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4 컬러로그] GR4(GR IV) 컬러로그 시리즈는 GR 카메라의 대표 화상(畫像)인 포지티브, 네거티브를 비롯해 흑백 감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하드 모노, 새로 추가된 시네마톤 옐로와 시네마톤 그린이 일상을 어떤 모습으로 담아내는지 보여드립니다. 기술적인 면보다는 룩이 주는 감성과 장소 이야기, 찍는 과정을 보여드리기 위함이니 사진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
GR4 컬러로그 #3 Cine Y(시네마톤 옐로)
컬러로그 Cine G(시네마톤 그린)편에서 시네마톤 그린으로 찍다 보면 코닥 울트라맥스 400이 떠오른다고 쓴 적이 있다. 시네마톤 그린이 울트라맥스 400이라면 Cine Y(이하 시네마톤 옐로)는 코닥 골드 200이랄까.(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시네마톤 그린이 창백한 새벽녘을 닮았다면 시네마톤 옐로는 비를 머금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날씨다. 마치 비오기 전 수증기가 빛을 산란시키면서 온 세상이 주황빛으로 물드는 것처럼 말이다. 노란 색감이 강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스탠다드나 포지티브를 쓰다가 시네마톤 옐로로 바꾸면 왜 이름을 그렇게 명명했는지 단번에 알게 된다.
시네마톤 그린처럼 색채가 빠져나간 느낌은 크게 없지만 노란색 특유의 바랜 감성이 있다. 그 감성이 길, 골목과 잘 어울릴 것 같아 마을을 찾아갔다. 빛바랜 도시를 담기 위해.
📍북정마을






시네마톤 옐로
시네마톤 그린
마을은 작았다. 동그란 테두리처럼 형성된 큰 길 안에 좁은 골목이 거미줄처럼 얽혀있고 그 사이에 집들이 다닥다닥 어깨를 맞대고 있다. 지대가 높아 마을 아래쪽으로 뻗은 성곽도 볼 수 있다. 이 마을을 크게 한 바퀴 돈 뒤 미로같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은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했고 좁았다.
사진 속 이곳은 오래된 사진첩 한쪽을 차지한 옛 풍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본 터전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남긴 흔적들로 또렷했다. 또한 마냥 화창한 날은 아니었으나 시네마톤 옐로를 덧입히자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듯한 풍경이 되기도, 빈티지 숍 벽에 한쪽 귀퉁이가 닳은 사진이 되기도 했다. 그 간극이 재미있어 골목을 탐구하듯 돌아다녔다.
사대문 안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소박한 산동네답게 성북동이 내려다보인다. 그리 멀지 않은데 풍경은 사뭇 다르다. 표현하기 힘든 아이러니함을 털어내고 다시 성북03번 마을 버스에 올랐다. 옅은 노란빛을 간직한 사진을 보는 동안 버스는 빠르게 마을을 벗어났다.


(왼) 시네마톤 옐로 (오) 시네마톤 그린
만약 내가 뛰었다면 이 표시가 정말 반가울 것이다. 그리고 바로 집에 갔을 것이다.
돌아가기 전 성북천에 잠시 들렀다. 귀하다는 물 속성 고양이를 만났고, 러닝 크루도 만났다. 물줄기 소리는 이어폰을 뚫고 들어올 만큼 세찼다. 아무래도 성북천은 물이 주는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시네마톤 옐로보다는 그린이나 포지티브가 더 어울리는 곳이었다. 봄이 오면 시네마톤 그린으로 찍으며 성북천을 다시 걸어야겠다.
📍해방촌
'골목' 하면 빠질 수 없는 곳이 바로 해방촌이다. 바람이 날카로웠던 11월, 해방촌엔 가을과 겨울이, 관광지의 활기와 주거지의 조용함이 공존했다. 여전히 어디를 가든 N서울타워가 손에 잡힐 듯 우뚝 솟아 있었고, 내가 해방촌에 오긴 왔구나 싶은 비탈길의 반복. 지하철 6호선 라인을 타고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아주 1차원적인 생각 때문에 내게 해방촌은 옅은 갈색 이미지가 떠오르는 곳이다.



(왼) 시네마톤 옐로 (오) 네거티브
(왼) 시네마톤 옐로 (중) 네거티브 (오) 시네마톤 그린
북정마을이 동그란 원을 그리며 마을을 형성했듯 해방촌 신흥시장 역시 둥근 공간 안에 여러 개성이 모여있다. 카페, 술집, 음식점 등 저마다의 특색이 가득했던 기억이 있어 골목을 돌기 전에 잠시 들렀다. 시네마톤 옐로는 사진으로 노스탤지어 혹은 아네모이아를 느낄 수 있게 만드는 특별한 장치이자 치트키다. 옛 물건을 두지 않아도, 옛 공간을 재현한 곳에 가지 않아도, 옅은 옐로 톤이 (북정마을에서도 그러했듯) 시간을 초월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아네모이아를 가장 크게 느낀 곳이 바로 이 신흥시장이었다. 만약 1953년에 찍힌 신흥시장 사진이 있다면 이런 색감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왼) 시네마톤 옐로 (오) 시네마톤 그린
(왼) 시네마톤 옐로 (오) 네거티브


촬영하면서 알게 된 건, 양지와 음지가 모두 있는 곳에 시네마톤 옐로를 얹으면 빛을 받지 못한 부분이 실제로 보는 것보다 더 어둡게 보인다는 점이었다. 일부만 볕이 든 골목은 육안으로 봤을 땐 사진만큼 어둡지 않았으나 빛과 그림자의 경계가 오히려 또렷하게 나와 사진으로썬 매력적이었다. 시네마톤 그린처럼 처음엔 다소 낯설었지만 평소에 시네마톤 옐로와 같은 보정을 즐기는 사람에겐 보정 없이 원하는 이미지를 촬영할 수 있단 점에서 앞서 말했듯 시네마톤 옐로는 치트키다.
📍제주도 용눈이오름, 레일바이크
상상해 보자. 스산한 바람에 억새풀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만 들려오는 까만 화면이 5초 가량 지나면 광활한 그곳엔 주인공 홀로 서 있는 장면이 나타난다. 그곳은 사람이든 인외 생명체든 무엇이든 갑자기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로 보는 이들을 긴장감 속에 몰아 넣는다. 해방촌이 복고였다면 여긴 스릴러 장르다. 이 적막하고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것이 바로 시네마톤 옐로다.
여행객 입장에선 이런 날씨는 꽝이지만, 사진을 찍는 입장에선 색감 버프를 받은 것일 수도 있다. 2025년에 촬영했지만 분위기 만큼은 2000년대 초반에 찍은 영화 오프닝 시퀀스 같다. 역시 괜히 '시네마톤'이 붙는 게 아님을 시네마톤 그린에 이어 깨닫는다.
정말이지, 흥미롭고 호기심을 부추기는 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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