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4 컬러로그] GR4(GR IV) 컬러로그 시리즈는 GR 카메라의 대표 화상(畫像)인 포지티브, 네거티브를 비롯해 흑백 감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하드 모노, 새로 추가된 시네마 옐로와 시네마 그린이 일상을 어떤 모습으로 담아내는지 보여드립니다. 기술적인 면보다는 룩이 주는 감성과 장소 이야기, 찍는 과정을 보여드리기 위함이니 사진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
GR4 컬러로그 #4 Negative(네거티브)
요즘 난 Negative(이하 네거티브)라는 단어를 이렇게 쓰고 있다. "저 사람 정말 대단하다."(negative) 또 다른 예시로는 "연기 미쳤다."(positive)를 들 수 있다. (sns를 많이 하는 티를 내는 것 같아 조금 부끄럽지만) 그러니깐 우리가 배운 영어에서 네거티브는 부정적, 포지티브는 긍정적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GR 필름 룩에 있는 네거티브는 부정적인 룩이란 말일까? 당연히 아니겠지만 사진을 표현함에 있어 네거티브라는 단어가 붙는 것이 신기해 열심히 찾아보고, 사진과 카메라에 일가견이 있는 에디터 C에게 물어봤다.
"피사체 명암이 반전되는 네거티브 필름은 밝은 부분이 어둡고, 어두운 부분이 밝게 표현돼 실제 모습과는 정반대다. 대신 GR 카메라의 네거티브 화상은 노출 허용범위가 넓어서 부드럽다는 특성이 있다."
이 대답을 듣고나니 네거티브라는 이름이 붙은 사연(?)을 알 듯했다.(오피셜이 아님을 다시 한번 밝힙니다.) 네거티브 모드로 촬영하면 포지티브에 비해 확실히 부드럽고 톤이 낮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GR 클래스나 출사 이벤트를 진행할 때 자주 사용하는 모드가 무엇이냐 물으면 대부분은 포지티브로, 10명 중 1~2명 정도가 네거티브를 선호했다. 포지티브가 GR 카메라만의 색감을 한층 도드라지게 표현하는 룩이기도 해 나 역시 포지티브를 많이 사용하곤 했다. 그러나 네거티브의 매력을 알게 된다면 점점 더 네거티브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네 번째 주제는 '오늘의 분위기 Negative'(부드럽고 연하다는 뜻. Positive한 뜻). 이름은 네거티브지만 전혀 네거티브하지 않았던 그날의 시간을 꺼내본다.
*사진은 모두 무보정입니다.
📍노들섬
아침은 그야말로 하늘이 푸르렀고 구름이 풍선처럼 뭉게뭉게 떠 있는 쾌청한 가을 날씨였다. 그랬건만 오후가 되자 잔뜩 낀 회색 구름 사이로 하늘이 살짝 보이는 그런 날씨로 바뀌었다. 아쉽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지만 한편으론 이런 날에 네거티브 모드로 촬영하면 어떤 장면이 만들어질지 궁금했다. 평일 오후에도 노들섬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한강 철교 위로 달리는 지하철 소리는 자연스럽게 사람들 대화 소리에 섞여 들었다. 사람들은 돗자리를 깔고 누워 있거나, 물멍을 하거나, 사진을 찍거나, 음식을 먹으며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저채도가 부드러울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네거티브로 촬영하면서 물이 빠진 듯한 색이 꼭 흐물거리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아주 연하게 칠한 파스텔이 번지면 이런 느낌일까? 마냥 어둡지도 않으면서 모든 것을 품을 법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포지티브와 비교해보면 그 부드러움과 연한 느낌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네거티브 모드에선 연주황색이지만 실제로 보면 붉은 빛이 더 강하다.

한강철교를 지나가는 1호선 전철

노들섬의 주요 스폿. 해 질 녘 63스퀘어 뒤로 넘어가는 석양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자 1호선 전철이 지나가는 한강철교를 볼 수 있는 곳, 그리고 버드나무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중앙 쪽은 역시나 사람이 북적북적했다. 사진상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상행선과 하행선 열차가 교차하는 타이밍도 담을 수 있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진녹색인 한강철교는 청녹색으로 톤이 낮아진다. 해가 들지 않아 오히려 선명한 네거티브의 색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또한 두껍게 모인 구름 사이로 드러난 하늘은 실제로 보면 꽤 파랬으나 네거티브로 본 하늘은 그야말로 '하늘색'이었다.
네거티브 모드는 내가 바라 본 세상을 다른 색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사진이 현상 그대로를 담는 결과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러 가지 변주를 줄 수 있다. 그 변주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네거티브 모드라 생각했다. 내 눈과 화면 속 결과물은 다르지만 다른 대상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오래도록 한 색감과 무드에 집중해 촬영하고 보정했다면 새로운 시도를 해볼만 한 룩이라 생각한다.
(왼) 네거티브 (오) 포지티브
(왼) 네거티브 (오) 포지티브
포지티브와 네거티브의 차이는 고명도, 고채도일수록 더 뚜렷해지는데 한강대교 아래에서 찍은 사진에서 극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네거티브가 공간과 대상을 부드럽게 만든다면, 포지티브는 단번에 이목을 끄는 힘이 있다.
고채도, 고명도가 시각적 자극과 흥미를 유발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사진에 변화를 주고 싶다거나 가끔은 차분해지고 싶을 때 네거티브 모드는 분명 여러 가지 답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앞서 말했듯 저채도가 꼭 흐릿한 것만은 아니며, 저채도만이 줄 수 있는 부드러움이 있기에 포지티브만 쓰고 있었다면 네거티브에도 도전해보기를.
📍용양봉저정공원
한강대교를 걸어 노들섬처럼 일몰 맛집, 노을 맛집으로 유명한 용양봉저정공원으로 향했다. 하늘 전망대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소요됐는데 가는 길에 볼거리가 은근히 많아서다. 이를테면 고양이라든가 꼿꼿하게 선 강아지풀, 달걀 프라이 같은 개망초, 덱 위로 떨어진 나뭇잎 같은 가을의 흔적 말이다.(촬영 당시 초가을이었다.) 올라가는 덱 중간에 촬영 포인트 지점이 있지만 시야가 트이지 않아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하늘 전망대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보였던 것은 한강 위로 나란히 줄을 선 대교였다. 그리고나서야 노들섬이, 차도 위를 달리는 자그마한 자동차가 보였다.


용양봉저정공원 가는 길에 만난 길거리 풍경






노들섬
올림픽대로(노량대교)
이때 쯤엔 구름이 하늘을 거의 뒤덮은 상태였던지라 네거티브로 찍으니 실제로 보는 것보다 사진이 다소 어둡게 나와 차분함 대신 쓸쓸한 도시 풍경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실망하진 않았다. 날씨가 변화하면서 네거티브가 낼 수 있는 또 하나의 분위기를 만났으니깐. 이날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2006)이 저절로 떠올라 한 장면, 한 장면을 곱씹으면서 한동안 도시를 내려다봤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이렇게 작아보일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네거티브로 찍은 사진까지 보니 어쩐지 센티멘탈해져 촬영을 마무리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되돌아가는 길엔 카오스 고양이밖에 만나지 못해 아쉬웠다.
📍더현대서울 크리스마스 공방
12월 전체가 크리스마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1월 1일 0시가 되자마자 크리스마스 마케팅은 시작됐고, 우리는 이르게 트리와 산타를 보고 있다. 이 시즌을 놓칠 수 없기에 더현대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해리의 크리스마스 공방(Atelier de Noel)에 다녀왔다. 애초에 네거티브로 촬영할 생각이었지만 이번 크리스마스 콘셉트와 컬러가 네거티브와 잘 어울려서 쾌재를 불렀다.




어떠한가. 마음이 평온해지고 긴장을 풀게 되지 않는가. 크리스마스 특성상 주로 밝은 분위기를 떠올리곤 하지만 타닥타닥 장작이 타는 벽난로, 담요와 따뜻한 코코아, 그 옆엔 바삭한 쿠키처럼 안온함을 떠올리는 이도 존재한다. 내부에 사람이 많아 현장에서 그 기분을 온전히 느끼기엔 역부족이었지만 네거티브로 찍은 사진 만큼은 훈기가 느껴진다. 크리스마스 마을이 있다면 이곳과 닮지 않았을까? 했던 상상이 네거티브 모드와 공간이 만나 시너지를 내며 실현된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깨달은 건 네거티브 모드가 색을 연하게 표현할 뿐이지 색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며, 네거티브 모드도 잘 다룬다면 다양하게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GR 카메라로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아닌 'Silent night, Holy night'나 'Last Christmas'를 찍고 싶다면 혹은 네거티브와 만났을 때 잘 어울리는 장소를 발견했다면 당장 네거티브 모드로 바꿔보자.




(왼) 네거티브 (오) 포지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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