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네비게이션바로가기 컨텐츠바로가기

S매거진

PENTAX 17
PRODUCT카메라
하프 프레임, 두 개의 기억
PENTAX 17이 남기는 이야기
2025.12.05
18 0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풀꽃1」

 

 

짧은 이 시는 결국 '바라봄의 방식'을 말합니다. 오래 본다는 건 단순히 시선을 붙잡아두는 일이 아니라, 마음이 어디에 머무는지 고르는 일에 가깝죠. 요즘처럼 빠르게 지나치고 쉽게 잊히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자세히 바라보고 있을까요.

 

사진도 비슷합니다. 한 번 셔터를 누르면 장면은 바로 화면 속 이미지로 굳어버리고, 감정은 금세 흐려지죠. 그런데 만약 한 장면을 두 번 바라보고, 그 두 번의 시선이 한 프레임 안에 나란히 남는다면 어떨까요? 아마 우리는 자연스럽게 더 오래 보고, 더 깊이 기억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요즘 '하프 프레임'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두 컷이 붙어 찍히는 단순한 구조 때문이 아니라, 그 두 컷이 '내가 어떻게 보고 있었는가'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때문이죠. 펜탁스 17은 바로 이 경험을 가장 편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만들어주는 카메라입니다. 우리가 놓치고 지나온 순간들을 '두 번의 바라봄'으로 다시 붙잡게 해주는 도구죠.

 

 

01. 연속성이 느껴지는 빛의 흐름

 

펜탁스 17의 결과물을 보면 먼저 하프 프레임 특유의 연속성이 눈에 들어옵니다. 두 장면이 이어지면서 빛의 변화가 한 페이지 안에서 자연스럽게 기록되죠. 빛이 닿기 시작한 순간, 그림자가 이동하는 방향, 명암의 간격까지 두 컷 안에서 이어지면 공간의 이야기가 단단해집니다.



PHOENIX I 200 (ISO 200으로 촬영)
PHOENIX I 200 (ISO 100으로 촬영)
XP2 400
XP2 400

 

두 이미지 사이의 작은 간격은 한 장면만 있었다면 쉽게 지나갔을 순간들을 다시 이야기로 만들어줘요. 빛이 줬던 몽환적인 잔상, 순간적인 변화의 흔적이 두 장면 사이에서 더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Kodak ProImage 100

 

언제든 빛을 잡을 수 있어야 하는데, 펜탁스 17은 특히 그런 점에서 자유로운 카메라예요. 가벼운 무게와 심플한 디자인 덕분에 늘 들고 다니기 좋고, 광도·노출·촬영 모드 같은 기본 조작 또한 직관적이라 필름 초보자인 저도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었어요. 덕분에 스쳐 지나가는 빛이나 갑자기 생기는 그림자 같은 순간을 편하게 담을 수 있었고, '지금 빨리 찍어야 한다.'는 조급함보다, '지금 담아도 좋겠다.'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02. 목측식의 매력, 손끝으로 조절하는 거리

 

펜탁스 17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초점이 눈보다 손끝에서 먼저 맞춰지는 느낌이 듭니다. 목측식은 거리를 직접 가늠해야 해서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펜탁스 17은 오히려 '손으로 거리감을 맞춘다'라는 감각이 재미있게 남아요. 팔을 뻗었을 때 닿는 최소 초점거리부터 3m 이상의 거리까지, 피사체와 내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계산하는게 아니라, 가볍게 더듬듯 조절하는 과정에 가깝달까요.



 

렌즈의 포커스 링 덕분에 초점 잡는 과정도 번거롭지 않습니다. 저는 주로 산 모양 포커스 + AUTO 조리개 모드 조합을 많이 썼어요. 먼 거리 중심으로 찍을 때 초점이 가장 안정적으로 맞더라구요. 중간중간 가까운 피사체는 매크로(꽃 모양) 모드로 바꿔 찍었는데, 아직 필린이인 제게는 조금 어려웠던 건지 초점이 흐트러진 컷이 꽤 있더라구요. 그래도 그 어설픔마저도 필름 특유의 매력으로 느껴졌습니다.

 

Kodak ProImage 100
Kodak ProImage 100 / 매크로 + 보케 모드에 대해 더 연구해보도록 할게요.
XP2 400
XP2 400
PHOENIX I 200 (ISO 100으로 촬영)

 

가끔 초점이 완벽하게 맞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어긋남이 의도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보일 때가 많거든요. 디지털처럼 틀림없이 맞아떨어지는 정확함보다는, 손으로 직접 맞춘 깊이감이 남는 사진이 더 매력적일 때가 많습니다. 특히 두 장면이 나란히 놓이는 하프 프레임에서는 초점 실수마저 이야기가 됩니다. 하나의 컷이 완벽하지 않아도 옆 컷이 빈 부분을 채워주고, 초점이 흐릿한 두 컷은 오히려 "이 사진의 초점은 어디일까"하고 더 들여다보게 하죠. 펜탁스 17은 그런 실수조차 관대하게 품어주는 카메라였습니다.

 

 

03. 디지털 디톡스는 아날로그 필름으로

 

요즘 기기들은 '선명함'을 앞세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선명해질수록 저는 오히려 약간 흐릿하고 덜 명확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디지털의 날카로운 선예감보다, 필름 특유의 입자, 색감, 기다림 같은 요소들이 그립기도 하고요. 어쩌면 저도 모르게 '디지털 디톡스'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XP2 400
Kodak ProImage 100
Kodak ProImage 100

 

펜탁스 17은 단순히 감성에만 기대는 카메라가 아닙니다. 하프 프레임 특유의 적당히 지글거리는 입자감과 필름 특유의 색감은 살아 있으면서도, 최신 렌즈 덕분에 디테일과 해상력은 은근히 섬세합니다. 그래서 촬영 과정 자체가 단순한 디지털 디톡스가 아니라 '조금 더 풍성해지는 경험'에 가까웠어요.

 

PHOENIX I 200 (ISO 100으로 촬영)
XP2 400

 



04. 산책을 더 오래 하게 되는 카메라

 

펜탁스 17의 이름처럼, 35mm 필름의 절반인 17mm 포맷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한 롤에 72장의 사진을 담을 수 있습니다. 덕분에 '이 장면을 꼭 찍어야 할까?' 하는 머뭇거림 없이 걷는 속도에 맞춰 자연스럽게 셔터가 눌러져요. 저는 펜탁스 17을 들고 나간 날, 평소보다 훨씬 오래 걸었습니다. 한 장 찍으면 '조금만 더 걸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는 카메라더라고요.



PHOENIX I 200 (ISO 200으로 촬영)
Kodak ProImage 100
XP2 400

 

여기에 수동 와인딩의 감각까지 더해지면 촬영 속도가 자연스럽게 느려집니다. '도르륵, 탁!'하고 이어지는 감각이 다음 컷을 준비하는 작은 의식처럼 느껴지고요. 걷다 멈추고, 다시 걷고, 비슷한 지점도 다른 각도로 한 번 더 찍게 됩니다. 그렇게 두 컷으로 이어진 프레임 속에서 산책의 속도와 하루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남아요.

 

 

+ (짧은) 산책 스토리

PHOENIX I 200 (ISO 200으로 촬영)



고양이 vs 비둘기

전시회 주차장에서 마주친 고양이와 비둘기의 묘한 신경전을 담았어요. 고양이는 구석에서 비둘기의 움직임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고, 비둘기는 그런 고양이를 놀리듯 주차장을 천천히 활보했죠. 결국 흥미를 먼저 잃은 건 비둘기였습니다.



PHOENIX I 200 (ISO 100으로 촬영)



시장 마케팅

시장 매대에 붙어 있는 직관적인 문구는 언제 봐도 귀엽고 재밌어요. 마침, 김장철이라 저희 가족들도 김장 조끼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XP2 400



서울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차가 많은 모습을 보자 바로 떠오른 생각은 '역시 서울!'이었습니다. 다들 어딜 그리 바쁘게 가는 걸까 잠시 생각했어요. 이 두 장면을 보니, 고소공포증이 있는 제가 난간 너머로 카메라를 겨우 내밀던 순간의 식은땀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XP2 400



여유는 내가 만드는 것

벤치에서 천천히 휴대전화를 보던 한 할아버지의 모습이 근처의 '정지' 표지판과 묘하게 닮았었어요. 복잡한 사람들 사이에서 잠시 멈춰 있는 할아버지의 여유가 은근히 인상적이었습니다.



Kodak ProImage 100



귀여운 건 가까이, 그리고 크게

초점이 살짝 나간 고양이의 뒷모습은 오히려 더 귀엽게 느껴졌어요. 빛이 비스듬히 닿아 반짝이던 털은 초점이 맞지 않은 덕분에 더 부드럽게 보였고, 가을 낙엽 위에 놓은 작은 발도 사랑스러웠습니다. 마침, 가을을 기록하기 위한 산책이었는데 말이죠.



Kodak ProImage 100



싱그러운 가을

가을 색이 짙게 남아 있던 길에서, 정류장에 앉아 대화를 나누던 할머님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손에 꼭 쥐고 있던 싱그러운 꽃과 그 위로 비친 따스한 햇볕이 그날의 풍경을 더 온기 있게 해주었습니다.

 

 

두 컷이 남기는 것

 

펜탁스 17로 찍은 사진을 보면 하루의 흐름이 보입니다. 하나의 장면보다는 과정과 스토리를 기록하는 카메라죠. 그래서 결과가 기대한 모습과 조금 달라도 이상할 만큼 만족스럽고, 그 자체로 감성적인 매력이 있습니다. 두 컷이 나란히 놓인 프레임에는 그날 내가 어떤 속도로 걸었는지, 어떤 장면을 좋아했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솔직하게 남아요. 시간이 지나 다시 꺼내 보아도 낯설지 않은 그날의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되살아나는 이유죠.



Kodak ProImage 100
Kodak ProImage 100

 

천천히, 오래 바라보고 싶은 날. 펜탁스 17은 그 시선을 가장 솔직한 방식으로 받아주는 카메라입니다. 두 번의 바라봄이 만드는 작은 프레임 속에서, 매일의 순간들이 사실은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음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

 

[셀프 스캔하는 방법]

 

 

이번 펜탁스 17 촬영에서는 코닥 프로 이미지 100, 피닉스 1 200, XP2 400까지 총 세 가지 필름을 사용했습니다. 현상은 충무로의 '고래사진관'에서 진행했고, 이곳에서는 직접 셀프 스캔을 할 수 있어요. 하프 프레임 셀프 스캔은 저도 처음이라 조금 긴장됐지만, 이번 기회에 꼼꼼하게 배웠습니다. 하프로 촬영하는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라며 그 과정을 정리해 볼게요.

 

 



① 'Reprint Setting'에서 필름에 맞는 스캔 채널 선택하기

 

고래사진관에서는 필름별로 맞춘 프리셋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각각 다음과 같이 선택했어요.

 

• 프로이미지 100 → Self 칼라고화질

• 피닉스1 200 → S Phoenix

• XP2 400 → S BW 고화질

 

필름 특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사용한 필름에 맞는 채널을 선택하는 것이 좋아요.

 

 



② 하프 프레임은 수동으로 영역 설정하기

 

'Film Carrier' 메뉴에서 하프로 자동 설정이 가능하지만, 가끔 인식 오류로 잘리거나 엇나가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직원분께서도 수동 영역 설정을 추천해 주셨습니다. 'Forced Stop Position Check'을 ON으로 바꾸면 이미지 하나씩 직접 범위를 조절할 수 있어요.

 

 



 

③ 스캔 진행 시 주의할 점 - 절대 'YES'를 먼저 누르지 않기

 

필름을 스캐너에 넣고 스캔이 시작되면 화면에 수동 영역 조절 창이 뜹니다. 이때 다음 이미지로 넘어갈 때는 반드시 'N : Enter'를 선택해야 해요. 'YES : Complete'를 누르면 지금 설정한 영역이 전체 이미지에 그대로 적용되며 스캔이 즉시 종료되기 때문이죠. 'YES'는 오직 마지막 컷까지 설정한 뒤에만 눌러주세요.

 

 

 

④ 스캔 후 추가 보정하기

 

스캔이 끝나면 간단한 보정 작업을 할 수 있어요. 셀프 스캔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죠. 원하는 색감이나 노출을 직접 조절할 수 있지만, 과한 보정은 필름 특유의 질감을 해칠 수 있으니 살짝 아쉬운 정도까지만 손대는 게 좋아요.

 

 

 

⑤ 필름 자르고 보관하기

 

스캔이 완료된 필름은 라이트박스 위에서 잘라 보관지를 이용해 담아가면 됩니다. 물론 돌돌 말아서 필름 통에 넣어갈 수도 있지만, 직원분이 "필름끼리 붙어서 훼손될 수 있다"라며 개별 컷으로 잘라서 보관할 것을 추천해 주셨어요. 추후 재 스캔을 고려하면 이 방법이 훨씬 안전할 것 같습니다.

 


 

본 콘텐츠는 저작권에 의해 보호됩니다. 복제, 배포, 수정 또는 상업적 이용은 소유자의 허가 없이 금지됩니다.

에디터 K 글 · 사진

소소하게 살고 싶습니다.

태그 #펜탁스17 #필름카메라 #필름 #PENTAX17 #하만 #피닉스 #XP2 #코닥
목록
0/200 자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이나 비속어, 비하하는 단어들은 표시가 제한됩니다.
댓글등록

프로모션

최근 본 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