시의 명동 길거리
해가 완전히 진 명동 근처 길거리

 

 

오늘은 해가 중천에 뜬 오후 2시부터 해가 완전히 진 오후 8시까지, 다양한 시간대에서 사진을 담았다. 하만 레드는 빛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표현하고자 하는 사진의 분위기, 감성, 색감 등이 완전히 달라진다. 낮에 찍은 사진의 경우, 노란색과 주황색이 강조되고 부드럽고 차분한 느낌을 준다. 노을이 지는 해 질 무렵 때 찍은 사진을 보면 전체적으로 따뜻한 붉은 색감이 물들기 시작하고 빛을 감싸는 부드러운 할레이션이 두드러진다. 또 명암의 대비가 강해져 보다 강렬한 느낌을 준다.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 찍은 사진을 보면 붓으로 찍어누른 듯한 강렬한 할레이션과 붉은빛이 사진을 뒤덮어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왼쪽부터 오후 3시 / 오후 5시 / 오후 8시

 

 

오늘은 하늘을 참 많이 바라봤던 날이다. 필름 카메라를 들고나가는 날에는 혹시나 내가 놓친 게 있진 않을까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땅만 보고 걷던 나는 매일 걷는 거리의 간판이 바뀌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살아왔다. 필름 카메라는 평소에 놓쳐왔던 일상의 소중함 그리고 결과물을 기다리는 동안의 설렘을 안겨준다. 오늘따라 그 설렘이 더욱 강했던 이유는 평소였으면 지나쳤을 무언가를 더욱 강렬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리고 뜨겁게 기록할 수 있음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 에디터 C

 

 

매서운 추위를 뚫고 다음 행선지를 향해 옮기던 그 발걸음도, 낙산공원 벤치에서 노을이 질 때까지 벌벌 떨며 기다렸던 그 시간도, 명동 길거리를 몇 바퀴 돌았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해가 완전히 지기 만을 기다렸던 그 시간도, 돌아보니 따뜻하게 기억될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이 필름 덕분인 거 같다. 여러분들도 유난히 길고 추운 올해 겨울을 따뜻하게 기억하고 싶다면 [HARMAN RED]로 기록해 보길. 

 

 

ⓒ 에디터 H

 

ⓒ 에디터 M

 




글·사진 | 에디터 J

사진 | 에디터 C, 에디터 M, 에디터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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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J 글 · 사진

심심한 삶을 지향하는 막내 에디터

에디터 C 사진

오늘도 장비를 삽니다. 장비 없인 못살아.

에디터 H 사진

재밌는 걸 합니다.

에디터 M 사진

끄적이고 있습니다.

태그 #HARMAN RED #redscale #film #하만 #HA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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