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의 넓고 탁 트인 마당을 걷다가, 또 성북동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오르내리다가 문득 깨달았다. 늘 들고 다니던 줌 렌즈였다면 그냥 스쳐 지나쳤을 장면들이, 단렌즈를 통해서는 전혀 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ZEISS Batis 1.8/85 (1/6000초, F2.5, ISO 250)
평소 렌즈에 대한 호기심은 있지만, 막상 촬영을 나가면 늘 줌렌즈를 먼저 꺼내 들곤 했다. 다양한 화각을 상황에 맞춰 손쉽게 조절할 수 있는 편리함은 분명 큰 매력이었고 풍경을 찍을 때도 발걸음만 살짝 옮기면 원하는 구도가 나오니, 굳이 다른 선택을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익숙한 편리함이 조금은 단조롭게 느껴졌다. 어떤 장면을 촬영할지 고민하기보다는 습관처럼 줌 링을 돌려 '적당한 거리'를 맞추는 습관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단렌즈. 하나의 화각에 묶여 있다는 점은 처음에는 다소 어색하고, 줌렌즈처럼 화각을 조절할 수 없으니 직접 움직이며 포커스를 맞춰야만 했지만 바로 이 과정에서 촬영의 재미가 다시 살아났다. 화각이 고정된 만큼 어떤 장면을 담고 어디서 끊어낼지를 온전히 내가 결정해야 했기 때문일까, 촬영하는 동안 구도에 대한 호기심이 마구 솟아났다.
ZEISS Batis 1.8/85 (1/4000초, F4.5, ISO 500)
ZEISS Batis 2.8/135 (1/2500초, F4, ISO 250)
이번에 소개할 렌즈는 ZEISS의 Batis 1.8/85 와 2.8/135 단렌즈다. 두 화각 모두 인물 렌즈로 잘 알려졌지만, 풍경에 적용했을 때는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작은 디테일들이 단렌즈 프레임 속에서는 한 장의 그림처럼 또렷하게 드러났고, 특유의 압축감이 더해진 이미지는 정제되고 고요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1.8/85 (왼), 2.8/135 (오)
1.8/85 (왼), 2.8/135 (오)
1.8/85
2.8/135
85mm와 135mm는 확연히 다른 거리감을 보여준다. 전시품을 촬영해 보니 가까이 다가가 볼 수 없었던 세밀한 디테일까지 또렷하게 담을 수 있었고, 손 떨림 보정과 빠른 AF 덕분에 먼 거리에서도 흔들림 없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두 렌즈를 같이 지니고 다니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1.8/85는 475g, 2.8/135는 614g으로 생각보다 가벼운 무게로, 번갈아 사용하며 촬영해도 피로감이 없었다. 특히 2.8/135 렌즈는 '망원이라 무거울 것이다.'라는 선입견을 단번에 깨줄 정도였으니.
[피사체에 집중_ZEISS Batis 1.8/85]
ZEISS Batis 1.8/85 (1/5000초, F1.8, ISO 200)
ZEISS Batis 1.8/85 (1/1600초, F1.8, ISO 200)
ZEISS Batis 1.8/85 (1/2000초, F2, ISO 320)
ZEISS Batis 1.8/85 (1/6400초, F1.8, ISO 320)
ZEISS Batis 1.8/85를 처음 써본 나는 이번 촬영 때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 인물 대신 일상 풍경을 담아보기로 한 것.
85mm는 준망원 화각으로, 일상에서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피사체만 쏙 끌어안듯 집중시켜 주는 힘이 있어서 촬영한 사진 속에는 주제가 더 명확하게 살아난다. 줌렌즈로 찍을 때 자주 크롭 보정을 하곤 했는데, 85mm 렌즈로 촬영해 보니 처음부터 시선이 정리된 사진이 나와서 직관적인 결과물에 후보정 수고를 덜어낼 수 있었다.
ZEISS Batis 1.8/85 (1/1600초, F1.8, ISO 200)
ZEISS Batis 1.8/85 (1/5000초, F1.8, ISO 160)
ZEISS Batis 1.8/85 (1/4000초, F1.8, ISO 320)
F1.8 조리갯값이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보케 효과는 감성적인 무드를 더하는 데 탁월했다. 초점은 선명하게 잡히면서도, 불필요한 배경은 살짝 뒤로 물러나 주니 피사체에 집중할 수 있다. 덕분에 풍경 속 사소한 순간도 특별하게 기록할 수 있다.
ZEISS Batis 1.8/85 (1/3200초, F3.2, ISO 640)
ZEISS Batis 1.8/85 (1/8000초, F2, ISO 500)
결국 85mm의 화각을 '인물 전용'이라는 네이밍을 붙여두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설지만 즐거운 거리감, 크롭 보정이 필요 없는 확실한 집중도, 그리고 무엇보다 감각적인 보케까지. 일상의 풍경과 사랑하는 존재를 더 선명하게 담아낼 수 있는 ZEISS Batis 1.8/85 렌즈를 들고 촬영하러 다녀보면 새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멀리서도 마음을 끌어당기는_ZEISS Batis 2.8/135]
ZEISS Batis 2.8/135 (1/2500초, F2.8, ISO 640)
ZEISS Batis 2.8/135 (1/2500초, F4.5, ISO 640)
처음 ZEISS Batis 2.8/135 렌즈를 카메라에 장착했을 때, 솔직히 조금 당황했다. 뷰파인더를 들여다본 순간 '이렇게 가까이 보일 수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기 때문이다. 원하는 피사체를 프레임에 담기 위해서 끝도 없는 뒷걸음질이 필요했고, 카메라를 내리고 다시 맨눈으로 바라보면 어느새 피사체와 훌쩍 멀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낯섦이 주는 새로움이 좋았던 걸까,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시간 가는줄 모르고 즐겁게 촬영했다.
ZEISS Batis 2.8/135 (1/2000초, F3.5, ISO 640)
ZEISS Batis 2.8/135 (1/2000초, F3.5, ISO 200)
ZEISS Batis 2.8/135 (1/2000초, F2.8, ISO 160)
ZEISS Batis 2.8/135 (1/640초, F3.2, ISO 200)
자이스가 자랑하는 색수차 억제 성능은 보정 과정을 거치면서 체감할 수 있었다. 흔히 손이 많이 가는 색 보정 과정이 크게 줄어들 정도로 본연의 색을 안정적으로 표현해 주었고, 특유의 선예도까지 더해져 큰 보정이 필요 없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ZEISS Batis 2.8/135 (1/4000초, F3.2, ISO 320)
ZEISS Batis 2.8/135 (1/800초, F3.5, ISO 640)
ZEISS Batis 2.8/135 (1/1000초, F5, ISO 640)
ZEISS Batis 2.8/135 (1/2000초, F4, ISO 200)
평소 멀리서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을 즐긴다면, 135mm 화각의 타이트한 매력이 잘 맞을 것이다. 전체를 한눈에 담기보다는 특정 장면을 집중적으로 포착하는 데 강점을 지닌 덕분에, 멀리 떨어져 있는 피사체도 생생하게 기록할 수 있다. 일상에서 무심히 지나쳤던 디테일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 순간을 사진 속에 정제된 장면으로 남길 수 있다는 점이 이 렌즈의 큰 즐거움이다.
ZEISS Batis 2.8/135 (1/4000초, F3.2, ISO 250)
ZEISS Batis 2.8/135 (1/1250초, F4, ISO 250)
ZEISS Batis 2.8/135 (1/3200초, F2.8, ISO 320)
ZEISS Batis 2.8/135는 '전체를 크게 보여주는 화각'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나만의 시선과 집중력이 담긴 사진을 남길 수 있다. 풍경을 통째로 안는 웅장함도 멋지지만, 디테일 속에 깃든 소중함을 포착하고 싶다면 이 렌즈가 훌륭한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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