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탁스 17 / 코닥 컬러 플러스 200
주사(酒사), 즉 술과 사진. 전혀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문득 이 둘 사이에 어떤 연결점이 있을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아무래도 두 가지 모두 애정하는 분야였기에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엮어보면 분명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었고, 그 작은 생각은 어느새 이렇게 콘텐츠가 되었다.
그 중 ‘필름 카메라’와 ‘막걸리 양조’는 유난히 닮아 있었다. 완성을 향한 기다림과 손끝으로 느껴지는 아날로그의 감각이라는 점에서 선명한 공통점이 느껴졌다. 필름 카메라는 촬영 후 현상과 인화 과정을 거쳐야만 결과물을 만날 수 있고, 막걸리 역시 발효와 숙성이라는 단계를 거쳐야 제맛이 난다. 둘 다 '빨리'가 아닌 '천천히'를 견뎌야 비로소 완성되는 작업으로, 손으로 직접 셔터를 감고 누룩 향 가득한 숙성을 지켜보며 우리는 어느새 취향을 남기는 방법을 익혀가고 있다.
느리고 손이 많이 가지만, 그래서 더 애틋하고 오래 기억에 남는 것들. 날이 더 더워지기 전, 우리는 그런 것들을 남기기 위해 떠났다. 아날로그 감성 가득한 필름 카메라를 들고 강화도에 있는 100년 전통의 양조장, 금풍양조장에 다녀왔다.

펜탁스 17 / 하만 피닉스 200 II
거꾸로 쓰인 '금풍양조장' 간판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오래된 목재 구조와 은은하게 퍼지는 누룩 향이 우리를 맞이했다. 옛 목조건물을 그대로 보존한 이곳은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면서도, 정갈하게 관리되어 있어 100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1층은 막걸리 양조 공간과 함께 금풍양조장의 굿즈를 전시해 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2층은 금풍양조장의 오랜 역사를 담아낸 작은 박물관처럼 꾸며져 있었다. 먼저 우리는 1층에서 막걸리 양조에서 쓰이는 다양한 재료에 대해 알아가며, 간단한 체험을 진행했다.


시음 체험 막걸리. 금학탁주 그린&골드&블랙과 금풍 양조 막걸리.
FUJI FILM 200
입구에서 느낀 고풍스러움과 달리, 양조 체험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깔끔하고 모던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 공간은 전통을 지키는 동시에, 현재의 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이 그대로 전해졌다.
체험에 앞서 네 가지 종류의 막걸리를 시음해 보는 시간이 먼저 준비되어 있었다. 각기 다른 맛과 향을 지닌 막걸리를 한 잔씩 마시다 보니, 금풍양조장이 이 분야에서 쌓아온 시간과 자신감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만든 막걸리도 이렇게 맛있게 될 수 있을까?' 하는 부푼 기대감을 안고 체험에 더 몰입해 보았다.

쌀(입국)과 효모를 넣고 정량의 물을 넣는다. (1차 제조)
팽화미, 누룩이 있는 팩은 이틀 뒤 추가 제조할 때 넣어주면 된다. (2차 제조)
우리가 체험한 과정은 비교적 간단했지만, 막걸리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더 섬세하고 조용한 작업이었다. 직접 쌀과 효모미를 계량하고, 누룩 향을 맡으며, 평소 쉽게 지나쳤던 재료의 감촉과 냄새를 천천히 느껴볼 수 있었다.
이날은 1차 제조까지만 진행됐고, 이후 이틀 뒤 2차 제조를 거쳐 약 열흘간의 발효 과정을 통해 막걸리가 완성된다. 결국 양조도 필름도 모두 서두룰 수 없는 것들이고, 완성에 이르게 하는 건 '시간'이다. 이 느린 시간을 견디며 기다리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아날로그의 본질 아닐까.


FUJI FILM 200
양조 체험을 마친 뒤, 두 번째 프로그램으로 '금풍 빙고 맞추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양조장의 역사를 담은 2층 공간을 자유롭게 둘러보며, 빙고에 적힌 항목들을 하나씩 찾아보는 방식이다. 모든 칸을 채우고 나면 소정의 선물도 주어진다고 해서, 조금 더 집중해서 이곳저곳을 꼼꼼히 살펴보게 됐다. 빙고 난이도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 살짝 주춤거렸지만, 오히려 그 덕에 금풍양조장을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펜탁스 17 / 하만 피닉스 200 II
2층에 들어서는 순간,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세월이 켜켜이 쌓인 목재 구조와 오래된 발효 항아리, 한쪽 벽면에 가지런히 놓인 막걸리 병들까지.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디지털 카메라였다면 빠르게 지나쳤을 장면들이, 필름 안에서는 조금 더 오래 머물렀다. 펜탁스 17을 사용해 두 컷씩 이어지는 구성으로 촬영을 진행했는데 필름 특유의 색감과 분위기 덕분인지 이 두 컷 안에 마치 100년이라는 세월에 대한 하나의 스토리가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것대로 양조장의 느린 흐름이 필름 속에 차분히 담겨가는 듯했다.
FUJI FILM 200
빙고 성공 그리고 주사위 게임도 성공
빙고를 모두 마친 뒤, 마지막으로 남은 건 금풍양조장 사장님과의 주사위 게임이었다. 주사위를 세 번 던져 같은 그림이 나오면 성공하는 룰이었는데, 뜻밖에도 나와 에디터J의 주사위 운이 꽤 괜찮았다. 세 번 중 두 번이나 성공해서 양손 가득 선물을 챙겼고, 덕분에 기분 좋게 이번 체험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펜탁스 17 / 코닥 컬러 플러스 200
체험을 마치고 돌아온 뒤, 우리는 직접 만든 막걸리를 회사 한편에 조심스레 놓아두었다. 그 며칠 동안 우리는 숙성되어 가는 막걸리를 가끔 들여다보며, 조용히 설레어 했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체험 같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우리의 손끝에서 전해진 온기가 천천히 익어가고 있었다. 며칠 뒤, 막걸리가 제맛을 찾은 어느 오후. 우리는 조용히 모여 작은 종이컵에 막걸리를 따르고, 한 잔씩 나눴다.
에디터 M : 산미가 꽤 강하고 도수도 높은 것 같은데, 꿀을 조금 넣으니까 마시기 좋아지네요.
에디터 J : 산미는 있지만 괜찮은데요? 근데.… 파전은 없나요.
더운 날씨 탓에 발효 온도인 25도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막걸리는 다소 시큼하게 완성됐다. 다른 직원들의 평가도 비슷했다. “쿰쿰하고 산도가 강하다.”는 의견이 많았고, 우리는 꿀을 넣어보며 끝나지 않은 양조 실험을 이어갔다.
물론 전문 양조인이 만든 것처럼 달콤하고 시원하게 넘어가는 막걸리는 아니었지만, 그래서 그럴까 더 담백하게 느껴졌다. 누룩의 향도 여전히 살아 있었고 직접 만든 막걸리여서 그런지 왠지 더 진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덜 다듬어진 맛이었지만, 이조차도 꽤 괜찮고 특별했다.

현상소에 맡긴 필름이 돌아오기까지 며칠, 술이 숙성되기까지 또 며칠.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남는 건 완성된 결과물보다 그 과정을 함께하며 나눈 기억이 아닐까 싶다. 모든 게 빠르게 돌아가는 요즘, 아날로그라는 건 느리고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느림 끝에 있는 완전한 만족을 느끼게 되면 쉽다. 다시 빠른 삶으로 돌아가긴 어려울 것이다. 이번 체험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고.
술은 없지만 사진 찍기 좋은 강화도의 명소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인천시 강화군 깅화읍 관청길27번길 10
-10:00~18:00 (월 휴관), 매주 일요일마다 예배 진행
-용흥궁 공원 공영 주차장에 주차 가능
-금풍양조장에서 차로 약 25분 소요
하만 피닉스 200 II 촬영
하만 피닉스 200 I 촬영
(왼) 하만 피닉스 200 I (오) 하만 피닉스 200 II
하만 피닉스 200 II 촬영
하만 피닉스 200 I 촬영
하만 피닉스 200 I 촬영
성당이 맞나? 싶은데 성당이 맞다. 용마루 뒤로 살짝 보이는 십자가, 교회종, 문틈 사이로 보이는 세례대가 이곳이 1900년에 건립된 역사 깊은 성당임을 증명한다. 으레 성당이라고 하면 고딕이나 바로크 양식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은 서유럽 바실리카* 양식과 불교 사찰 양식이 조합된 한국 최초 한옥 성당이다.
*바실리카: 초기 교회 양식으로 원래는 공공 목적의 대규모 건물을 의미하는 고대 로마시대 단어를 뜻함
외관만 보면 궁에 방문한 것 같다. 실제로도 궁에 간 기분이었다. 성당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지도 않았던 미닫이문, 마루, 도리와 서까래가 내부를 구성하고 있으며, 외관의 기단과 디딤돌 등은 경복궁이나 창경궁에서 본 그것들과 비슷하다. 실내로 들어가야지만 이곳이 성당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실내는 아담하지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의자, 십자가, 봉헌함, 세례대 등이 갖춰져 있고 성당의 히스토리를 훑어볼 수 있는 사진이 양옆에 전시되어 있다. 내부가 좁아서인지 성도들이 앉는 의자가 마치 옛날 초등학교 시절 의자처럼 아담해 귀여웠다. 실제로 일요일마다 예배가 진행되는 곳이며 외부인도 예배에 참여할 수 있다.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자 콘텐츠인 곳이다. 뾰족한 첨탑 위가 아닌 평평한 지붕 위에 있는 십자가라니. 게다가 가파른 계단 위에 있어 근처 지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건물 사이사이에 보이는 푸른 하늘과 구름이 정말 예쁜 장소다. 성당 자체가 작아 가볍게 둘러보기 좋으니 강화도에 방문했다면 강화성당에 가보자.
조양방직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향나무길5번길 12
-월~금 11:00~20:00, 토~일 11:00~21:00
-입장료 없음
-금풍양조장에서 차로 약 20여 분 소요
하만 피닉스 200 I 촬영
하만 피닉스 200 I 촬영
하만 피닉스 200 I 촬영
하만 피닉스 200 II 촬영
하만 피닉스 200 II 촬영
하만 피닉스 200 II 촬영
첫인상은 진짜 넓다. 약 300평 규모라고 하더니 야외를 구경하고 카페로 들어가기까지 꽤 시간이 소요된다. 이건 조양방직이 넓기도 하지만 야외에 볼거리가 많은 덕분이기도 하다.
1933년에 세워진 강화 최초 인견 공장이 카페로 재탄생됐다. 산업 쇠퇴로 폐건물이 된 공장의 골조를 그대로 살린 것이 특징인데, 카페뿐만 아니라 카페로 들어가는 길목마다 세월을 품은 물건들이 가득하다. 녹슨 부분, 낡은 부분, 페인트가 벗겨진 부분 하나조차도 조양방직과 매우 잘 어울린다. 참, 조양방직에 갔다면 외부 화장실에 꼭 한번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렇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화장실은 처음인데, 세면대가 무려 가마솥으로 되어 있다. 사실 조양방직의 모든 공간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고, 채도가 10 정도 빠진 느낌을 들게 한다.
카페도 정말 광활하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쉴 수 있도록 만든 배치도 인상 깊었지만 작업 기계를 테이블로 탈바꿈한 아이디어에 감탄했다. 조양방직과 관련된 모든 것을 최대한 살리려는 노력이 이런 사소한 것에서 엿보인다. 주문하는 곳은 카페 안쪽에 있고 베이커리 결제 카운터와 음료 주문 카운터가 나누어져 있어 혼잡을 최소화하려는 것이 느껴졌는데 많은 방문객을 커버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처럼 보였다. 채우기가 무섭게 금방 빠지던 소금빵은 고소한 버터의 풍미 속 짭조름한 소금 알갱이의 맛 하나하나가 느껴지는 빵이었다. 추천.
강화성당도 하나의 작품이었는데 조양방직 역시 거대한 설치 미술품 같은 곳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곳이고 유명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로 복작복작하기를. 그래서 언제나 숨 쉬는 공간으로 남아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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