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히스토리 보이즈>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전쟁 기념관이 세워지는 건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망각하기 위해서지. 무언가를 추모하는 것만큼 그 본질을 잊어버리는 데 좋은 건 없으니깐."
역사 교사 어윈이 한 말이에요. 처음에는 저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가, 듣고 보니 그런 듯했다가, 다시 편협한 시선은 아닐까 골몰했던 나날이 계속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여전히 저 대사에 온전히 동의할 수도, 온전히 반대할 수도 없지만 이번 '세상을 바꾼 자취'를 쓰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고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느낀 점은 일맥상통합니다.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전국 곳곳에 퍼져 있고, 그 노력을 하나의 생각과 시선만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는 것을요.
4월 콘텐츠를 기획하던 중 4.19혁명이 떠올랐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6월까지 다다랐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삼일절 : 무심코 지나쳤던 독립운동, 역사의 흔적들’, ‘광주의 불꽃을 따라(feat. 518번 버스)’에 이어 사람들의 용기와 희생을 기리고 있는 장소를 다녀왔습니다. 돌아보지 않았기에 몰랐을 뿐, 그 흔적들은 언제나처럼 우리와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삼일절 : 무심코 지나쳤던 독립운동, 역사의 흔적들
광주의 불꽃을 따라(feat. 518번 버스)
국립4.19민주묘지, 동국대학교 동우탑



국립4.19민주묘지
국립4.19민주묘지로 가는 길엔 다가오는 4월 19일을 기리는 현수막들이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수유동 일대는 이미 4월이 된 순간부터 이날을 기억하려는 이들의 움직임이 가득했습니다.
4.19혁명은 2.28대구학생시위와 3.15부정선거를 계기로 부정부패,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1960년 2월 28일부터 4월 26일까지 전국에서 전개된 민주화운동입니다. 국립4.19민주묘지는 4.19혁명에 참가해 순국한 224명이 안장되어 있는 국립묘지로, 4.19혁명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 중 하나이기도 해요. 이곳은 성역화 사업을 거쳐 4.19혁명 35주년 되는 해였던 1995년에 국립묘지로 승격됐습니다.
방문했던 날이 4월 19일을 사흘 앞둔 시점이라 그런지 4.19민주묘지를 보러 온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4.19학생혁명기념탑과 그 뒤쪽에 마련된 묘지에선 묵념을 하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고요. 4.19학생혁명기념탑을 바라보다 문득 그 너머로 장엄한 북한산이 보이는데, 마치 이곳을 품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념탑과 분향소, 묘지 외에도 4.19기념관도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으니 들러보세요. 4.19혁명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이후 이야기가 시간순으로 이해하기 쉽게 정리되어 있어 역사를 되새기기에 좋습니다.


동우탑과 노희두 열사 흉상
4.19기념관에는 4.19 기념탑이 세워진 학교를 모아둔 섹션이 있어요. 그중 동국대학교 동우탑을 발견했습니다. 회사와 가까워 알게 된 김에 다녀왔는데요. 동우탑은 동국대학교 만해광장 쪽에 있기 때문에 정문보다는 후문으로 가는 편이 더 빠릅니다. 동우탑은 4.19혁명 1주년을 기념하고 4.19혁명으로 순국한 동국대 동문 노희두를 위령하기 위해 건립된 탑이에요.
참고로 4.19혁명 기념탑은 동국대학교 외에도 고등학교와 대학교 내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4.19혁명 당시 학생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단 것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도 아니라죠.
📍 (국립4.19민주묘지)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580-1
📍 (동국대학교) 서울시 중국 필동로1길 30
연세대학교 이한열 동산
연세대 정문 왼편 바닥에 있는 동판
이한열 동산
추모비
30주기 기념 동상
연세대 정문 왼편 바닥에 박힌 동판에는 이와 같이 쓰여있습니다.
"1987년 6월 9일 오후 5시. 당시 연세대 2학년이었던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곳, 유월민주항쟁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6.10민주항쟁의 도화선은 연세대 정문에서 불꽃을 틔웠습니다.
"추모와 계승은 역사적 진실을 확인하고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4.19혁명기념관 입구에는 4.19혁명으로 순국한 224명의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이 적혀 있는데(도입에 썼던 연극 대사와는 반대죠.), 그 글을 읽으면서 이한열 동산이 자연스럽게 연상됐습니다. 사람들은 그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후세에 전하기 위해 이 작은 동산에 추모비를 세웠을 테고 이것은 곧 자명하고 사라지지 않는 진실의 역할을 하고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문을 지나고 백주년 기념관을 지나면 작은 동산이 하나 보이는데, 그곳이 바로 이한열 동산입니다. 이한열 열사를 기리기 위해 이한열 추모사업회에서 세운 추모비와 최병수 작가가 이한열 열사 30주기를 맞아 동산에 세운 동상을 볼 수 있었어요. 5.18민주화운동의 흔적을 따라 전남대학교에 갔을 때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었는데요. 교과서만으로 체득할 수 없는 배움이 있고, 건물이나 터 자체가 역사를 품은 채로 현재까지 남아 있다는 사실이 못내 경이롭습니다.
추모비에서 198769757922라는 다소 암호 같은 숫자를 볼 수 있어요. 그 숫자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1987(민주항쟁이 일어난 해)
69(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날, 6월 9일)
75(이한열 열사가 세상을 떠난 날, 7월 5일)
79(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이 거행된 날, 7월 9일)
22(이한열 열사가 생을 마감한 나이, 22살)
📍 (연세대학교) 서울시 서대문구 연세로 50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향린교회
대한성공회 성가수녀원
6월 민주항쟁 진원지 기념비
향린교회
6월 민주항쟁 기념비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장소를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성당이나 교회 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다녀온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6월 민주항쟁의 근원지, 향린교회는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본부가 결성된 곳으로, 기념비를 통해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건물의 일부처럼, 토지의 한 부분처럼 세워지고 걸린 탓에 관심을 두고 찾아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지만 누군가의 입으로, 누군가의 글을 통해 단 한 사람에게라도 닿는다면 비석이나 현판이 존재하는 의미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이 글을 보고 있을 여러분들에게도 이렇게 닿았으니까요.
📍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21길 15
📍 (향린교회) 서울시 종로구 경희궁2길 11
(+)민주화운동기념관
남영동 대공분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독재의 상징이었던 곳이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장소로 탈바꿈합니다. 25년 상반기 개관 예정인 남영동의 민주화운동기념관 자리엔 원래 대공분실이 있었어요. 대공분실은 경찰청 보안 수사대의 대공 업무를 위해 설치된 기관으로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곳입니다. 막바지 개관 준비에 한창일 이곳이 어떤 모습으로 시민들에게 공개될까요.
📍 (민주화운동기념관)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71길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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